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기독교 언론 매체들이 교회 여성들의 옷차림에 대한 5가지 성구를 소개하는 글을 연이어 발행했다. 그 성구들 중 두 개는 잠언에 있는 구절이었다(잠 11:22; 31:25). 그러나 잠언에서 인용한 단 2개의 구절을 '여성의 복장을 규정하는 논거'로 삼는 것은 타당할까? 설령 그것이 단순한 제안에 그칠지라도 구약 지혜서의 성격과 해석 방법에 대한 무지 혹은 무시에서 비롯한 일이다.

'솔로몬의 잠언'(잠 1:1)으로 알려진 책은 오히려 '남성의 정절'을 문제 삼으면서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교훈한다(2:16~19; 5; 6:20~35; 7). 적지 않은 분량이다. 지극히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이었던 고대 이스라엘의 지혜 가르침은 남성의 정절을 중요하게 다뤘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여성의 순결을 강조하는 교회는 과연 남성의 정절에 대해 동등한 수준으로 말해 왔는가?

잠언, 다양한 삶을 위한 다양한 응답

잠언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오랜 세월 숙성된 지혜 선집이다. 다양한 시대 다양한 지혜자(22:17; 24:23; 25:1; 30:1; 31:1) 집단이 이 지혜 모음집을 생산·정리했다. 이 책은 삶의 진리와 진실을 담은 지혜의 정수로서 받아들여져 유대교와 기독교 정경에 포함됐다. 누군가는 잠언을 "삶의 기술을 다루는 구약의 농축된 대학원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더 넓게 보아, 구약의 지혜는 "삶의 체계와 창조질서를 여는 열쇠"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공존하는 질문과 응답이다.

잠언의 지혜 교훈은 비유를 사용한 격언 형태 간결한 문장이지만, 강렬하고 실용적이다. 잠언은 삶의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문제들, 곧 악인, 의인, 지혜, 어리석음, 건강, 부, 가난, 친구, 자녀, 행복, 고난, 생명, 죽음 등 인간 실존 문제를 다룬다. 그러나 잠언 해석에는 전제가 있다. 이 지혜 경구들이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만고불변의 진리는 아니며, 적절한 때와 상황에 맞는 진리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개별 잠언의 독특한 상황성을 고려해야 하며, 이를 주문 외우듯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 성서 본문에는 문학적 다양성과 증언·교훈의 복합성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기억해, 단편적으로 오도하지 않기를 바란다.

잠언은 구약의 다른 책들과 달리 웅장한 서문으로 시작한다. 이를 통해 목표하는 독자층과 책의 목적(1:2~6), 그리고 잠언의 핵심 토대인 '여호와 경외'(1:7) 사상을 드러낸다. 잠언의 지혜는 정의, 공의, 공평을 꽃피운다는 목적으로 개인의 윤리적 올바름을 넘어 사회·공동체 영역으로 확장된다. 잠언의 교훈은 일차적으로 청년기에 막 접어든 '아들들'을 향하고 있고, 지혜를 추구하는 모든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핵심은 잠언이 유달리 '남성의 정절'(여성의 복장이 아니라)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잠언 5장 본문을 간략히 다뤄 보겠다.

내 아들아, 네 정절을 지켜라

잠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1~9장, 10~31장). 잠언 1~9장은 예술적 건축물과 같은 주도면밀한 구성을 갖추고 있으며, 이스라엘 전통 문학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5장과 7장은 "음녀"(개역개정)에 대한 묘사와 음녀에게 이끌려 정절을 지키지 못하고 패가망신하는 이야기를 통해 '남성의 간음'을 경고하는 데 주력한다. 

여기서 "음녀"로 번역·고착된 히브리어 '자라'에 대한 관능적 묘사는 현대 여성 독자들에게 불편함을 준다. 이것은 남성 중심의 고대사회에서 문자를 다루고 지식을 생산한 식자층이 주로 남성이었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어디 이뿐인가? 구약성서의 여러 본문은 여성을 개인적·집단적으로 성적 대상화하는 폭력성·야만성을 삭제하지 않고 기록했다(예컨대, 삿 19장; 삼하 11장; 삼하 13장 등). 그렇다고 성서 본문을 내가 원하는 것만 취사선택해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는 그 본문이 왜 거기에 있어야 하는지 성실히 질문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어떤 본문을 대하든 본문의 상황과 대화하고 사유해야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소망을 품을 수 있다.

