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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학위원회가 '사건과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시대적 요청에 대한 신앙고백과 응답을 신학적 접근과 표현으로 정리합니다. 매달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해 칼럼을 게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신학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22년 1월 주제는 "코로나 시대, 외면당하는 낮은 목소리들"입니다. - 편집자 주

이 글은 1월 18일 화요일 저녁, 온라인 화상회의로 진행한 '선교 동역자 간담회'를 토대로 재구성한 글이다. 6명의 참석자 중 4명은 미국에서 왔고, 나머지는 캐나다와 일본에서 왔다. 한국에서 산 지는 5개월에서 8년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D6 비자(종교 비자)'를 가지고 선교 및 자원봉사를 목적으로 한국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매달 한 번씩 모여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번에는 '코로나 시대에 외국인1)으로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식당을 들어가기 전 사람들은 휴대폰을 흔들어 댄다. 코로나 시대에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가기 전에 필수적으로 찍어야 하는 QR 코드 생성을 위해 하는 행동이다. K는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주섬주섬 꺼낸다. 해외에서 예방접종을 받았다는 증명서인데, 휴대폰이 QR 코드와 연동되지 않아 종이로 된 증명서를 들고 다녀야 한다. "이게 뭐냐"며 되묻는 식당 주인들이 있어서 식당에 갈 때마다 무척 긴장이 된다. 한국말이 서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Y는 공부를 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일자리를 얻어서 일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주민세·소득세도 내고 있고, 건강보험료도 꼬박꼬박 낸다. 그런데 재난 지원금은 소득 기준에 들어가는데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받지 못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서서 진정서를 내고 이주민 단체들이 성명서를 내고 나서야 1차 지원금을 받기는 했지만, 이후 지급된 2차 지원금은 결국 또 받지 못했다. 지원금을 받지 못해 아쉽다기보다는 차별받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한국인들과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당연히 한국인이 먼저 아니냐는 반응을 보인 사람들도 있어서 무척 씁쓸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아니지만 이 사회에 같이 살고 있는 '시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거부당한 느낌이었다.

G는 지난 8월 한국에 오기 직전에 미국에서 백신을 2차 접종까지 맞고 왔다. 그런데 해외에서 맞은 백신은 한국에서 인정해 주지 않아 한동안 고생을 했다. '백신 패스'가 적용되면서 해외에서 백신을 맞은 사람도 보건소에 등록을 하면 인정을 해 준다고 하는데, 정작 보건소가 어디인지, 어떤 서류를 들고 가야 하는지 정보가 부족해서 고생했다. 우여곡절 끝에 백신 증명서를 등록했지만 어려움은 끝나지 않았다. 백신 등록을 하면서 3차 접종이 가능하게 됐는데, 질병관리청 웹 사이트에 접속해 예약을 하려고 하니 정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메세지만 계속 뜬다. 결국 한국 친구의 도움을 받아 전화로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언어 장벽과 정보 부족으로 많은 부분에서 늘 한 발 뒤쳐지는 기분이 든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이주'라는 경험만으로 열악한 사회적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닐 테다. 이주민을 한 그룹으로 묶어 생각하기에는 소득도 생활수준도 천차만별이고, 흔히 말하는 선진국에서 온 피부색이 하얀 사람들은 한국에서도 여전히 특권을 누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들이 가진 한 가지 공통점은 본인의 나라를 떠나 한국으로 '이주'했다는 경험이고, 그렇기 때문에 문화적·사회적으로 소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더욱 세심한 관심과 제도적 지원이 필요할 텐데, 재난과 위기 시대를 맞이하면서 가장 먼저 소외되고 고립되기 쉬운 집단이 외국인 또는 이주민이기 때문이다. 필자도 10년간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산 경험이 있기 때문에, 타국에서 살면서 느껴지는 외로움과 고립감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사상 초유의 팬데믹인 코로나19 상황에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국 사회가 모두의 안전을 위해 발표하는 거리 두기 방역 지침은, 외국인과 한국인 사이의 거리를 한층 더 멀어지게 하는 원인이 된다.

