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교육연구소를 운영하며 하울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임정혁 목사(42)가 암 투병기 '창 너머 풍경'을 연재합니다. 누구보다 정력적인 삶을 살아온 그는 갑작스레 찾아온 질병을 통해 하나님과 삶을 신앙적·실존적으로 돌아보게 됐다고 고백합니다. <뉴스앤조이>는 인생 전반전을 마무리하고 후반전을 시작하는 임 목사의 이야기를 6회에 걸쳐 격주로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방심과 당혹감 사이

2022년 1월 7일 대학 병원 병실. 나는 몸을 돌려 창밖을 보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약 20cm 정도 되는 목 절개 부위가 너무 아파 그마저도 힘겨웠다. 수술 전 집도의는 수술 시간을 약 3시간 정도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5시간 정도가 걸렸고, 나 역시 생각보다 힘든 수술이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거친 호흡과 함께 지난 3개월의 시간이 떠올랐다. 2021년 10월 초 나는 매년 해 왔던 건강검진을 받고 있었다. 당시 건강검진센터 직원은 내게 초음파검사 옵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그 직원 말로는 남성들은 주로 뇌혈관, 심장, 전립선을 검사한다고 했는데, 순간 나는 왜인지 모를 이상한 느낌이 들었고, 뜬금없지만 갑상선을 검사하기로 결정했다. 

그로부터 3주가 지난 10월의 마지막 주. 목에 혹이 2개 있는데 6개월간 추적 관찰을 하면 될 일이라는 검진 결과를 받았다. 이때만 해도 나는 '이게 뭐야? 내 목에 혹이 있다고?'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내에게도 "괜히 기분 나쁜데, 마침 단골 병원 원장이 초음파를 잘 본다니까 시간 나면 한번 가 볼게" 하는 정도였다. 나의 암 투병은 방심과 당혹감 사이에서 그렇게 시작됐다.

갑상선암은 '착한 암'이라던데

내가 방문한 동네 병원의 원장은 두경부 검사로 초음파의학회에서 제법 이름난 의사였다. 우리 가정과는 개원 첫날부터 시작해 13년 이상 관계를 지속해 왔는데, 나는 원장에게 건강검진 결과를 보여 주며 검사 한번 받으러 왔고 했다. 원장도 그럼 여유 있게 마지막 순번에 보자고 했다. 속으로 '잘 됐다, 고맙다' 생각하며 기다렸다. 이때까지도 내 마음은 '에이, 설마' 하는 정도에 그쳤다. 

검사가 시작되자 순간적으로 불안감이 엄습했다. 모니터를 주시하던 원장의 얼굴을 우연히 봐 버렸기 때문이다. 가는 한숨을 내쉬는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그는 애써 나를 진정시키며 세침 검사(조직 검사)를 해 보자고 제안했고, 그다음 주에 검사를 받았다. 세침 검사는 보통 20~30분 걸리는 데 내 경우는 70분이나 걸렸다. 검사용 대형 바늘도 보통 2~3개를 쓰면 족한데 6개나 썼다. 원장이 갑상선 외에 쇄골 윗부분 여기저기를 찌를 때 비로소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일주일은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별일 없을 거란 아내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겉으로는 "설마 무슨 문제가 있겠나" 말하면서도 긴장감 때문에 계속 잠을 설쳤다. 지금 돌아보면,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날 밤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것 같다. 만약 암이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들에게는 뭐라 말해야 하나, 지금까지 벌여 놓은 일들은 또 어찌해야 하나…. 정말이지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오던 날. 단골 병원 원장은 결과지 뭉치를 내놓으며, 안타깝지만 암이라고 말했다. 나는 애써 웃음 지으며 "갑상선암은 착한 암이라던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6개월 지켜보다 수술하면 될까요?"라고 질문했다. 원장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지금 그럴 때가 아니에요. 목부터 양쪽 귀밑과 쇄골 부근까지 모두 전이돼 있으니, 가장 빨리 수술할 수 있는 병원을 찾으세요"라고 말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이고, 우리 아이들의 모든 성장 과정을 함께 지켜보며 제법 친밀감이 있었던 이 원장의 한마디에 나의 삶은 본격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

