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차원에서: 이재용 부르기

"누구라고 하느냐?" (마가복음 8:29)

우리 풍속에는 어떤 사람을 부를 때 그가 맡았던 가장 좋아 보이는 직책을 덧붙여 주는 미덕이 있다. 퇴임한 지 오래된 사람에게도 "아무개 장관님", 선거에서 낙선한 사람에게도 "아무개 의원님" 그런다. 그래서인지 이재용을 부를 땐 항상 '삼성전자 부회장'이라 덧붙인다. 이번에 이재용을 가석방하겠다면서 박범계 법무부장관이 말한 내용을 보라. 그를 두 번이나 삼성전자 부회장이라 부르고 있다.

"특히 이번 가석방에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국가적 경제 상황과 글로벌 경제 환경에 대한 고려 차원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은 사회의 감정, 수용 생활 태도 등 다양한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시대가 한 인간을 어떻게 부르는가는 상상 이상의 힘을 지닌다. 국내 굴지를 넘어 글로벌 기업이라는 '삼성전자'의 '부회장'이다! 이재용을 부를 때 자꾸 '삼성전자 부회장'이라 붙여 주면, 은연중에 나부터도 이재용을 풀어 주고 싶어진다. '삼성전자 부회장인데 좀 봐주면 안 되나. 가둬 놓고 있어 봤자 좋을 게 뭐 있어. 풀어 줘서 코로나19 백신도 구해 오게 하고 해야지. 그리고 지금 반도체 패권 전쟁 중이라며? 빨리빨리 작전 짜고 실행에도 옮기려면 얼른 경영에 복귀시켜야 하지 않나?' 하는 거다. 하지만 나는 이재용을 다르게 부른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이다.

"이재용은 국정농단 사건의 공동정범(공범)이다." 

"이재용은 국정농단 사건의 공동정범이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이재용은 국정농단 사건의 공동정범이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사람들은 이재용이 협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었다고들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국정농단에 매우 적극적으로 가담해 천문학적인 범죄 수익을 얻었다. 바로 국내 굴지를 넘어 글로벌 기업이라는 삼성그룹의 경영권 말이다. 이재용은 회삿돈 86억 원을 횡령해 박근혜·최순실에게 뇌물로 주고, 그 대가로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세습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얻었다. 국민연금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표를 던진 것 말이다. 이를 통해 이재용은 약 4조 원을 절감하면서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86억 원을 뇌물로 내주고 4조 원을 아꼈으니 과연 경영의 귀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재용, 그는 누구인가. 삼성전자 부회장인가 아니면 국정농단 사건의 공범인가. 고백의 몫은 각자에게 있다. 법무부 장관의 발표문을 이렇게 한번 바꿔 보자. 풀어 주고 싶은가?

"특히 이번 가석방에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국가적 경제 상황과 글로벌 경제 환경에 대한 고려 차원에서 '이재용 국정농단 공범'이 대상에 포함되었습니다. '이재용 국정농단 공범'에 대한 가석방은 사회의 감정, 수용 생활 태도 등 다양한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재용 전능설: 미신과 우상 깨기

"미신이 가득했다." (이사야 2:6)

국정농단 사건의 공범, 이재용은 왜 가석방되기에 이르렀을까. 국정농단 사건 때 해체해 버리자고 노래를 불렀으나 끝내 없어지지 않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이재용이 가석방된다고 하자 이런 논평을 냈다. 조금만 살펴보자.

"세계는 반도체 패권 전쟁 중이며,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위기 극복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제 질서 구축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멈춰 있는 투자 시계를 속히 돌리지 않는다면 인텔, TSMC 등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처져 우리 경제의 먹거리를 한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다. 이러한 엄중한 상황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법무부 결정은 우리나라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나아가 새로운 경제 질서의 중심에 서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역시 전경련도 이재용을 삼성전자 부회장이라 부르는구나. 반도체 패권 전쟁, 코로나19, 경제 위기를 들먹이며, "투자 시계가 멈춰 있네", "먹거리를 한순간에 잃어버리네" 하는 어마무시한 말들로 가슴을 콩닥거리게 만든다. 그런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있다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새로운 경제 질서의 중심에 서게 될 거라는 것이다. 오, 거의 전능자에 가까운데? '이재용 전능설'은 과학이고 진리인가, 아니면 미신이고 우상인가.

이재용의 경영 능력을 검토할 때마다 그의 뼈를 때릴 만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e삼성'! 바야흐로 주후 2000년 5월 이재용이 "삼성의 미래를 위해 e비즈니스를 시작했다"는 당찬 포부와 함께 대주주가 돼 시작한 인터넷 지주회사였다. 이 회사는 "금융·보안·결재·구매 분야 등에 장기 투자를 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니? 주후 2001년 3월 삼성 계열사들이 이재용의 지분을 전량 인수하는 방식으로 회사가 사라져 버렸다. 그 후 지금까지 이재용의 경력에서 'e삼성'은 결단코 거론되지 않는다. 과거에 삼성그룹에 깊이 몸담았다가 회개하고 삼성의 죄책을 폭로한 김용철의 글을 옮겨 본다.

