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순복음교회 최성규 원로목사가 <경향신문> 11월 4일 자 지면에 낸 '출산가족부' 광고. 
인천순복음교회 최성규 원로목사가 <경향신문> 11월 4일 자 지면에 낸 '출산가족부' 광고. 

11월 4일 자 <경향신문>에 게재된 위 광고를 보셨나요? 최상단에는 남색 고딕체로 커다랗게 "출산가족부"라고 또박또박 소리치듯 적혀 있고, 그 밑엔 어딘지 음산한 인상을 주는 붉은 붓글씨로 "저출산 문제와 국민의 행복을 위해 여성가족부를 출산가족부로 개편하자"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최하단에는 "출산은 여성만의 특권, 출산은 부부의 책임, 출산을 하면 여자가 어머니가 된다, 여성은 어머니일 때 아름답고 강하다, 출산을 하면 원하는 가정에게 (임대 아파트를 특정 기간 무상 임대해 주는) 특혜를 주자" 따위의 주장이 작고 검은 글씨로 쭉 나열돼 있네요. 무려 어떤 교회 원로목사가 개인 비용으로 낸 광고라고 합니다.

여성가족부의 '여성'을 '출산'으로 과감하게 대치해 버리다니, 여성을 출산 수단으로 여기는 '숙련된 여성 혐오'가 없이는 불가능한 발상입니다. 여성가족부가 실제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안다면 하지 못할 제안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이렇게 기고 청탁이라도 들어오지 않는 이상 절대 엮이고 싶지 않은, 지하철 1호선에서 마주친 술 취한 할아버지에게서 들었던 것 같은 그런 얘기처럼 느껴져요.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긴말하고 싶지가 않네요. 국민의 행복이라고요? 제가 바로 국민인데요, 지금 '출산가족부'라는 조어를 접하게 돼서 너무 불행합니다. 저출생 문제는 '여성이 출산을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랍니다. 저출생은 하나의 현상이고요, 그 원인은 놀랍게도 이런 광고와, 이런 광고를 실어 주는 <경향신문>이 존재하는 '현실'이에요. 아직도 이런 광고가 실리는 걸 알면, 태어나려던 아이도 깜짝 놀라서 도로 들어가겠어요.

출산은 특권도, 책임도 아닙니다. 한 인간에 의한 새로운 인간의 탄생은 '특별한 권리'나 '이익' 같은 개념 따위로 계산해서는 안 되는 일이며, 여성에게 주어진 상도 벌도 아니니까요. 출산하고 싶으면 하세요. 하기 싫으시면 하지 마시고요. 의무적으로 아이를 낳아야 할 인간도, 꼭 태어나야만 하는 인간도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아름답지 않아도 강하지 않아도 계속 괜찮은 채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여자도 인간이라서, 아름답지 않아도 강하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어야 맞습니다. 출산한 여자도요. 임신과 출산과 육아, 정말 힘들고 아플 때가 많은 일이잖아요. 추해지고 약해져도 괜찮도록 해 주는 사람들이 여러분 주변에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지금은 여자라면 어머니가 돼야 한다고 압박하고, 어머니는 강하고 아름답다 칭송하며 한 명의 여성에게 너무 큰 짐을 떠넘기는 잘못된 문화가 있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다고, 그 변화에 내가 함께하겠다고 다짐하며 당신을 돕고 돌보는 사람들이 곁에 충분하길 바랍니다.

보수 기독교인들은 여성의 출산에 대해 참 쓸데없고 다양한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남자 사역자들끼리 모여서 무슬림 인구가 늘어나 기독교 인구수가 상대적으로 적어질까 두렵다며, 한국에 '이교도 이민자'가 유입되지 않도록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고 쑥덕대곤 했는데, 요즘도 그런 식인가요? 아마 그러니까 이런 광고가 가능한 거겠죠?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좁은 식견에 좋아 보이는 일을 행하기 위해 '이웃의 몸을 탐내는 죄'를 범하는 자가 사라지질 않으니 걱정입니다.

모쪼록 교회 내에서 고생하시는 자매님들께 위로를 보냅니다.

한유리 / 머리 아플 때 시편 23편 부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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