내가 살아온 삶은 대체 무엇이었나

암은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당사자인 나뿐 아니라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결과를 함께 듣고 있던 아내는 고개를 떨궜다. 길을 걷다 잠시 앉은 벤치에서 나는 담담하게 "암이면 수술받고, 좀 쉬면 되지. 차라리 잘됐네. 걱정하지 마"라고 했지만, 아내는 자신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다며 자책했다. 아이들 얘기를 꺼낼 때 함께 터져 버린 울음은 쉽사리 멈출 수가 없었다. '암'이라는 질병이 주는 충격과 무게감은 일반적인 질병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막막해진 내일의 삶 역시 마음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또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병원비는 얼마나 나올지, 지금까지 벌여 놓은 일들은 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아이들에게는 뭐라 말하고, 어른들에게는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1년은 제대로 말을 못 했다", "생활이 힘들다"는 등의 여러 수술 후기를 읽으며 마음은 더욱 복잡해졌다. 

그러나 가장 큰 고민은 신앙적이고 실존적인 차원에 있었다. 대체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긴 건지, 하나님은 왜 나를 이 광야 가운데 던져두신 건지, 지금까지 예수께 은혜 받고 신학교에서 배운 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생명을 사랑하며 의미 있게 살아왔는데, 내가 살아온 삶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내 신앙과 신학과 삶의 결과물이 고작 '암'인가 하는 질문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심지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한 지인에게 "네가 믿는 하나님이 진짜로 있는 건지 다시 한번 살펴보라"는 말도 들었다.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던 점은, 그동안 내가 익혀 온 기존 신앙 체계가 이 질병의 충격과 무게감을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나도 목사지만, 목사님들의 흔한 설교에 등장하는 "질병은 축복이자 은혜"라는 말이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다 하나님의 큰 뜻이 있어서 생긴 일이니 믿음으로 감사하라"는 말 역시 큰 위로가 되지 못했다. 핏덩이 같은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요"라는 고백도 더 이상 할 수 없는 말이 되어 버렸고, 천국에 빨리 가고 싶다는 마음도 전혀 들지 않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나는 기성 교회에서 죽음을 직면하거나 그즈음에 도달하는 중대 질병을 신앙 안에서 소화해 내는 방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성경 속 인물들이 어떻게 질병을 받아들였는지, 그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통해 어떻게 실존을 다시 세우며 극복했는지, 죽음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등에 대한 학습 경험이 매우 부족했다. 신학교에서도 장례 예배 집례 방법이라든지 죽음에 관한 공부를 하긴 했지만, 정작 내가 그 당사자가 됐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전혀 배우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여전히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내가 목사로서 성경을 깊게 살필 수 있는 신학을 공부했다는 것, 주변에 함께하는 좋은 신앙의 선후배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성경을 펼치자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예수의 삶과 사역 그리고 십자가 사건은 무너져 내리는 자아를 다시 세우는 주춧돌이 되어 주었다. 신앙 선배들의 고뇌와 연구가 모여 있는 연구 자료는 단순한 신학 논문이 아닌 삶을 안내하는 간증이 되어 주었다. 특히 선후배·동료·교인들의 기도와 응원과 후원은 매번 눈물을 쏟아내게 하며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교회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제 암과 같은 중대 질병은 더 이상 TV 속 이야기가 아니다. 국가 암 통계를 보니 1999년 이후 암 유병자가 약 215만여 명(2020년 1월 기준)에 달하고, 연평균 약 25만여 명의 신규 환자가 발생한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는 조기 발견율이 높고, 의료 체계가 좋아 생존율이 70%에 이른다고는 하지만, 암 외에도 심장·뇌혈관계 질병이나 사고 등을 통해 죽음 직전 혹은 그즈음까지 다녀온 환우 입장에서는, '죽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다양한 어려움이 있다. 그런 일을 겪고 나면 한 개인의 실존과 삶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으리라. 기존의 신앙 체계와 언어가 과연 한 신앙인의 마음과 영육을 위로하며 다시 일으키는 데 어느 정도 유효한 것인지, 교회는 이러한 중환자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적절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지, 목회자는 그에 대한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는지, 근본적으로 한국교회는 이러한 중대 질병과 죽음을 언제까지 터부시할 것인지 등을 말이다. 목회자로서 직접 암 환자가 되어 보니, 교회가 이러한 성찰을 통해 더욱 내실을 다져 가는 일이 참 중요해 보인다. 종교와 신앙만큼 삶과 죽음, 실존의 문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도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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