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목회자는 노동자인가'라는 질문은 해묵었지만 아직도 논란이 많은 주제다. 지금껏 대한민국 사법부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목회자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목회자가 교회에 제공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헌신'이고, 교회가 목회자에게 제공하는 것은 임금이 아니라 '사례'다.

'목회자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말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를 묻기보다는, 이런 논쟁이 왜 촉발했는지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근로기준법은 무엇인가. 노동자가 투쟁으로 얻어 낸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근로기준법 없이도 교회가 목회자에게 이런 권리를 보장해 준다면 굳이 거기 매달릴 필요가 없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없는 것이 지금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겪는 노동 현실이다.

새민족교회 황푸하 목사(왼쪽)와 김종원 장로. 뉴스앤조이 구권효 
새민족교회 황푸하 목사(왼쪽)와 김종원 장로. 뉴스앤조이 구권효 

황푸하 목사(33)는 지난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자리를 제안받고, 역으로 '근로계약서'를 쓰자고 제안했다. 새민족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신정호 총회장) 교단 소속으로 현장 연대와 에큐메니컬 운동을 지속해 온 작지만 잔뼈가 굵은 교회다. 요즘같이 어려운 때 이런 교회가 담임목사로 불러 주면 엎드려 절하고 달려가야 할 텐데, 교회보다도 세 살 어린 목사가 감히(?) 근로계약서를 쓰자고 제안한 것이다.

황푸하 / 사실 말해 놓고도 되게 쫄렸는데….(웃음) 그래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목사가 잡(job)이에요. 제가 선택한 직업이죠. 저는 목사로 살면서 항상 노동한다고 생각했어요. 교회 가는 걸 '출근'이라고 말했고요. 오히려 '사례'라는 말이 이해가 잘 안 가더라고요. 우리 교단 안에 사회 노동운동 역사가 있지만, 정작 교회 안에서의 노동운동은 부족하다는 생각을 늘 해 왔어요.

 

막상 담임목사로 일한다고 생각하니, 한국교회에 '목회도 노동'이라는 개념을 세워 갈 필요가 있겠다 싶더라고요. 무엇보다 분명한 기준이 필요했어요. 교인들이 담임목사에게 요구하는 게 다 다르잖아요. '담임목사의 근로'라는 게 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기준을 세워야겠더라고요. 저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새민족교회의 노동운동이라고도 생각했어요.

젊은 목사의 패기를 접한 교인들은 어땠을까. 결과적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황푸하 목사를 담임으로 청빙하기는 했는데, 교인들 사이에서 당황 내지는 반발하는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 새민족교회 초창기 멤버이자 담임목사 근로계약서 TF 위원으로 활동한 김종원 장로가 말했다.

김종원 / 오히려 교인들도 반겼어요. 새민족교회도 이 문제를 두고 오랜 시간 고민했거든요. 2004년 '교회 규약'에 목회자 '사례'가 아니라 '보수'라는 말을 썼고, 2013년 전 담임목사를 청빙할 때는 '급여', '임금'이라는 말을 썼어요. 노동법을 기초로 한 용어를 쓰기 시작한 거죠. 2015년에는 공동의회를 통해 목회자도 4대 보험에 가입하게 했어요. 긴 세월 동안 조금씩 변화한 거예요. 근로계약서도 진작 쓰고 싶었는데 오히려 목사 입장에서 좀 어렵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목사님이 먼저 제안하니까 저희는 좋았죠.

김종원 장로는 사회에서 노동운동을 오래 해 왔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김종원 장로는 사회에서 노동운동을 오래 해 왔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직무표 만들어 세세하게 규정

새민족교회는 작년 6월, 황푸하 목사와 '근로(연봉)계약서'와 '목회협약서'를 작성했다. 노동절을 앞두고 이 이야기가 궁금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황푸하 목사와 김종원 장로를 4월 22일 서울 마포구 새민족교회 예배당에서 만났다. 30대 목사와 60대 장로가 서로 예를 갖추면서도 편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김종원 장로는 노동조합 일을 오래 해 왔다. 노조위원장으로 사측과 단체협약도 체결해 봤고, 나중에는 사용자 입장에서 인사 담당자도 해 봤다. 노동법에 있어서는 전문가다. 그는 "목회협약서는 노동법에서 말하는 '단체협약'과 같다. 근로계약서와 목회협약서를 합치면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이다"라고 설명했다.