1. 아들아, 신중함과 지식을 갖추라(5:1~3)

사람이 태어나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선생은 부모다. 부모는 아들을 부르며, 자신의 지혜와 명철에 주의하고 귀 기울이라고 권고한다(1절). 그러면서 이 권고는 네 분별력(또는 신중함)과 네 입술의 지식을 보존하기 위함(2절)이라고, "음녀'"개역개정)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고, 그녀의 입은 올리브기름보다 부드럽다(3절)고 경고한다. '음녀'(자라)는 잠언 전체에서 적어도 열 번 등장한다(2:16; 5:3; 5:20; 6:26; 7:5, 8, 25; 22:14; 23:27; 30:20).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음녀'를 "성격이나 행동이 음란하고 방탕한 여자"라고 정의하는데, 과연 이 번역은 본래 히브리어 단어 '자라'에 부합하는 번역일까? 아니다.

히브리어 '자라'는 본래 완전히 다른, 이상한, 낯선, 불법적인, 금지된, 다른 무엇을 수식하는 형용사다(레 10:1, 민 3:4). 형용사지만 명사적인 용법으로 사용됐으며, 이방 여자와 동의어적인 의미로도 활용된다(5:20). 말하자면 합법적인 관계 밖의 여자를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 합법적인 관계는 혼인한 아내를 뜻하며, 혼인 관계 밖 여자를 '다른 여자'(자라)로 표현한 것이다. 즉 잠언은 이미 결혼 언약을 맺은 아내 이외의 다른 여성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말라고 금지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다른 여자'를 관능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데 있다. 신체 기관 중 '입술'은 애정 행위를 연상시키고, 입은 유혹하는 말의 위험성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지극히 남성적인 시각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성애화·대상화된 묘사다.

2. '다른 여자'의 위험성?(5:4~6)

잠언은 '다른 여자'에 대한 관능적 묘사로 부족해 치명적인 위험성까지 경고한다. 그녀의 마지막은 달콤한 꿀이 아니라 쑥처럼 쓰고, 날카로운 양날의 칼과 같다고 한다(4절). 이 교훈을 들어야 할 아들이 신중하지 않거나 지혜롭지 않으면(2절), '낯선' 입술의 달콤함과 올리브기름처럼 부드러운 입(말)에 굴복하게 된다. 그것도 부족해 그녀의 발은 '죽음의 세계'(스올)로 내려가고(5절), 그녀는 생명의 길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녀의 행로가 흔들려도 알지 못한다고 한다(6절). 이쯤 되면 인내심 부족한 독자는 책을 덮어 버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른 여자'를 죽음으로 향하는 위험한 존재 혹은 무지한 사람으로 묘사한다고 해서 한바탕 욕을 하고 성서를 던져 버려야 할까? 그럴 수는 없다. 이것은 잠언의 주된 독자층인 '아들들'에게 정절을 강조하기 위한 과장된 묘사다. 과장법은 히브리 문학의 특징 중 하나다. 이를 통해 '불법적인' 관계에 있는 여자나 혼인 관계 밖 '다른 여자'에게 끌리는 아들의 최후는 곧 '죽음'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 사회 현실에서 불법적인 관계의 위험성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다. 호세아서의 '음행' 은유가 당시 절대적 권한을 가진 남성 중심 가부장 사회에 나타난 우상숭배와 사회적 무질서, 그리고 그들의 위선적 현실을 고발하기 위한 극약 처방이었던 것처럼. 

3. 아들들아, '다른 여자'를 멀리 하라(5:7~14)

지혜 선생은 이제 우회적인 방식의 묘사를 벗어나 직설적으로 말한다. 목표하는 청중은 '아들들'로 확장된다. 아들들에게 "내게 들어라! 내 입의 말을 버리지 말라!"(7절)고 간곡히 요청한다. 그리고 네 길이 그녀(다른 여자)로부터 멀어져야 하고, 그녀의 집 문 가까이 접근하지도 말라고 한다(8절). 이는 네 영광을 타인에게 넘겨주는 일이 없도록, 너의 날들이 잔인한 자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9절). 여기서 "타인"(개역개정)은 문자적으로 '다른 남자들'(자림)이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지혜 선생의 권고 이유는 그들이 너의 재물을 탈취하지 않도록, 너의 수고가 외인의 집을 풍족히 하는 일이 없기 위함(10절)이기도 한데, 여기서 "외인"(개역개정)도 문자적으로 '외국인 남자' 또는 '낯선 남자'(노흐리)다. 한마디로 자기 아내 아닌 '다른 여자'에게 눈길 주다가 '다른 남자들'에게 재산까지 모조리 빼앗기는 일이 없게 하라는 경고다.

