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편집국장] '집콕' 할 수밖에 없는 연말에 무얼 하셨나요? 저는 아이를 재우고 아내와 함께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을 정주행했습니다. 네, 그 유명한 걸 이제 봤습니다. 소문 자자한 대로 진짜 재밌더라고요. 한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권력 다툼의 서사들이 유쾌하게, 낭만적으로 반전되는 전개가 신선했습니다. 그 와중에 주인공들의 실력과 태도는 또 1등급. 아내에게 몇 번이나 "이야, 정말 저런 의사들이 있을까?"라고 말했더랬죠.

감탄사 정도로 한 말이었는데 좀 더 생각해 보니, 그런 의사가 많지는 않아도 더러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권력에 별 관심이 없다는 면에서는 <뉴스앤조이>도 비슷하거든요. 직원 11명인 조직에서 무슨 권력이냐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런 '알량한 권력'을 잡고 마구 휘두르는 사람도 세상에는 많더라고요. 요즘 한국에서 기자만큼 욕 많이 먹는 직업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그런 중에도 이런 기자들이 있으니 그런 의사들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2021년부터 '취재기자'로 돌아갑니다. <뉴스앤조이> 편집국장 임기는 2년인데요. 한 번 연임해서 2017년부터 4년을 편집국장으로 일했네요. 연임 횟수에 제한은 없지만 더 하기는 싫더라고요. 변화가 필요하다는 내부적인 공감도 있었고요. 근데 문제는 저뿐 아니라 모두가 편집국장을 맡기 싫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맡은 일만 더 잘하려 해도 벅차다는 것이죠. 몇 달 전부터 기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고, 결국 선임이었던 이용필 기자가 차기 편집국장으로 선출됐습니다.

12월 28일 월요일, 2020년 마지막 편집회의를 마지막으로 주재했습니다. 비대면이라 아쉽네요.
12월 28일 월요일, 2020년 마지막 편집회의를 마지막으로 주재했습니다. 비대면이라 아쉽네요.

지난 20년간 한국 사회와 교회가 변화함에 따라 <뉴스앤조이> 논조도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저는 편집국장을 하는 동안 인권 문제에서만큼은 좀 더 분명한 태도를 보이고자 노력했습니다. '교권과 금권에서 자유로운 독립 언론'이라는 <뉴스앤조이> 전통에서는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고 자부합니다. 교회 권력의 감시견을 자처하며,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려 했습니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려 했습니다. 전문성 부족은 언제나 느끼는 한계였지만, 여러 현실적인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했으니 미련은 없습니다.

<뉴스앤조이>를 아껴 주시는 독자·후원자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덕분에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배짱으로 권력자들에게 머리 숙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저희 기사 때문에 상처받은 약자들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실관계나 취재·보도 윤리에 어긋나는 기사가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알려 주세요. 시간이 많이 지났더라도 다시 논의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부족한 저를 믿고 따라 준 우리 기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네요. 소송 폭탄을 맞았을 때도 변함없이 편집국을 지지해 준 대표님과 직원들에게도 감사합니다. 이들 덕분에 무탈하게 임기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기자들은 퇴임 기념 선물까지 주더군요. 글자가 각인된 만년필이었어요. 뭔가 멋진 말이라도 넣었나 기대했는데, '고쳐서 올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4년간 저에게 듣는 가장 기분 좋은 말이었다고…. (칭찬에 인색해서 미안했다….)

누구든 그렇겠지만 잘 썼든 못 썼든 자기가 쓴 글에는 애착이 가죠. 잘났든 못났든 내 새끼 같은 느낌이랄까요. 편집국장을 하면서는 제가 데스킹한 모든 글이 내 새끼 같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억울했던(?) 점도 하나 있었는데요. 제가 손을 많이 대서 고친 글도 결국 취재한 기자 이름으로 나간다는 것이죠. 이제 그럴 일 없으니 좋네요, 흐흐.

취재기자로 돌아가서도 '슬기로운 기자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애먼 데 고개 돌리지 않고 기자 본연의 사명에 충실한, 취재·보도 실력이나 취재원과 독자들을 대하는 태도 면에서도 1등급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한국교회 미래가 밝지 않습니다. 유쾌하지만은 않은 길이지만 꿋꿋이 기록하겠습니다. 저희에게 주시는 관심과 후원과 격려와 조언들, 좋은 저널리즘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자들이 편집국장 퇴임 선물로 준 만년필입니다. 각인이 고작 '고쳐서 올려'라니… 기분 좋으라고 준 건지 나쁘라고 준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기자들이 편집국장 퇴임 선물로 준 만년필입니다. 각인이 고작 '고쳐서 올려'라니… 기분 좋으라고 준 건지 나쁘라고 준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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