[뉴스앤조이-여운송 기자] 전남 여수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이순창 총회장) 소속 교회가 또 부자 세습을 결정했다고 한다. '여수'와 '예장통합'. 불법 세습을 저지르고 대번에 교단 탈퇴까지 감행한 여수은파교회가 오버랩되는 조합이다. 심지어 같은 여수노회(최종호 노회장) 소속이란다.

누군가는 예견된 일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솔직히 좀 놀랐다. 여수은파교회가 한바탕 홍역을 치렀으니 반면교사 삼아도 모자랄 판인데, 숭어가 뛴다고 망둥이도 뛰다니….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겠다는 아버지 목사가 이 타이밍에 또 나오리라고는(그것도 같은 노회에서!) 생각지도 못했다. 아직도 이렇게 순진하고 상상력이 부족해서야 다이내믹한 교계 기자 생활을 얼마나 더 해낼 수 있을까 싶다.

최채환 목사가 담임하는 교인 500명 규모의 여수 선교중앙교회. 이 교회의 세습 결정이 기막힌 이유는, 어느 날 찾아온 부흥사가 갑자기 '하나님의 뜻'이라며 후임 목회자를 점지(?)해 줬다는 데 있다. 꿈에서 "이 교회는 누구도 감당할 자가 없으니 목자의 신발을 '아들'에게 신겨라"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면서 말이다.

현몽하신 하나님의 계시를 몸소 받았다니 뭐라 할 말이 없지만, 나는 왠지 이 대목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이 떠올랐다. 수리남에서 마약을 밀매하는 전요환 목사(배우 황정민 분)가 말한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 갈무리
"하나님의 뜻이라고…."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 갈무리

"수리남의 홍어는 하나님의 것이다. 여기 강인구 형제(배우 하정우 분)는 이 땅의 홍어를 잡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자이니, 이를 거스르고 핍박한다면 주께서 아말렉 백성을 칼로 찔러 무찌르신 것처럼 너 또한 심판받을 것이다. (상대방이 반박하자)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 개XX야…."

그리고 대한민국 여수에서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최채환 목사가 말한다.

"그것(세습)이 주님의 뜻인데, 주님이 어떻게 역사하실지 모른다. 주님이 역사하시는 대로 우리는 따라가며 순종해야 한다. 여러분은 그렇게 아시라."

비록 최 목사가 이렇게 말할 때 그 뒤에서 험상궂게 생긴 전도사(배우 조우진 분)가 교인들을 노려보고 있지는 않았고 심판을 운운하며 협박하지도 않았지만, 둘은 근본적으로 같은 메시지다. '하나님의 뜻'이니까 '순종'하라는 것. 선교중앙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

최채환 목사는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지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일이 진행된 상황을 보면, 하나님이 '최 목사를 위해' 역사(?)하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최 목사는 내년에 은퇴를 앞두고 있었고, 교회는 후임자 청빙 수순을 밟아야 하는 상황에서 올해 8월 부흥 성회를 열었다. 부흥사는 아들 목사의 존재를 몰랐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기막힌 타이밍에 들려온 주님의 또렷한 음성. 부흥사가 직분이 안 적힌 헌금 봉투에서 아들 목사의 기운을 느끼도록 하신 주님의 놀라운 간섭. 아들 목사를 통해 갑절의 부흥을 이루시겠다는 주님의 축복. 우연의 일치라도 이 정도면 별 도리가 없지 않은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공교롭게도 목사들의 이익과 일치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 그런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모양이다.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고 싶을 때, 예배당을 새로 짓고 싶을 때, 자신의 죄를 덮고 싶을 때, 교인들이 자기 의견에 안 따라 줄 때, 목사들은 마치 제갈량이 동남풍을 불러오듯 하필 그 타이밍에, 하필 원하는 대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이번에도 부흥사가 말한 하나님의 뜻과 최 목사의 뜻은 마치 어려서 헤어진 형제가 어머니 유품 아귀를 맞춰 보듯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참으로 신묘막측하다.

교회 장로들도 최 목사의 뜻, 아니 하나님의 뜻을 거들었다. 우리 목사님이 짜고 쳤을 리가 없다고, 여수은파교회 세습은 '계획적'이었으나 선교중앙교회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으니 괜찮다고 말이다. 한마디로 계획범은 나쁘지만 우발범은 덜 나쁘다(?)는 논리인데, 계획이든 우발이든 예장통합 헌법상 목회지 대물림은 분명히 '범죄'다. 그 와중에 "고만호 목사님(여수은파교회)을 존경해 온 입장인데 핏줄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 보다"라며 혀를 찼다고 하니, 이 정도면 유체 이탈 화법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

나는 교회를 30년째 다니고 있고 어째어째 신학교까지 졸업했지만, 하나님의 뜻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교회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그분의 교회를 좀먹는 '세습'을 뜻하실 수 있단 말인가. 남들은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을 목사들은 이리도 손쉽게 알 수 있다니, 나도 그냥 목사가 될 걸 그랬나. 안타깝게도 3년 전 이맘때 신학대학원을 자퇴한 터라 목사가 되기는 글렀으니, 드라마에 나온 목사의 대사라도 변용해서 한번 읊어 보련다.

"수리남의 홍어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리고 교회 또한 하나님의 것이다. 이를 거스르고 교회를 사유화한다면, 주께서 성전 장사치들을 몰아내신 것처럼 너 또한 심판받을 것이다. 반박 시 내가 이 글을 쓰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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