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서는 스스로 죽는 것도 죄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희는 얼마 전 있었던 사건처럼, 아이와 함께 죽습니다. 아이를 낳고 제가 무슨 죄를 지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장애인인 게 죄고, 그 장애 아이를 낳은 저도 죄인입니다. 세상이 저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는 더 이상 죄를 짓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를 죽이고 싶지도 않고, 저 자신을 죽이고 싶지도 않습니다."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강서장애인부모연대 장미라 지회장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최근 한 달 새 발달장애 자녀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모들을 언급할 때는 목이 메는 듯 잠시 숨을 골랐다. 발달장애인 딸을 둔 그는 "부모들이 바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아이와 함께 평범하고 다정한 이웃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며 여러 차례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최근 한 달 새 발달장애인·부모 6명이 세상을 떠났다. 발달장애인 딸을 둔 장미라 지회장(강서장애인부모연대)는 이들의 잇따른 죽음에도 정부가 제대로 된 지원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최근 한 달 새 발달장애인·부모 6명이 세상을 떠났다. 발달장애인 딸을 둔 장미라 지회장(강서장애인부모연대)는 이들의 잇따른 죽음에도 정부가 제대로 된 지원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세상을 떠난 발달장애인과 가족을 추모하고, 사회적 돌봄 체계 마련을 촉구하는 예배가 6월 2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렸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장기용 위원장)·장애인소위원회(황필규 위원장)가 예배를 주관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씨에도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과 그리스도인 60여 명이 거리에 앉아 예배에 임했다. 지난 4월 19일 삭발식을 단행한 짧은 머리의 부모들은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 체계 구축하라'는 손 피켓을 펼쳐 들고, 흐르는 눈물을 수시로 닦아 냈다.

이날 설교 본문은 요한복음 9장 1~3절이었다. 제자들이 예수에게 "이 사람이 시각장애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한 것이냐"고 묻자, 예수가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다"라고 답하는 장면을 담은 본문이다.

설교를 맡은 장기용 위원장은 생산성을 기준으로 인간을 평가하는 세상에서 장애인은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동안 사회가 장애인과 가족을 가급적 안 보이는 곳에 격리하고, 비장애인의 몸과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수준에서 그들을 지원해 왔다고 비판했다. 그는 "장애인들이 '죄인'이라고 한다면, '누가 그들을 죄인으로 만들었느냐'고 물어야 한다. 그건 바로 우리 사회이고, 국민이 책임을 위임해 사회 공동체를 운영하게끔 만들어 준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교회협 정의·평화위원회 장기용 위원장은 "발달장애인 학교 졸업식은 가장 슬픈 날"이라며 발달·중증 장애인 돌봄 책임을 더이상 가족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교회협 정의·평화위원회 장기용 위원장은 "발달장애인 학교 졸업식은 가장 슬픈 날"이라며 발달·중증 장애인 돌봄 책임을 더이상 가족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발달장애인 학교에서 가장 슬픈 날은 고등학교 졸업식 날입니다. 보통 고등학교 졸업식은 성인이 되어서 대학에 간다거나 사회에 진출하는 것을 축하하는 자리지만, 발달장애인 학교에서는 가장 슬픈 날입니다. 졸업하고 나서 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 역시 육체적으로 성인이 된 아이를 24시간 어린아이 돌보듯 쫓아다니면서 봐야 하기 때문에 눈물의 졸업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발달장애인 학교에 입학해서 졸업할 정도면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중증 장애인은 학교에 입학할 수도 없습니다. 정부가 운영하는 프로그램과 시설은 턱없이 부족해서, 대단한 행운이 따르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습니다. 장애인도 괴롭지만, 그들을 돌봐야 하는 가족들 역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문화생활이나 친구를 만나 차 한 잔 할 수 있는 여유는 고사하고, 경제활동도 할 수도 없습니다. 과연 누구의 죄입니까. 누가 이들을 고통의 나락으로 몰아넣고 있습니까."

장 위원장은 발달·중증 장애 가족에게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그는 장애인 돌봄 책임을 더 이상 가족에게만 전가해서는 안 된다며 "정부와 국회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삶의 현장을 진심으로 성의 있게,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탁상공론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부분적인 지원으로 생색낼 것이 아니라,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사회 공동체 속에서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예배 참가자들은 정부가 '발달·중증 장애인 24시간 지원 체계'를 수립해 장애인·가족이 마주한 죽음의 사슬을 끊어 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예배 참가자들은 정부가 '발달·중증 장애인 24시간 지원 체계'를 수립해 장애인·가족이 마주한 죽음의 사슬을 끊어 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애인이기도 한 황필규 위원장도 발언에 나섰다. 그는 "하나님은 모든 고통 가운데 계신다고 믿는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억울한 고통 가운데 계신다고 믿는다. 오늘 이곳에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억울한 고통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리라고 믿는다"며 가족들을 위로했다.

예배 참가자들은 정부를 향해 하루빨리 '발달·중증 장애인 24시간 지원 체계'를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정부는 사고가 발생하면 늘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개선하지 않는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행태를 반복함으로써 장애인과 그 가족을 계속해서 죽음의 낭떠러지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주간 활동 서비스 중심의 '낮 시간 서비스'를 개편하고, 활동 지원 서비스 제공 시간을 24시간으로 확대하라고 촉구했다.

다음은 성명문 전문.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라
- 발달장애인과 중증 장애인을 위한 24시간 지원 체계 구축을 촉구하며 -

지난 5월 23일, 서울 성동구에 거주하던 40대 어머니가 발달장애가 있는 6살 아들을 안고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세상을 등졌다. 같은 날 인천에서는 대장암 진단을 받은 60대 어머니가 중증 장애가 있는 30대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을 시도했으나 혼자 살아남는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참사가 벌어진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우리는 부모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딸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혹한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절망하고 또 분노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참사가 반복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발달장애인과 중증 장애인에 대한 '24시간 지원 체계'가 전혀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마치 장애가 죄라도 되는 양 저들을 외면하고 장애가 있는 자녀를 돌보는 책임을 고스란히 가족에게 전가함으로써 한 가정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발달장애의 특성상 활동 지원이 없이는 일상적인 삶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제대로 된 지원 없이 하루의 모든 시간을 발달장애 자녀와 함께 보내야 하는 가족과 부모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죽음의 절벽 앞에 선 이들에게 정부는 어떠한 희망도 되지 못했다. 오히려 사고가 발생하면 늘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개선하지 않는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행태를 반복함으로써 장애인과 그 가족을 계속해서 죽음의 낭떠러지로 떠밀고 있다.

오직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정부는 지금 당장, 발달장애인 주간 활동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낮 시간 서비스를 개편하고, 활동 지원 서비스 제공 시간을 확대해 24시간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억눌린 이들에게는 해방을 선포하는 예언자적 사명으로 윤석열 정부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전하기 위해 이곳에 섰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과 함께 한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정부는 발달장애인과 중증 장애인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머리 숙여 사죄하라.

하나, 정부는 발달장애인과 중증 장애인을 위한 24시간 지원 체계를 지금 당장 수립하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우리 사회가 어느 누구도 삶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이 일을 위해 이 땅의 모든 장애인들 그리고 그 가족들과 함께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무관심 속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모든 발달장애인과 중증 장애인들, 그리고 그 가족들 위에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한다.

2022년 6월 21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 장애인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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