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언니 페미 토크와 기독여성연구원 훌다를 만든 교수 4명을 8월 22일 서울 중구 희년평화빌딩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교회 언니 페미 토크'라는 이름으로 2년 반 동안 꾸준히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 사람들이 있다. 채널은 말 그대로 교회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는 곳이다. 요새는 '페미'라는 말만 들어도 엉뚱한 분노를 쏟아 내는 사람이 많은데, '교회+페미'라니 말 다했다. 대중의 반응이 두려울 법도 하지만, 이 '언니'들은 오히려 농담 반 진담 반 "요새 구독자 수가 잘 늘어나지 않는다. '어그로(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내용을 올리는 행위 - 기자 주)'를 더 끌어야 할 것 같다"고 웃으며 말한다.

이 언니들의 내공이 상당하기 때문 아닐까. 영상에서 이들은 다큐은애, 낭만소영, 직진주아, 걸크희선이라는 다소 귀여운(?) 별명으로 불리지만, 모두 수년에서 20년 가까이 대학에서 강의해 온 교수들이다. 이은애 교수는 구약신학, 백소영 교수는 기독교사회윤리학, 이주아 교수는 기독교교육학, 김희선 교수는 기독교상담학 박사다.

언니들은 할 말도 많다. 2020년 3월 16일 시즌 1 첫 영상을 업로드한 이래로 꾸준히 영상을 게재해, 현재 '기독교와 상담'을 주제로 시즌 12가 진행 중이다. 그간 △기독교와 페미니즘(시즌 1) △교회 성폭력(시즌 2) △교회의 가부장적 전통(시즌 3) △기독교 역사 속 여성 이해(시즌 4) △과학기술 시대의 여성(시즌 5) △영페미니스트와의 만남(시즌 6) △교회 '큰언니'들과의 만남(시즌 7) △그간 댓글에 대한 응답(시즌 8) △새길기독사회문화원·크리스챤아카데미 토크 콘서트(시즌 9) △성서 속 여성들(시즌 10) △기독교 모성 담론(시즌 11)을 다뤘다. 올해 가을부터 업로드할 시즌 13도 이미 다 찍어 놨단다.

이은애 교수.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은애 교수. 뉴스앤조이 박요셉

처음부터 유튜버가 되고자 의기투합한 건 아니었다. 강의 때문에 오며 가며 만나던 사이, 그러다 함께 '맛집' 찾아다닐 정도로 친해진 사이였다. 뭔가 해 보자는 다짐이 섰던 시점은, 서울YWCA가 2019년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에 연 토크 콘서트 '교회 언니들의 불금 파티' 때였다. 이날 함께 패널로 나선 '언니들'은 토크 콘서트에 참석한 교회 내 젊은 여성들을 만나고 나서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은애 / 거기서 젊은 청년 200명 정도가 모여 울분을 토하는 걸 봤어요. 사실 학교에서 강의할 때도 그런 걸 느끼긴 했죠. 20대 학생들에게 과제물을 받아 보면, 기독교는 이제 할머니가 다니는 '할머니의 종교'가 됐더라고요. 제가 처음 강의를 시작한 19년 전만 해도 기독교는 '어머니의 종교'였거든요. 상황이 달라진 거죠. 젊은 사람이 교회에 별로 없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교회에 이런 언니들도 있다고, 기성세대 여성들이 다 교회 부엌에서 밥하고 설거지만 하는 건 아니라고, 보수적인 남성 목사들이 설교하는 대로 받아들이는 건 아니라고. 어떤 현장이든, 몇 명이 듣든 그런 걸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언젠가 유튜버가 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가지고 있던 걸크희선이 유튜브 채널을 열자고 제안했다. 마침 크리스챤아카데미에서 영상 촬영·편집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2020년 3월 처음으로 영상을 올렸다. 학교에서의 강의는 비교적 안전하지만 유튜브는 아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와 억측이 더 심하기도 하다. 그간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물으니 '영페미'들과 만나 이야기 나눴던 시즌6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가장 많은 악플이 달렸다고….

이주아 / 영페미 특집 때 제대로 어그로를 끌었죠.(웃음) 어디서 좌표가 찍혔는지 댓글이 60~70개씩 달렸어요. 근데 이건 저희만 욕먹는 게 아니라 젊은 친구들이 비난당하는 거라 상처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댓글 창을 닫았어요. 저도 처음에는 악플이 달리면 너무 화가 났는데 이제는 악플이 올라오면 반갑더라고요. 어쨌든 뭔가 담론으로 확장하려면 그런 게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요즘에는 내공 많은 사람들을 초청해서 다시 한번 어그로를 끌어 볼까 싶습니다.(웃음)

이주아 교수.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주아 교수.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들은 교회 언니 페미 토크에 그치지 않고 올해 3월 '기독여성연구원 훌다'를 만들었다. 훌다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여성 예언자로, 남유다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 때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기독여성연구원 훌다는 성평등한 한국교회를 위해 연구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훌다'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을 돕는 것은 낭만소영의 오랜 소원이었다. 언젠가 하려던 일을 교회 언니 페미 토크 멤버들과 함께하게 됐다.

백소영 / 벌써 오래전 얘기인데요. 당시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원장님이 제 유학 동기였어요. 같이 식사하는데 그분이 느헤미야로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같이 한국교회 개혁을 위해 힘써 보자는 거죠. 근데 저는 생각이 달랐어요. 그 자리에서 "내가 왜 느헤미야를 해. 나는 훌다를 할 거야"라고 말했어요.(웃음) 밥 먹으면서 한 얘기였지만 저에게는 되게 중요한 지점이었어요.

