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철원평화전망대를 다녀왔습니다. 하나누리·샬렘영성훈련원과 함께 6·25 평화 순례를 준비하고 있거든요. '자연의 보고'라는 비무장지대가 눈앞에 펼쳐지는데 오묘한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평화를 갈구하는 그리스도인 100명이 그냥 저 철조망을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

지난주 목요일에는 박요셉 간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파주에 있는 오두산통일전망대를 가 보았습니다. 심각한 자전거 취미를 가지고 계신 독자·후원회원님들과 함께 서울-임진각 자전거 평화 순례를 해 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거든요. 박 간사와 둘이 먼저 해 본 거죠. 저희는 홍제천에서 출발해 파주까지 대략 45km를 왕복으로 달렸는데요. 생각해 보니 파주에서 개성 가는 길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보다 더 가깝더라고요. 그렇게 멀리 있는 것 같은 북한이 사실은 정말로 가까이 있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저는 그저 아무 곳이나 발 닿는 대로 돌아다니는 걸 즐깁니다. 하루는 군산에서 전주 방향으로 운전하고 있는데 김제 평야 너머 저 멀리 보이는 산맥이 저에게 손짓하며 오라고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겁니다. 그 손짓에 홀려 아무 생각 없이 산이 나올 때까지 달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북쪽을 바라보면서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평화나 통일 같은 거대 담론 때문만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나라 운동에 투신한 사람으로서 평화를 갈구하는 건 맞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그저 발 닿는 대로 가고 싶습니다. 그곳이 어디든지 말입니다. 한강 하류 건너편에 보이는 나지막한 산이나, 그곳을 바라보며 서 있는 파주 오두산이나 그저 한반도 어디에나 널려 있는 작은 언덕일 뿐입니다. 누가, 왜, 무슨 자격으로 선을 그어 놓고 못 가게 막는단 말입니까? 그냥 김밥 한 줄 들고 가서 밥 한 끼 먹고 오겠다는 데 말입니다.

저는 이 상황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갈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차 타고 평양·라선을 지나 대륙 횡단을 할 수 있어야 정상 아닙니까? 한반도는 대륙에 붙어 있는 땅이지 섬이 아니니까요.

그리스도인은 평화를 이루는 사람입니다. 체제, 국가 이데올로기로 그어 놓은 선에 종속되지 않습니다. 평화를 향한 급진적인 상상력과 실행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모든 것을 내어놓은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이자 의무입니다. 즐거운 상상을 해 보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조만간 철조망을 넘어가려는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혹시 100명이 모이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전쟁 없는 한반도,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꾸며 오늘도 평화를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뉴스앤조이> 도현

처치독 리포트

장애인의 '권리'를 깨닫기까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박경석 대표) 출근길 지하철 타기 시위가 4월 21일부터 다시 시작됐습니다. 장애인들의 이동권·교육권·탈시설권 등을 담은 법안에 합당한 예산을 부여해 달라는 요구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장애인의날'인 4월 20일까지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시위를 멈춘 약 한 달간 수백 명이 매일 삭발 시위를 했는데도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출근길 지하철 체증을 겪는 시민들 반응은 엇갈립니다. 날카로운 반응도 많습니다. 부끄럽습니다만, 사실 저 또한 이번 시위 전에는 장애인들의 투쟁에 크게 관심이 없었어요. 제 기억 속 장애인들의 지하철 타기 시위나 버스 가로막기 시위 등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오는 뉴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장애인들을 사회적 소수자라고 생각하기에 비난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잘 알지 못했죠.

그래서 제가 이번 장애인들의 투쟁을 구독자 여러분께 설명해 드릴 깜냥은 안 됩니다. 다만 저와 비슷한 눈높이에서 장애인들의 투쟁을 뉴스로 접하는 분들께, 제가 요 몇 주간 취재하면서 느낀 점들을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정하를 인터뷰하게 된 계기

저는 4월 6일 탈시설 운동을 하는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의 김정하 활동가를 인터뷰했고, 이틀 뒤 기사 2개를 썼습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전장연 시위를 비난하고 탈시설 운동까지 저격하기 시작하면서, 김정하 활동가 인터뷰가 나간 시기는 아주 적절했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참으로 민망하게도 저는 이런 타이밍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전장연 시위는 제가 김정하 활동가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데 큰 이유가 되지 않았어요. 그저 당시 한 일간지에 실린 칼럼을 보고 김정하 활동가 개인에게 관심이 생겨서 인터뷰를 요청했던 거였거든요. 물론 약속을 잡은 날부터 인터뷰 당일까지 일주일간 전장연 시위가 더욱 이슈가 되긴 했죠.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탈시설 운동에 대해 공부하고, 자연스럽게 장애인 인권 단체들의 투쟁에 대해서도 배우게 됐어요. 김정하 활동가와 이야기하면서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었죠. 저에게 가장 와닿은 부분은, 자유롭게 이동하고, 교육받고, 지역사회에서 사는 것이 시민의 '권리'라는 것이었어요. 어찌 보면 정말 단순하죠.

