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강도현 대표] 몇 년 전 한 기독교 대학에서 채플 설교를 해 달라고 요청해 온 적이 있습니다. 보수적인 신앙 색채를 가진 교단 신학교여서 메시지도 그에 맞게 준비했습니다. 저도 매우 보수적인 기독교 대학을 나왔으니 그 분위기를 잘 압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대학 시절 채플 시간을 알차게 보냈습니다. 찬양도 뜨겁게 했고 설교도 비교적 잘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필수과목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하긴 했지만, 어쨌든 예배는 예배였으니까요. 제가 다녔던 학교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예배를 어색해하지는 않았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가 대학생 때 경험했던 채플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후배들 신앙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설교를 하기 위해 채플 강단에 섰습니다. 찬양팀 리더학생의 인도로 예배가 시작됐고, 멋진 밴드 연주가 홀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찬양팀이 무대 위에서 열정적으로 찬양을 부르고 있는데 채플에 참여한 학생 대부분이 휴대폰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대놓고! 상상이 되시나요? 분명 스피커에서 찬양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있는데, 그에 맞춰서 찬양하는 사람은 설교자인 저를 포함해 몇 명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어서 설교하기도 정말 어렵더군요. 그동안 쌓아 온 강의 노하우를 총동원했지만 겨우 몇 명만 얼굴을 들고 있을 뿐, 저는 휴대폰과의 경쟁에서 처절히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죠. 예배가 끝나고 행정실 선생님께 여쭤봤습니다.

"채플 분위기가 오묘하네요?" 
"안 믿는 친구들이 많아서요."
"아…그렇구나. 비율이 어떻게 되나요?"
"절반 이상은 교회를 안 다닐 거예요."

저는 휴대폰과의 경쟁에서 처절히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휴대폰과의 경쟁에서 처절히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설교 듣는 청중을 제대로 파악하고 배려하지 못한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비신앙인들을 상대로 교회에서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간증을 했으니…. 그나마 경청해 준 학생들이 있었다는 게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두 번째 채플 시간에는 내용을 바꿔서 진로 문제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 갔습니다. 신앙을 이야기했지만 교회 언어 사용을 최대한 자제했습니다. 다행히도 첫 시간보다는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날의 기억은 특별합니다. 휴대폰을 향해 고개가 꺾여 있는 학생들 앞에서 무기력한 표정으로 찬양을 인도하던 학생 얼굴이 잊히지 않습니다. 모든 채플이 다 그렇지는 않겠습니다만, 많은 기독 대학의 일상적인 풍경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채플 시간 내내 휴대폰을 보던 학생들은 앞으로 예배를 어떻게 기억할까요?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최영애 위원장)에서 "경건회(채플) 수업을 진행함에 있어 동 수업을 대체할 수 있는 과목을 개설하는 등 학생 개인의 종교의자유 등을 침해하지 않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교계와 기독 대학은 대체로 반발하는 분위기입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됩니다. 아마도 예배드릴 권리를 침해받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듯합니다.

그러나 충분히 유연하게 대처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특히 선교적 관점으로 보면, 강제로 참여하는 예배가 신앙 성장에 도움이 될지, 오히려 믿지 않는 이들에게 반감을 심어 주지는 않을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독교 사립대학의 법적 권리를 따지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독교인이 아님에도 의무적으로 예배에 참석해야 했던 학생들과 어떤 '소통'을 해 왔는지 돌아보는 일입니다. 

기독교 대학에 왔으니 좋든 싫든 당연히 예배에 참석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로 권리를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정작 당사자인 학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우리 신앙인은 다양한 사회 구성원과 좋은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좋은 이웃의 기본 자세는 '역지사지'입니다. 단순히 권리를 주장하는 일로 기독교적 가치를 전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여야 하지요. '채플을 하느냐 마느냐'보다 더 중요한 본질은 '우리가 얼마나 좋은 이웃이 되어 소통하고 있는가'입니다.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기 이전에 이웃과 얼마나 진솔하게 소통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기 이전에 이웃과 얼마나 진솔하게 소통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인권위 권고를 두고 좌파 정권의 반기독교 정책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이런 권고가 나온 것은 학생의 문제 제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문제를 이념적으로 바라보고 아전인수격 해석으로 자기 논리를 강화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럴수록 교회에 대한 호감도는 떨어지고 결국 남아 있는 청년들마저 잃게 될 것입니다.

종교 사학에서 종교를 가르치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그 방식과 범위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현장을 들여다보지 않은 논쟁은 실익이 없습니다. 정작 학생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데 채플을 지켜 낸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논쟁을 위한 논쟁이 아니라 현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기를 기대합니다. 그 첫걸음은 학생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진실된 대화를 나누는 일이어야 합니다. 이미 그런 시도를 하는 기독 대학도 있습니다. 강요가 아닌 소통의 방식을 취하는 의미 있는 시도가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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