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은 한 살된 딸을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며, 어떻게든 크이우(Kyiv)에서 빠져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님과 동생, 어린 조카가 크이우에서 약 600km 떨어져 있는 르비우(Lviv)로 피난을 가기로 했지만, 식량과 휘발유가 부족하다고 한다. 가족들이 르비우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 지금도 알 수 없다. 내게 이제 남은 것은 기도와 희망뿐이다."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9일째. 한국에 22년간 거주 중인 엘레나 쉐겔 교수(한국외국어대학교 우크라이나어과)는 매일 지옥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두고 온 가족들이 염려돼 잠이 오지 않고 식사도 할 수 없다며 울먹였다. 지난 일주일간 가족들에게 벌어진 일을 설명할 때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이홍정 총무) 여성위원회·화해통일위원회가 우크라이나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회를 3월 4일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 프란시스홀에서 열었다. 우크라이나 국교인 정교회 신자를 포함해 교단·교파를 불문하고 그리스도인 40여 명이 모였다. 우크라이나인들도 옷깃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푸른색과 노란색 리본을 달고 참석했다.

3월 4일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 프란시스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회에 참석한 엘레나 쉐겔 교수(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뉴스앤조이 나수진
3월 4일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 프란시스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회에 참석한 엘레나 쉐겔 교수(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날 엘레나 쉐겔 교수는 우크라이나 국민이 생사가 오가는 상황에서도 조국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러시아에 맞서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속국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전면전을 선포했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가에는 '소중한 자유를 위해 우리는 영혼과 몸을 바칠 것입니다’라는 가사가 있다. 우리는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위해 러시아의 파시즘에 맞서는 싸움"이라고 말했다.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민간인 거주 지역에도 미사일과 폭탄을 터뜨리며 국제법상 금지된 무차별폭격을 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인은 사상자는 현재까지 2000여 명에 달한다. 3월 4일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위치한 유럽 최대 원전인 자포리자 원자력발전소 단지를 포격하고 군대를 파견해 점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교하는 한국정교회 암브로시오스 조그라포스(조성암) 대주교. 뉴스앤조이 나수진
설교하는 한국정교회 암브로시오스 조그라포스(조성암) 대주교.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날 설교를 맡은 한국정교회 암브로시오스 조그라포스(조성암) 대주교는 그리스도인이 신앙의 양심에 따라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향해 연대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제2차세계대전 중 유럽 그리스도교 교회들은 두려움 때문에 파시즘과 나치즘에 강력하게 반대하지 않았다. 미국 역시 위험한 중립적 태도를 보이고 유럽 전쟁에 개입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역사는 중립적인 태도가 세계 평화를 이루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줬다"며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지지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실천해야 할 의무이자 유일한 길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하루빨리 종식되고 평화가 찾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우크라이나 출신 유학생 로만 카브착은 "우크라이나의 많은 그리스도인이 전쟁에 노출돼 불안에 떨고 있다.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크라이나의 안녕과 평화를 간절히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전쟁의 횡포와 폭압 속에서도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중보와 연대로 우크라이나의 고난에 함께해 이를 이겨 내는 역사가 성취되기를 기도한다"고 했다.

교회협 여성위원회 이영미 목사는 전쟁을 겪고 있는 아이·여성·난민을 위해 기도했다. 그는 "지하철 선로에 이불을 펴고 아이를 품에 안은 어머니를 봤다. 참전하기 위해 어린 딸과 마지막으로 포옹하며 눈물 흘리는 아버지를 봤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놀이터와 유치원 한구석에서 겁에 질린 채 떨고 있는 어린아이들을 봤다. 군사훈련인 줄 알고 참여했지만, 생명을 죽여야 하는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청년들을 봤다"며 "속히 이 전쟁을 멈춰 달라. 국가들 사이의 공생을 허물어 버리고, 국제법의 의무를 저버리면서 큰 고통을 일으키는 모든 행동을 멈추게 해 달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출신 유학생 로만 카브착은 조국에 있는 이들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우크라이나 출신 유학생 로만 카브착은 조국에 있는 이들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날 기도회 참석자들은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가 답이다'라는 제목의 평화 호소문을 발표했다. △러시아는 3월 2일 열린 유엔 긴급 총회 결의에 따라 우크라이나 침공을 즉각 중지하고 철군할 것 △러시아는 도네츠크인민공화국·루간스크인민공화국 독립을 포함한 우크라이나 문제를 무력이 아닌 대화· ·외교 등을 통한 평화적 수단으로 해결할 것 △러시아는 핵 폭격 발언과 자포리자 원전 등에 대한 공격을 즉각 중단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국제기구와 정부는 이에 즉각 대처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에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대대적으로 수용하고 인도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예배를 마친 후 "전쟁을 멈춰라,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Stop the war in Ukraine, Give peace a chance"가 적힌 피켓을 들고 주한러시아대사관까지 행진했다. 무거운 표정으로 10여 분간 행진한 그리스도인들은 러시아대사관 인근 정동제일교회앞에 도착해,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종식될 때까지 기도하고 연대하겠다고 다짐했다.

우크라이나평화행동은 휴전할 때까지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러시아대사관 앞 정동제일교회에서 금요 평화 촛불을 진행한다. 교회협·한국정교회·우크라이나정교회는 전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여성·아이·난민을 돕기 위한 긴급 모금을 시작한다. 교회협은 모금액을 한국정교회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전달할 예정이라며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바라는 교단·교회·개인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참석자들은 주한러시아대사관까지 침묵 행진을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참석자들은 주한러시아대사관까지 침묵 행진을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우크라이나 여성·아이·난민을 돕기 위한 교회협·우크라이나정교회·한국정교회 긴급 모금
신한은행 100-012-602907(한국기독교연합사업유지재단)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