비장애인들은 이런 것들을 공기처럼 누리고 있잖아요. 비장애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해서 굳이 보장하라고 요구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에요.

· 그렇다면 왜 장애인에게는 이런 시민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을까요?

· 장애인은 시민이 아닐까요?

· 장애인들은 몸이 불편하니까 권리를 보장하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요?

이렇게 질문해 보니, 바뀌어야 할 것은 전장연의 시위 방식이 아니라 아직도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는 게 불편한 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수어 통역사와 경사로

기독교 최대 명절인 부활절과 성탄절, 매해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가 예배를 드리는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연합 예배' 아시죠? 4월 17일 부활절에는 '장애인 권리 투쟁'에 연대한다는 의미로 장애인 인권 단체가 모여 있는 서울 혜화역 마로니에공원 앞에서 예배를 열었는데요. 장애인 당사자들이 증언과 기도, 설교를 맡았죠.

무엇보다 눈에 띈 건, 찬양부터 기도, 설교, 성찬 등 예배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에 수어 통역사가 함께했다는 것입니다. 수어 통역사 2명은 번갈아 가며 단상 한쪽에 자리를 잡고 수어 통역을 했는데요. 어찌나 열정적인지 그들의 수어와 표정만 봐도 메시지와 감정까지 전달되는 듯했습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차도로 내려오는 길과 단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경사로가 설치된 모습이었어요. 증언과 설교를 맡은 사람들이 휠체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 할 조치였죠.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연합 예배'는 취재할 때마다 항상 울림을 주는데요. 그렇게 은혜를 주는 예배이지만, 몇 년간 취재하면서 수어 통역사가 배치되거나 경사로가 설치된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요. 사회적 약자를 찾아가 예배를 드리면서도 항상 누군가를 배제해 온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그간 전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던 제 자신에게 살짝 소름이 돋았어요. 누군가의 권리를 배제하는 것이 이토록 자연스러웠다니. 수어 통역사와 경사로를 보며 장애인의 '권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소란스러운 동거'를 꿈꾸며

책 하나 소개하고 글을 마치려 합니다. 며칠 전 출간된 따끈따끈한 책 <소란스러운 동거>(IVP)입니다. 이 책 너무 재밌어요. 출판사의 저자 인터뷰 요청으로 책을 미리 읽어 볼 수 있었는데요. 저는 책 읽는 속도도 느리고 특히 e-book을 읽기 힘들어하는 체질이에요. 그래서 너무 읽기 싫었죠. 그런데 웬걸, 그런 제가 정말 '빨려 들어간다'는 표현이 알맞을 정도로 몰입해서 읽었다는 거 아닙니까. ㅎㅎ 저녁을 먹으면서도 휴대폰 작은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답니다.

술술 읽히지만 절대 가벼운 책은 아니에요. 내용은 기본적으로 뇌성마비 장애인 박은영 작가의 삶 이야기인데요. 한 '장애 여성'의 삶 속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녹아 들어가 있었습니다. 장애인의 권리를 구호가 아닌 삶으로 볼 수 있는 책이랄까요? '장애인'이라고 하면 뭔가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부담 없이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신앙과 신학 이야기도 나오니 교회에서 삼삼오오 읽고 나누면 금상첨화가 될 거라고 감히 장담합니다!

'소란스러운 동거'라는 제목은 저자가 "'비정상인'만 '정상인'들의 사회에 조용히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모두가 끊임없이 대화하며 서로에게 적응해 가는 공동체를 꿈꾸며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전장연의 시위도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적응해 가는 '소란스러움'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이 소란스러움이 우리를 더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동료 시민의 권리를 인식하고 연대하는 것으로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 교회 개혁과 회복을 꿈꾸는 뉴스레터 처치독은 매주 금요일 오후 6시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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