 "이재용은 하루라도 빨리 경영에 참가하고 싶어 했다. 이런 조바심에 편승해서 나온 결과물이 'e삼성'이다. 이재용이 경영에 직접 나서는 계기로 삼으려던 이 사업은 순식간에 망했다. 삼성 계열사들이 'e삼성' 관련 주식을 사서 손해를 뒤집어썼다." [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건 지나간 일이고, 이건희가 쓰러진 뒤로는 이재용이 초대형 회사를 잘 맡아서 이끌고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어디 보자. 우선 삼성전자는 이재용 혼자 운영하는 회사가 아니다. 아니어야 하는 게 맞다. 이재용 하나 없다고 투자의 시계가 멈춘다면, 얼른 건전지를 갈아 끼우든가 해야지 왜 가만히 있나. 이런 회사에 투자해도 될까? 결정적으로 이재용은 회삿돈을 횡령해서 뇌물로 주고 사익을 획득한 경제 범죄자다. 이런 사람을 회사에 계속 놔두고 심지어 글로벌 경영을 맡긴다는 것이 과연 자본주의-시장경제 체제에서 괜찮은 것인가?

다음은 백신! 2021년 1월 18일 이재용이 대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자, 이른바 <○○경제>  같은 매체들은 "이재용이 백신 구하러 출국하려 했었다"는 식의 기사들을 앞다퉈 쏟아냈다. 당시에는 되게 뒤끝 있다 싶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미리 사면이나 가석방 여론을 만들려고 그랬나 싶다.

이번에 이재용이 가석방되는 것으로 결정되자 청와대는 말이 없고,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변인 구두 논평을 통해 "법무부 결정을 존중한다. 정부가 고심 끝에 가석방을 결정한 만큼 삼성이 백신 확보와 반도체 문제 해결 등에 있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얼마 전 대구시장이 보여 준 해프닝에서 알 수 있듯, 백신 회사들은 중앙정부 말고는 판매·유통을 승인하지 않는다. 여기서 이재용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우리의 전능자 이재용에게 그럴 능력이 있다고 치자. 만약 '제프 베이조스'나 '일론 머스크'처럼 더 쎈 전능자들이 나서면 아사리판에서 나가리(?) 되는 것 아닌가.

경제도 살리고 백신도 구한다는 '이재용 전능설'은 과학이고 진리인가, 아니면 미신이고 우상인가. 이 믿음 역시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감염병 대유행을 극복하고,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살아남는 일을 국정농단 사건의 공범인 이재용에게 의지해야 한다면, 지금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게 나라냐? 

공평과 정의: 하늘 뜻 계속 펴기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 (마태복음 6:10)

촛불 혁명을 통해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국정농단의 공범인 이재용을 가석방해 주는 꼴을 보자니, 추운 겨울에 고생, 고생하면서 촛불을 들었던 게 기가 막힌다. 대한민국이 문재인 대통령의 말대로 "기회가 균등하고 과정이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였다면, 이재용이 있을 곳은 삼성전자 부회장실이 아니라 감옥일 것이다. 이 나라가 문 대통령의 취임사 제목처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다운 나라라면 이재용이 할 일은 백신을 구하는 것이나 실체가 모호한 글로벌 경영을 하는 것도 아니라, 구체적인 회개와 자기 갱생이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혁명을 통해 탄생한 정부다. 그런 정부가 국정농단의 공범인 이재용을 가석방해 줬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문재인 정부는 촛불 혁명을 통해 탄생한 정부다. 그런 정부가 국정농단의 공범인 이재용을 가석방해 줬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예나 지금이나 이 땅에서 공평과 정의를 세우는 것이 이렇게 힘들구나! 절감한다. 저기 저 '하나님나라'는 공평하고 정의롭겠지. 그래서 예수는 동지들에게 당부하기를, 하나님께 "그 뜻을 하늘에서 이루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라고 했다. 기도는 눈 감고 손 모으고 뭐라 뭐라 하는 단순한 행위를 넘어,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로 연결된다. 어렵고 힘들어도 하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뤄지도록 기도하고 라이프 스타일을 바꿔 나가는 일은 계속할 수밖에 없다. 예수가 그러라고 하셨으니까! 나중에 천국에 들어가려면 그래야 한다.

이재용을 '국정농단 사건의 공범'이라 부르는 것, '이재용 전능설'을 깨부수는 것, 가석방 결정은 잘못됐다고 계속 말하는 것, 사면은 꿈도 못 꾸게 계속 싸우는 것, 이재용을 풀어 준 '촛불 표방 세력'과는 결별하는 것, 한낱 정부를 바꾸지 말고 규칙과 정치를 바꾸는 것 등 세상은 불의하고 할 일은 많다. 그러니까 계속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최근에 감명 깊게 들은 김연경 선생님의 말씀으로 상처받았을 여러 마음에 위로를 건네 본다. "해 보자, 해 보자, 해 보자, 후회 없이!"

박제민 / 그리스도인, 녹색당원, 정치학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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