이뿐만이 아니다. 잘못하다간 몸이 쇠약해져 신음하고, 황폐해져 한탄의 시간을 보내게 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11절). 모든 것을 잃고서야 "어쩌자고 내가 훈계를 싫어하고, 견책들을 내 마음으로 경멸했던가?"(12절), "어쩌자고 내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던가?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내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가?"(13절)라고 한탄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부모 혹은 선생의 훈계를 가벼이 여긴 것을 후회해도 때는 너무 늦었다. 아들이 "많은 무리들의 모임 중에서 내가 완전한 악(재난)에 빠졌구나!"(14절)라고 한탄해도 파산을 되돌릴 수는 없다.

4. 네 아내에게 열중하라(5:15~20)

'다른 여자'에게 끌리는 남자들에게 어떤 가르침이 필요할까? 지혜 선생은, 젊은 시절에 만난 아내와 즐거워하며 성실한 혼인 관계를 유지하라고 권고한다. 다른 여자에게 끌리는 것을 통제하기 위한 방법은 자기 아내와 나누는 신실한 사랑에 있다.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개역개정, 15절)

15절은 아내를 우물이나 샘물 은유로 표현한다. 남자는 오직 자기 아내에게서 성적인 기쁨을 얻으라는 뜻이다(아 4:15 참조). 이후 신실한 일부일처제의 아름다움을 옹호한다(16~19절). 한 남자가 두 여자를 똑같이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명기 유산상속법도 암암리에 중혼을 비판하고(신 1:15~17), 사랑받지 못한 아내의 아들이 유산을 박탈당하는 치욕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한다. 이는 고대 문화의 신학적·윤리적 이상이다(5:15~20; 18:22; 31:10~31, 창 2:23~25). 또 아가에서는 아내의 매력과 아름다움이 상징적인 언어로 표현된다(아 2:7; 3:5).

"네 샘이 복이 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맞은 아내와 즐거워하여라.
아내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아름다운 암노루, 
그녀의 품을 언제나 만족스럽게 여기고, 
항상 그녀의 사랑에 열중하라." (필자 사역, 18~19절)

잠언은 한마디로, 젊은 시절에 만난 아내가 복이니 합법적인 관계 밖의 다른 여자에게 한눈팔지 말라고 권고한다. 자기 아내의 품에서 만족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인류 최초 커플이 타락한 이후 여자에게 내려졌던 형벌을 뒤집는다. 타락 후 여자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의 다스림을 받아야 했다(창 3:16). 그러나 그때 여자에게 내려졌던 "너는 남편을 원하고 너를 다스릴 것"이라는 심판을 뒤집는다. 지혜 선생은 세상의 보편적 질서처럼 굳어진 것을 뒤엎어 남편이 아내의 사랑을 "연모하라”(개역개정)고 권한다. '연모하다'(샤가)의 사전적 의미는 '똑바로 걸을 수 없어 비틀거리다'이다. 술 마시고 비틀거리거나 무언가에 중독된 것처럼, 자기 아내 사랑에 완전히 흠뻑 빠지라는 뜻이다(NIV·TNK 참조).

지혜 선생은 수사학적 질문을 통해 아들에게 남편으로서 아내를 향한 정절을 지키라고 강하게 촉구한다(20절). 개역개정과 새번역 성서의 여성 비하적인 표현은 불편함을 남기지만, 그 의도는 분명하다.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 (개역개정)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행하는 여자를 사모하며,
부정한 여자의 가슴을 껴안겠느냐?" (새번역)

"아들아, 어찌하여 다른 여자에게 열중하려느냐?
낯선 여자의 가슴을 포옹하려느냐?" (필자 사역)

잠언은 지혜를 사랑하고, 지혜를 품으라(포옹하라) 권면한 것처럼(4:6~8) 지혜 사랑과 아내 사랑을 결합한다. 잠언 5장의 결론은 자기 아내를 사랑하며 정절을 지키는 것이 삶의 지혜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여자'에게 끌리는 것은 지혜에 대한 사랑을 파괴하는 것과 같다. 지혜 선생은 '아들들'에게 "너는 정절을 지키고, 네 아내에게 열중하라"고 강력하게 권고한다.

김순영 / 한국연구재단 연구원. <열쇳말로 읽는 전도서>(프리칭아카데미), <어찌하여 그 여자와 이야기하십니까?>(꽃자리), <일상의 신학, 전도서>(새물결플러스) 저자. 

참고 문헌

John H. Stek, "Proverbs: Introduction," CTJ 36 (2001): 365-371.

​​​​​Craig G. Bartholomew & Ryan P. O’Dowd, Old Testament Wisdom Literature: A Theological Introduction (Downers Grove: IVP Academ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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