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부 교계 언론에서 '교회 다니는 여성들의 5가지 옷차림 원칙', '크리스천 여성의 옷차림에 대한 4가지 말씀' 등의 제목을 단 기사가 수차례 발행돼 논란이 일었다(사실 이런 논란은 과거부터 계속 있어 왔다). 이 글들은 한 '크리스천 패션 디자이너'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데,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 글에서는 먼저, 위 기사들에서 언급한 성경 구절이 제대로 해석됐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무려 21세기에 이런 여성 차별적 기사가 반복되는 이유를 생각하고, 이것이 한국교회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언급하겠다.

1. 여성의 옷차림에 대한
'문자적 적용' 문제

디모데전서 2장 9절은 여성들에게 화려하고 값비싼 장신구와 의복 대신 단정하고 품위 있는 옷을 입으라고 권면한다. 9절은 8절~10절과 문법적으로 연결돼 있기에 같은 문맥에서 읽어야 한다. 8~10절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문제 중 하나였던 '혼란'을 다루고 있다. 8절에서는 남성들에게 각처에서 분노와 다툼 없이 기도하라고 권면한다. 이 말은 에베소 교회 남성들이 곳곳에서 분노와 다툼을 일으키고 있었고, 심지어 예배와 기도 시에도 그렇게 행동해 공동체에 혼란을 주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런 분노와 다툼은 그리스도인의 거룩하고 단정하고 평화로운 삶을 명백히 방해하는 요소였기 때문에 바울이 이를 위험하게 보고 권면한 것이다.

바울은 동일한 목적에서 여성들에게는 너무 화려하고 값비싼 옷·장신구를 자제하고 옷을 단정하게 입으라고 권면한다. 당시 에베소 교회에는 여성들이 화려한 옷과 장신구를 통해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드러내려는 풍조가 있었고, 바울은 이에 대해 교회의 중요한 가치는 '외적 화려함'이 아니라 자기 절제와 단정함과 선행 등 '태도'에 있다고 권면한 것이다.

위 두 예를 보면, 바울이 당시 에베소 교회에 혼란을 일으킨 문제에 적절히 권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이 구절을 현재 우리에게 적용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단지 문자적으로 남성들에게는 각처에서 분노와 다툼을 일절 일으키지 말라고 권면하고, 여성들에게는 옷차림을 단정히 하라고 말하면 그뿐인가? 반대로 말해, 여성들은 각처에서 분노하거나 다퉈도 되고 남성들은 화려하고 값비싼 옷과 장신구를 걸쳐도 되는 것인가? 이것이 '문자적 적용'의 함정이다. 우리는 이 본문을 우리 삶에 적용할 때 남녀 모두를 포괄하는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남녀를 불문하고 기독교인은 가능하면 다툼과 분노를 일으키지 말아야 하고, 너무 화려하거나 값비싼 옷을 입는 것을 삼가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이다.

이것은 베드로전서 3장 2~5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이 본문에는 아내들에 대한 권면과 남편들에 대한 권면이 같이 나온다. 아내들에게는 단정한 옷차림과 정결함을 요구하고 남편들에게는 아내를 귀하게 여기라고 권면한다. 여기서 바울이 심각하게 문제 삼는 것은 남성이다. 남편이 아내를 학대하거나 무시하는 등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기도가 막힌다고 경고한다. 아내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남편의 신앙생활 성패가 달려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 본문에서도 아내는 외모를 가꾸는 대신 내면만 가꾸고, 남편은 단지 아내를 귀하게 여기기만 하면 된다고 적용하면 끝인가? 남편은 내면 대신 외모만 가꿔도 하나님이 귀하게 보시고, 아내는 남편을 하찮게 여겨도 신앙생활에 문제가 없다는 말인가? 당연히 아니다. 남편과 아내 모두 외면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꿔야 하고, 남녀 공히 배우자를 사랑하고 존중해야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보신다고 적용해야 한다. 이처럼 여성이 언급된 본문이라고 해서, 맥락을 무시한 채 문자적으로 가져와 그것을 여성만이 반드시 따라야 할 성경적 진리인 양 해석하는 것은 매우 무지하고 위험한 일이다. 

2. 왜 여성의 옷차림에 대해서만 말하는가

위에서 남녀 모두에게 주어진 권면 중 여성에 관한 것만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나쁜 예를 살폈다. 문제는 이뿐만 아니라, 남녀 모두의 옷차림을 말하는 본문에서도 굳이 '여성의 옷차림'만 문제 삼는다는 것이다. 신명기 22장 5절은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이니라"라고 한다. 그러나 해당 교계 언론사는 이 구절을 다루면서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구절은 분명 남자의 옷차림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지만, 굳이 '여성'의 옷차림에 대한 본문인 것처럼 제목을 뽑은 것이다.

해당 기사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외모를 가꾸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남성들에게 욕망을 불러일으킬 만한 옷차림은 경계하는 게 좋다"는 한 디자이너의 말을 인용한다. 그리고 이 말에서 왜 여성의 옷차림만 통제하려고 하는지 그 의도가 나타난다.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는 유혹자'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전형적인 가부장·남성 중심적 시각으로, 남성의 성범죄 책임을 여성의 옷차림에 돌리려는 것과 동일한 패턴이다. 가부장적 사고는 여성을 남성보다 아래에 있는 존재이자 통제 대상으로 여기고, 남성의 문제를 여성에게 전가하는 특징이 있다. 유독 여성의 옷차림을 지적하는 것은 이런 사고의 결과물이다. 여성을 통제하기 위해 옷차림을 지적하고 규제하며 여성에게 '유혹자'라는 죄의식을 심어 주려는 것이다.

성경 어디에도 문자적으로 여성에게 "남성을 유혹하는 옷을 입지 말라"고 경고하는 구절은 없다. 오히려 잠언은 남성들에게 낯선 여성의 유혹을 조심하라고 권면하며, 예수님도 남성들에게 "오른쪽 눈이 범죄케 했으면 오른쪽 눈을 빼 버리라"고 강력하게 경고하신다. 즉 성경은 '남성'에게 스스로 조심하라고 누누이 경고하고 있다. 이런 성경의 경고를 무시하고, 남성의 문제를 여성 책임으로 전가시켜 여성의 옷차림·행동을 통제하는 일은, 남성의 성적 욕망을 핑계로 여성에게 부르카를 입히는 탈레반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3. '여성 옷차림'에 매달릴 시간에…

이런 기사가 무려 2021년에도 반복되는 이유가 있다. 사회적으로 여성 권리가 향상되고 젊은 여성들 사이에 페미니즘이 널리 퍼지면서 교회 내에서도 여성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교회는, 그동안 남성들이 누리던 기득권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과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명분 삼아, 옷차림을 통해서라도 여성을 통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사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후 여성이 부르카를 쓰지 않았다고 살해하는 사건 등과 연결되면서 '기독교가 탈레반과 다를 게 무엇이냐'는 강한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교회 여성들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기독교를 더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런 일은 교회 내적으로는 젊은 여성들의 탈출을 가속화하는 일이고, 외적으로는 전도의 길을 막는 것이다. 이젠 세상이 달라졌다. 기독교도 이를 인식하고, 구원과 전혀 관계없는 '여성의 옷차림' 문제에 매달리며 힘을 낭비할 시간에, 젊은 세대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며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도하는 데 힘을 썼으면 좋겠다. 

박유미 / 비블로스성경인문학연구소 소장, 기독교반성폭력센터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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