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합의 이행을 요구하는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의 파업이 58일째 이어지고 있지만, 사측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택배노조 진경호 위원장은 대화를 요구하며 21일 아사 단식을 시작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사회적 합의 이행을 요구하는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의 파업이 58일째 이어지고 있지만, 사측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택배노조 진경호 위원장은 대화를 요구하며 21일 아사 단식을 시작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 파업이 58일(2월 23일 기준)을 맞았다.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 CJ대한통운지부 노동자들은 안전하게 노동할 권리를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대화에 응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2월 10일부터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빌딩에서 농성을 시작했고, 21일부터는 택배노조 진경호 위원장이 물과 소금까지 끊는 '아사 단식'을 시작했다.

오늘 주문한 물건이 당일 배송되는 편리함 뒤에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택배 노동자가 있다. 2020년 말 코로나19로 택배 물량이 급증했고, 최근 2년간 과로사로 사망한 택배 노동자는 모두 22명에 달한다. 노조·사측·정부·여당은 택배 과로사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6월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안'을 만들었다. 합의안에는 △분류 작업 개선 △주 60시간 근무 △택배 원가 170원 인상 등 내용이 담겼다.

CJ대한통운은 국내 택배·운송 분야 1위를 점유하고 있다. 작년 택배 부문 영업 이익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CJ대한통운은 국내 택배·운송 분야 1위를 점유하고 있다. 작년 택배 부문 영업 이익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노조는 이 합의안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노조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은 지난해 배송비 242.5원을 인상했지만, 택배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수수료는 40.2원만 올랐다. 뿐만 아니라 노조는 사측이 만든 표준 계약서에 '당일 배송', '주 6일 근무' 등 독소 조항이 담긴 '부속 합의서'가 포함됐고, '죽음의 노동'이라고 불리는 분류 작업에 택배 기사들이 재투입되고 있어 실질적인 처우 개선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택배·운송 분야 1위를 점유하고 있는 CJ대한통운 택배 부문 작년 영업 이익은 1983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사측은 노조 요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은 개별 대리점과 계약을 체결했을 뿐, 택배 노동자들은 교섭 대상이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작년 6월 3일 중앙노동위원회는 원청인 CJ대한통운이 하청 소속 택배 노동자와 직접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결정한 바 있지만, 사측은 이에 불복하고 행정소송까지 제기했다.

교계 단체들이 2월 22일 '안전한 노동권을 지키려는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거리 기도회'를 열었다. 아사 단식 2일째인 진경호 위원장도 현장을 찾은 딸과 함께 기도회에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교계 단체들이 2월 22일 '안전한 노동권을 지키려는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거리 기도회'를 열었다. 아사 단식 2일째인 진경호 위원장도 현장을 찾은 딸과 함께 기도회에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택배노조와 시민사회·종교 단체 및 정당 등은 2월 18일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집회를 이어 오고 있다. 22일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예수살기,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정의평화기독인연대, 촛불교회가 CJ대한통운 본사 빌딩 앞에서 기도회를 열었다. 투쟁에 참여하기 위해 전국에서 온 택배 노동자 수백 명도 칼바람이 부는 거리 위에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단식 이틀째인 진경호 위원장도 현장을 찾은 딸과 손을 맞잡은 채로 기도회에 임했다.

택배노조 충청지부 이복규 지부장은 택배 노동자들이 시위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장시간 노동, 끝이 없는 노동, 지옥 같은 노동환경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재작년과 작년에만 22명의 택배 노동자가 운명했다. 국민들이 더 이상 택배 노동자들 죽지 않게 해 달라고, 그런 서비스는 받지 않겠다고 마음을 모아 주셔서 택배 요금을 170원 인상하는 사회적 합의를 이뤄 냈다. 하지만 CJ 재벌들은 택배 노동자들의 목숨 값을 자신의 탐욕과 이윤 축적을 위해 처우 개선이 아니라 자기 호주머니로 가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병 목사는 사회적 합의에 참여한 정부가 사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라고 촉구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전남병 목사는 사회적 합의에 참여한 정부가 사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라고 촉구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설교를 전한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전남병 목사는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을 '밥그릇 싸움'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전 목사는 "대한통운은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명분으로 지난 1년 사이 택배 원가를 인상했지만, 말도 안 되는 부속 합의서를 끼워 넣어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하고 이윤을 챙겨 갔다"고 말했다.

사회적 합의에 참여한 정부가 정작 합의 이행을 둘러싼 노사 갈등에 있어서 방관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 목사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면, 정치권은 의지를 갖고 이행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사측보다 더 나쁜 방관자다. 좋은 정치는 갈등의 당사자를 조정하고, 대화를 유도하고, 공동체에서 소외되는 이들이 없는지 살피는 '책임 정치'다. 하지만 현 정부는 노동자와 사측이 대립하게 만들고, 노동자와 노동자가 대립하게 만들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싸우게 만들고, 시민들이 노동자들을 욕하게 만든다"고 했다.

힘없고 소외된 약자를 위할 때 비로소 모든 이의 인권이 실현된다고도 했다. 전 목사는 "이 찬 바닥에 앉아서 곡기를 끊고 거대 자본 재벌과 맞서 싸우는 여러분이 이 시대의 잃어버린 양 한 마리다. 지금도 코빼기 하나 내비치지 않는 CJ대한통운 이재현 회장과 사측은 비단 우리만 업신여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있는 거다. 겨울은 봄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듯, 자본가는 단결한 노동자를 이길 수 없다. 함께 연대해서 승리의 날을 만들어 가자"고 말했다.

이날 기도회에 참석한 그리스도인들은 택배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며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날 기도회에 참석한 그리스도인들은 택배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며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정의평화기독인연대 박연미 씨는 억울한 이와 함께하는 하나님이 이들의 외침에 귀 기울여 달라고 기도했다. 그는 "주문한 물품이 제때 배송되지 않아 투덜거리며 불평하던 그 이면에, 제때 배송하려고 했던 택배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발걸음과 땀이 있었음을 알게 됐다. 택배사와 택배 노동자, 소비자의 관계에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의 책임도 있다"며 그리스도인들이 투쟁을 지지하며 끝까지 연대하겠다고 다짐했다.

노동자들은 기도회 내내 "아멘", "할렐루야"라고 외치며 호응했다. 주최 측은 노조에 연대 기금을 전달하며 안전한 노동권을 지키려는 택배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하겠다고 했다.

종교·시민 단체 등이 함께하는 CJ대한통운택배공동대책위원회는 매일 저녁 CJ대한통운 본사 빌딩 앞에서 집회를 이어 간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종교·시민 단체 등이 함께하는 CJ대한통운택배공동대책위원회는 매일 저녁 CJ대한통운 본사 빌딩 앞에서 집회를 이어 간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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