목회협약서에는 새민족교회가 '공', 황푸하 목사가 '동'으로 표기돼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목회협약서에는 새민족교회가 '공', 황푸하 목사가 '동'으로 표기돼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목회협약서에서 특이한 점은, 당사자를 '공'과 '동'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보통 계약할 때 당사자를 '갑'과 '을'로 표기하고, 이런 경우 교회가 '갑', 목사가 '을'이 된다. 공과 동은 한자도 '한가지'라는 뜻으로 서로 같다. 새민족교회는 교회와 황 목사를 각각 공·동으로 표기해 어느 한쪽이 갑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동등하다는 의미를 담았다. 공동 목회를 지향하는 새민족교회의 의지가 돋보이는 지점이다.

김종원 / 새민족교회는 설립 때부터 민주적 운영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누군가의 힘에 의해 이끌려 가는 게 아니라, 목회자든 장로든 교인이든 모두 같은 몫의 의사 결정권을 갖고, 모두가 책임 있게 참여하는 모습을 목표로 했죠. 새민족교회 운영 방식은 기본적으로 교인들과 목회자의 공동 목회예요. 그런 의미를 담은 거죠.

황푸하 목사의 제안을 교인들이 받아들이고, 교회는 TF를 구성했다. TF에서는 두 달 동안 연구해 아예 직무표를 만들었다. 새민족교회 '교회 사역자 직무 활동 설명서'에는 △목사 △교회위원장 △교육전도사의 직무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직무를 크게 △예배 △평신도 교육 △교육 교회 △심방 △행정 조직 △개인 성장 △절기 행사 △공교회 △선교와 연대 등 9개로 나누고, 각 직무에 구체적인 항목을 쓴 후 목사·교회위원장·교육전도사 중 담당자도 정했다.

황푸하 / 주변 제 또래 부목사 하는 친구들 보면, 월요일에 휴가를 쓰더라도 수요일 전에는 돌아와야 하더라고요. 부교역자들은 수요 예배에 '당연히' 참석해야 하는 거죠. 장례 예배 같은 경우는 언제 있을지 계획할 수 없는데, 목사라면 '당연히' 참석해야 하죠. 이 '당연히'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어요. 저희는 이런 것들을 모두 노동으로 보기로 했어요. 그 시간에 일하면 탄력적으로 다른 시간에 쉴 수 있게 했죠.

김종원 / '목회'라는 말 안에 수많은 일이 있잖아요.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노동조건으로 넣어 줘야 목회자를 보호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뭉뚱그려서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적어야 했던 거죠. 이렇게 목회자를 보호해 줘야 그가 지치지 않고 오래 갈 수 있겠다 싶었어요. 교인들이 목회자의 삶을 이해할 수도 있고요.

황푸하 목사는 음반도 몇 개 낸 가수다. 에큐메니컬 운동 단체 '옥바라지선교센터'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매주 옥바라지선교센터가 주관하는 현장 예배에서 설교도 하고 노래도 부른다. 교회는 황 목사의 음악·대외 활동도 모두 새민족교회 담임목사로서의 직무라고 봤다. 새민족교회는 처음부터 현장 연대를 중요하게 여겼던 교회였기 때문에, 이런 활동들도 목회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 것이다.

직무 설명서에는 교회 일을 크게 9개로 나눠 세부 항목마다 담당자까지 정해 놓았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직무 설명서에는 교회 일을 크게 9개로 나눠 세부 항목마다 담당자까지 정해 놓았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서로 좋아하자'

'목회도 노동이다.' 새민족교회 구성원들에게는 당연한 명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노동'이라는 말은 분단과 현대사를 거치며 많은 오해를 받았고, 신학적·정치적 보수 성향이 강한 한국교회는 목사를 다른 직업과는 구별된 성직聖職으로 생각해 왔다. 이 두 가지 의식이 겹치면서 '목회도 노동'이라는 일면 단순한 명제가 지금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목회자도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아야 하느냐 아니냐를 논하기 전에, '목회도 노동'이라는 개념부터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황푸하 / 목사들이 노동 개념을 교회 안으로 끌고 들어오지 않으려 하는 모습이 있어요. 목사는 '레위인'이라는 구시대적인 생각에 자기들을 자꾸 밀어넣어요. 성직·소명·십자가·사역 같은 건 사실 목사들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짊어지고 가야 할 과제잖아요. 노동 개념은 교회로 들여오고, 반대로 성직·소명 개념은 교인들이 교회 밖으로 가지고 나가야 할 것 같아요. 근데 지금은 목사들이 '우리가 사역할 테니까 너희들은 따라와' 이런 느낌이에요.