방역 지침으로 인해 사적 모임의 인원수를 제한한다는 것은, 모임에서 누군가는 포함이 되고 누군가는 소외가 된다는 말이다. 이로 인해 한국 생활이 낯선 외국인이 한국인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려워졌다. 실제로 지난 간담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선교 동역자들이 이 부분을 언급했다. 한국인들과 교류하면서 봉사하고 선교하기 위해서 한국에 왔는데, 정작 한국인들과의 관계 형성에 무척 어려움을 겪고 있고, 많은 교회가 봉쇄가 된 탓에 접근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게다가 빠르게 바뀌는 코로나 정책과 방역 지침은 외국인들을 무척 혼란스럽게 한다.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주로 한국인 지인들에게 의존하거나 소셜미디어를 통해야 하는데, 그래서 늘 뒤쳐지는 기분이 들고 새로운 정보가 생길 때마다 불안과 걱정이 밀려온다.

간담회 참석자 대부분은 영어 사용이 가능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비교적 접할 수 있는 정보들이 많지만 불편함은 여전하다. 한 참석자는 영어로 된 정보들 중에도 오역된 것이 많아서 그조차도 의심하게 된다고 했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정보,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일상적인 일들도 외국인들에게는 장벽으로 느껴질 때가 많은데, 코로나 상황은 그것을 더욱 가중했다. 그래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친구가 돼 주는 한국인들이 무척 고맙다고 한다. 정보를 전달하려는 작은 노력, 밥 한 끼 함께 먹어 주는 작은 행동, 고립되고 외로운 심정을 알아주는 작은 공감이 이들에게는 큰 힘과 위로가 된다. 지금은 모두가 힘들고 어려울 때다. 그렇기 때문에 소외당하고 고립된 이들을 한번 더 돌아보는 게 더욱 중요해졌다. 이것을 개인에게 의무로 떠넘길 게 아니라 제도적으로 적용되도록 목소리를 내는 일도 중요하다.

코로나 시국을 겪으면서 우리 모두가 연결돼 있다는 것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누구의 안전이 더 중요한지를 따져서 특정 그룹만을 보호하려는 노력은 코로나 시대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소외와 배제 없이 누구나 보호되는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만이 모두가 살길이다. 간담회 참석자들은 외국인으로서 한국에서 겪은 불편한 경험으로 인해, 한편으로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고립된 이들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내가 경험한 불편함을 누군가도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과 시선을 갖는 일은 중요하다. 이주의 경험은 누구에게도 있을 수 있고, 새로운 문화·사회에 적응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서 속 여러 인물들도 이주를 경험했다. 구약에서는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을 비롯해 룻, 하갈, 출애굽을 경험한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비롯해 그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 바울 및 그와 함께한 많은 동역자가 이주 경험을 가지고 있다. 고대 이스라엘은 배타적인 민족 중심주의 사회였음에도 이주민들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출애굽기 22~23장에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학대하지 말라는 말씀과 함께,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자 이방인이었던 자신들의 모습을 기억하라는 당부의 말씀도 있다. 간담회 참석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새롭게 보게 됐다는 것은 경험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꼭 비슷한 경험이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삶 속에서 경험한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다른 사람의 아픔과 불편함을 공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마태복음 2장은 예수의 가족이 예수가 태어나자마자 타의적으로 이집트에 이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언어도, 민족도 다른 이집트에서 요셉과 마리아는 어떻게 살았을까. 낯선 사회에서 예수는 어떻게 성장했을까. 우리가 안전함과 편안함을 느끼고 있을 때, 혹은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상황으로 불안과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누군가는 우리보다 더 큰 불안과 어려움을 겪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일, 기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그들에게 손 내밀어 환대와 친절을 베푸는 일이야말로, 모두가 연결돼 있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자세라고 믿는다. 예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말이다.

이혜영 / 미국장로교회(PCUSA) 파송 선교 동역자.

1) 이주민 대신 '외국인'으로 표현한 이유는 참석자 대부분이 한국에 장기적으로 살기 위해 이주한 것이 아니라, 단기간 머물다가 돌아갈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주민과 외국인으로 구분 짓는 것이 인종적인 구분으로 귀결됐을 때, 그것이 또 다른 편견을 낳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차후에 더 깊게 논의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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