 

느헤미야가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다시 근본으로 돌아갈 것이다, 회복할 것이다,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을 재건할 것이다, 이런 목표가 얼마나 훌륭해요. 의도는 훌륭한데 어느 지점 이상으로는 발상이 안 되는 거죠. 교회 개혁을 열망하는 여성들에게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곳에 와서 도우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는 종교개혁 때 남성들의 사고 방식과 똑같은 거죠.

기독여성연구원 훌다는 출범과 동시에 한국여성재단 성평등 사회 조성 사업에 선정돼 지원금을 받게 됐다. 훌다는 이 지원금을 통해 9월 말 '기독여성주의 입문서'를 출간할 예정이다. 7월 21일에는 '우리 교회 성평등 지수 테스트'를 개발했다. 15가지 질문에 답하면 성평등 관점으로 자신이 다니는 교회를 진단해 볼 수 있다. 9월 30일까지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으니, 이 기사를 읽는 독자분들도 한번 해 보시면 좋을 것 같다.

이 사업이 의미 있는 이유는 또 있다. '영페미와 교회 언니가 함께하는 교회 내 성평등 탐구'라는 사업 이름처럼, 시작부터 끝까지 영페미들과 함께한다.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직진주아의 휴대폰에는 교회에 다니는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모인 채팅방이 많다. 사업 기획부터 그들과 함께했다. 일례로 기독여성주의 입문서는 목차부터 영페미들이 정했다. 그에 따라 교수님들이 원고를 쓰고, 젊은 학생들이 피드백을 하게 됐다. '쉽고 재밌게' 쓰지 않으면 다시 써야 한다고….

백소영 교수. 뉴스앤조이 박요셉
백소영 교수. 뉴스앤조이 박요셉

교계에서는 지금의 여성 의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여성들의 조직'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한때 '여성 안수'라는 공통 의제를 가지고 힘을 모았던 몇몇 교단의 여성 단체들도, 현재 교회 내 젊은 여성들의 고민을 듣고 해결하려는 노력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교회 토양 자체가 여성들이 자체적으로 무언가를 조직하기 힘든 환경이기도 하다. 이런 척박한 상황에서도 작지만 의미 있는 단체가 하나둘 생기고 있다.

교회 언니 페미 토크와 기독여성연구원 훌다도 그런 단체이지만 이를 운영하는 일은 쉽지 않다. 4명 모두 생업이 바쁠 뿐더러, 당장 교회 언니 페미 토크는 지원이 종료돼 내년부터는 영상을 찍을 때마다 제작비를 각출하게 생겼다. 그럼에도 이들은 아직 멈출 생각이 없다. 왜 계속하려고 할까. 자신들을 '교회 언니'로 포지셔닝한 '교수님'들은 본인들의 역할을 무엇이라 생각하고 있을까.

이은애 / 우리가 유튜브를 한다니까 누구는 "수익은 좀 있어?"라고 물어요. 수익은 무슨, 우리가 돈을 내면 냈죠.(웃음) 말하자면 정말 사서 고생하는 건데… 어려워요. 시간 내기도 어렵고 돈도 들어가고 우리 마음도 여러 가지로 쉽지 않은 부분이 있어요. 그래도 일단 시작했고 2년 반 동안 잘해 왔기 때문에, 하는 데까지 잘 이어 가면 좋겠어요. 꼭 저희 네 사람일 필요는 없어요. 다른 멤버가 생겨서 또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죠. 다른 세대, 다른 전공, 다른 단체랑 계속 함께하면서 주제를 넓혀 가면 좋겠어요.

이주아 / 제 목표는 초지일관이에요. '여성신학의 대중화'. 영페미들에게는 분노의 에너지가 있잖아요. 거기에 여성신학이 이뤄 놓은 학문적 성과들이 더해지면 좋은데,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제가 현장에서 느끼는 건데, 교회 안에서 성차별에 분노하며 고민하는 여성들마저 '여성신학'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라요. 알 수가 없는 토양이죠. 교회에서 성서 해석 권한은 주로 남자들이 쥐고 있잖아요. 여전히 여성 안수조차 주지 않는 교단이 있고 당연히 분노할 수밖에 없는데, 그 분노가 정당한 것인지조차 모르는 거죠. 그런 사람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진입 장벽을 낮추는 일을 하면 좋겠어요.

김희선 교수. 뉴스앤조이 박요셉
김희선 교수. 뉴스앤조이 박요셉

김희선 / 저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목사인데요. 이제 기장에서도 3040 여교역자 모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어요. 지금 청년들을 보면 성차별적인 교회 모습 때문에 교회를 그만 다니고 싶어 하고, 30~40대 목회자들은 결혼·출산 등을 이유로 목사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해요. 저희 악플 중 제일 많은 게 "교회와 페미니즘이 양립 가능하냐", "기가 막힌 혼종이다" 이런 거예요. 저는 '교회를 떠나지 않는 페미니즘'을 지향하거든요. 우리가 그 길을 함께 가고 있으니까, 그런 분들이 저희를 보면서 잠깐 쉬더라도 여정을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백소영 / 어찌 보면 저 같은 50대 여성 교수는 이제 교회에서는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희가 힘들다기보다는 10~30대 자매들이 힘들죠. 제 입장에서는 저부터가 그런 사람들을 담론으로 억압하는, 반페미니즘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조심해야 할 거 같아요. 그들에게 어느 정도 안전한 그물망을 만들어 주고 넘기는 것이 훌다의 목적이에요. '여성 연대를 위한 토대'를 만드는 거죠. 망을 만들어야 그 위에 흙도 얹고 돌도 얹을 수 있을 테니까요. 저희가 어마어마한 기득권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 우리 역할은 그 토대를 다지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