김종원 / 모든 직업에는 소명이 있는 거죠. 그리고 소명을 이루기 위해 하는 일은 다 노동입니다. 노동을 통해서 결과물이 나오는 거니까요. 목사는 공교회에서 인정하는 교육을 받은 전문가예요. 그 전문가의 노동으로 교회가 굴러가는 것이고요. 노동은 법적으로 보호를 받는 게 당연한 거죠. 근데 전문가의 노동을 성직이라는 말로 포장하면서 법적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봐요.

근로계약서를 쓰고 직무표도 만들었지만 모든 게 완벽하지는 않다. 1년이 돼 가는 지금, 보완해야 할 점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김종원 장로는 근로계약서 체결 등을 교회 규약에 포함시키는 일과, 좀 더 세부적인 노동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목회협약서에 따르면 황푸하 목사는 노동절에 쉰다. 그런데 이번 노동절은 토요일이고 황 목사는 토요일에 출근해야 한다. 이럴 경우 이날 임금은 평일의 1.5배를 줘야 한다. 이런 세부 사항까지 챙겨야 한다는 게 김 장로 생각이다.

황푸하 목사는 근로계약서 작성이 노동운동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어느 조직이나 그렇지만 시스템만 갖춘다고 잘 굴러가지는 않는다. 시스템을 잘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건 구성원들의 의식·마음이다. 교회는 더 그렇다. 한국교회는 민주적인 제도를 잘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시스템의 필요성이 강조되지만, 좋은 시스템을 꾸려 놓았다고 반드시 좋은 교회가 되지는 않는다. 구성원 간 신뢰가 없으면 좋은 제도가 오히려 상대를 찌르는 칼이 될 수도 있다.

황푸하 / 제가 근로계약서를 쓴다고 했을 때 주변 목사님들이 많이 말렸어요. 발목 잡힐 수 있다고요. 실제로 어떤 교회는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아도 장로님들이 고용주 역할을 하기도 하니까요. 목회에 심하게 간섭하고요. 그런 차원에서 보면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겠죠. 결국 서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목사와 교인들이 좀 더 성숙한 노동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배우고 노력하는 게 필요하겠죠.

 

제가 근로계약서와 함께 교인분들에게 제안한 것 중 하나가 '서로 좋아하자', '나를 좀 좋아해 달라'는 거였어요.(웃음) 시스템을 갖추려는 노력 중요하죠. 하지만 교회는 서로 좋아하면서 함께 걸어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누가 아무리 올바르고 정의로운 일을 하자고 해도 그 사람이 싫으면 같이하기 싫잖아요. 우리가 아무리 밖에서 현장 연대하고 좋은 일을 해도, 서로 관계가 깨지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근로계약서 작성의 장점은 명확하다. 교인들은 목회자도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노동자이며, 각자 다른 형태로 소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뿐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목회자는 고용 안정성을 보장받으며 일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명확한 직무와 계약 기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느슨해지지 않을 수 있고, 연봉과 퇴직금 등이 정해져 있어 지나친 물질적 욕망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황푸하 / 근로계약서는 무조건 쓰는 게 좋다고 봐요. 지금 한국교회는 임금·연봉·연금·퇴직금 등에 기준이 없으니까, 누군가는 수십·수백 배를 요구하고 누군가는 그런 걸 꿈도 못 꾸는 상황이잖아요. 젊은 사역자들은 진짜 말도 안 되는 노동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어요. 이들만큼 실업 위기에 취약한 직업군도 없죠.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으니까요. 반면, 큰 교회 목사들은 너무 많이 가져가서 교회 안팎으로 문제가 되잖아요. 어떤 기준이 있어야 교회 공동체가 더 건강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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