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여성·연합 단체들이 9월 23일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서 '신당역 젠더 폭력 살인 사건 추모 기도회'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교계 여성·연합 단체들이 9월 23일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서 '신당역 젠더 폭력 살인 사건 추모 기도회'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시편 6편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나를 떠나셨다고, 나를 버리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제발 떠나지 말아 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고통받고 있는 자신, 사무친 울화와 눈물로 지내는 자신을 하나님께 호소하며 탄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윗의 이 탄원이 오늘날 생명을 위협받는 여성들, 젠더 폭력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의 탄원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9월 23일 늦은 저녁,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서 찬양 '시편 6편'이 울려 퍼졌다. 찬양을 부른 이수현 씨(기독여민회) 뒤편에는 '여성 노동자가 일터에서 살해당했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참가자들은 고개를 떨구거나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모았다. 곁에 앉은 참가자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개기도 했다.

교계 여성·연합 단체 24곳이 서울 중구 신당역 앞에서 추모 기도회를 열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9일째 되는 날이었다. 당초 기도회가 예정된 시각은 저녁 8시였지만, 참가자들은 기도회가 시작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모여들었다. 희생당한 피해자를 애도하고 연대하기 위해 모인 그리스도인 100여 명은 차도에 길게 늘어앉아 '더 이상 한 명의 여성도 잃을 수 없습니다', '함께 애도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행동합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참가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여성 대상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분노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참가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여성 대상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분노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날 기도회 참가자들은 신당역 살인 사건은 명백한 '젠더 폭력' 사건이라고 말했다. 발언을 맡은 여름 씨(무지개신학교)는 "여성 혐오에 대해 무시한 채 이 사건이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단정 짓는 말, 또다시 구조적 성차별이 아닌 개인의 문제라며 덮어 버리는 말, 가해자의 구애를 받아 주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라며 사건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말, 여성의 당직 시간을 축소하면 되는 문제로 엉뚱하게 해결책을 돌려 버리는 말, 심지어는 이 사건을 협박 수단으로 사용하는 또 다른 스토킹 가해자들까지 이 모든 어처구니없는 모습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젠더 폭력에 무책임하고 메마른지 다시 한번 증명한다"고 말했다.

춘풍 활동가(기독교반성폭력센터)는 여전히 수많은 여성이 젠더 폭력으로 피해를 당하거나 죽고 있다며 비통해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도 분노와 슬픔이 계속 이어지는 이유는 신당역 젠더 폭력 살인 사건이 비단 어느 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터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도 계속되는 우리의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포털 사이트에 '왜 안 만나 줘'를 검색하면 교제를 거절당했다는 이유만으로 저지른 폭행·살인·스토킹 사건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지난 2021년 한 해 동안 1.4일마다 한 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에서 살해나 살해 위협을 당했다"고 했다.

황보현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위원회)는 기독 여성으로서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공간과 관계망을 위해 연대하겠다고 했다. 황 목사는 "'더는 한 명도 잃을 수 없다', '살아서 퇴근하고 싶다'는 외침이 눈물겹다. 여성이 폭력에 대한 두려움 없이 일상을 살아갈 권리, 노동할 권리, 사랑할 권리, 모든 권리를 되찾고 지키기 위해 함께하겠다. 나도 당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넘어서서 다시 용기를 내고 서로의 곁이 되도록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설교를 맡은 장근지 연구원은 함께 슬퍼하는 힘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보복과 복수를 밀어내자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설교를 맡은 장근지 연구원은 함께 슬퍼하는 힘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보복과 복수를 밀어내자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장근지 연구원(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은 '슬픔·기억·연대, 복이 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면서 폭력으로부터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고인을 기억하자고 했다.

"피해자는 마지막 탄원서에서 '누구보다 이 사건에서 벗어나고 싶은 제가 합의 없이 오늘까지 버틴 것은 판사님께서 엄중한 처벌을 내려 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라고 진술했다. 사건 당시 자신을 향한 위협 속에서도 끝까지 비상벨을 눌러 범인을 검거하려는 의지와 용기를 지녔고, 마지막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옳지 않은 것이 옳은 것을 대신할 수 없다는 그분의 믿음과 진심이 우리를 이 자리에 모이게 했다."

장 연구원은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오"(마 5:4) 말씀을 인용하며 "우리의 연대는 복수가 아니라 복"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받을 복은 바로 위로다. 여기 모인 우리가 서로의 위로다. 혼자라고 생각이 들 때 오늘의 연대를 기억하자. 보복이 가득한 이 세상으로부터 우리는 참된 복을 살아 내자. 슬퍼하는 힘으로부터 위로의 힘을 받아 보복과 복수를 밀어내자. 우리의 슬픔, 우리의 기억, 우리의 연대는 모두 하나님 안에서 선한 일이며 복이 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신당역 살인 사건 피해자와 유가족, 일상의 평화가 깨진 모든 여성을 위해 위로를 구하며 기도회를 마쳤다.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는 헌화를 하려는 참가자들의 줄이 길게 늘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추모 공간에 머무르며 포스트잇 메시지를 남기는 등 피해자를 추모했다.

예배를 마친 참가자들은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찾아 애도를 이어갔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예배를 마친 참가자들은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찾아 애도를 이어 갔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아래는 추모 기도회 참여 단위.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감리교전국여교역자회, 공간엘리사벳, 기독교반성폭력센터, 기독여민회, 대한성공회 전국여성성직자회, 무지개신학교, 믿는페미, 서울YWCA, 실천여성회 판, 위드유센터, 움트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위원회, 한국기독교장로회 청년회 전국연합회, 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전국연합회, 한국기독교장로회 전국여교역자회,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한국YWCA연합회, 한신대학교 신학대학 여학생회, 한신대학교 신대원 민중신학회, 한신대학교 신대원 성정의위원회, 한신대학교 신대원 학생회, F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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