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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 상상해 보기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놀고

어린이들 함께 뒹구는

참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

20여 년 전, 강원도 시골 교회 여름 성경 학교에서 친구들과 힘차게 부르던 찬양 가사를 곱씹으며 '하나님나라는 어떤 곳일까' 하는 상상을 처음 했다.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노는 곳이라니, 그럼 사자는 무엇을 먹고 살지?', '어린양과 나에게는 참 좋은 세상인 것 같은데, 사자는 고기를 먹지 못해서 괜찮을까' 하는 어렴풋한 생각이 하나님나라에 대한 내 첫 번째 상상이었다.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세상이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라는 말은 그 나라 시민이 되어 권리와 안정을 누리라는 말일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꿈꾸고 상상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사람들은 하나님나라를 꿈꾸는 이가 모인 교회 모습을 통해 하나님나라가 어떤 곳인지, 통치자 하나님이 신뢰할 만한 존재인지 확인한다. 제삼자 입장에서는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나라를 상상할 수 있어야 죽어서도 그 나라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만들지 말라고 했지만, 자신의 '나라'는 구체적으로 그려 보고 만들어 나가라고 촉구했다. 대표적으로 모세를 살펴보면, 그는 편안하고 안정된 삶이 보장된 왕자 자리를 박차고 히브리 노예들과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모세가 상상한 하나님나라와 이집트 사회는 대조적이었다.

파라오를 정점으로 한 귀족이 누리는 부귀와 안정은 히브리 노예들의 힘겨운 노동을 연료로 삼았다. 히브리 노예들은 고된 노동의 대가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 현실에서 탄식했다. 모세는 소수의 사람만 누리는 안정과 평안을 거짓·기만으로 봤다. 그는 궁전을 탈주해 마주한 광야에서 히브리 노예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 있는 야훼를 만나고, 가나안 땅에 하나님나라를 세우는 생생한 꿈을 품게 된다.

모세와 히브리 노예들이 만들 새로운 나라의 정신은 '시내산 계약'에 담겨 있었다. 그들은 이집트와는 다른 나라를 만들어야 했다. 또 다른 이집트를 만들지 않기 위해 그 나라 백성은 누구나 노예노동에 시달리지 않도록 안식일·안식년·희년으로 구성된 공평과 정의의 경제 질서를 기획한다. 그들만의 꿈이 아니라 땅을 허락한 하나님과의 계약이었다.

하나님은 시내산 계약 정신을 준수하지 못하면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처럼 그 땅이 반드시 이스라엘도 토해 낼 것이라고 선포했다. 시내산 계약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예언자들 입을 통해 두고두고 선포된 이스라엘이 돌아가야 할 준거점이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나라를 상상하면서, 공평과 정의에 미흡한 당대 정치·종교 지도자들에게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준엄하게 경고했다.

내 꿈은 건물주(?)
건물주가 아이들의 꿈이 돼 버린 사회. 사진 출처 SBS뉴스
우리는 '건물주'가 아이들의 꿈이 돼 버린 사회를 살고 있다. 사진 출처 SBS뉴스

오늘날 대한민국 현실은 우리가 꿈꾸는 하나님나라와 무엇이 다른가. 아이들의 꿈을 보면 그 비극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치열한 입시 경쟁에서 아이들은 생존 세계의 살벌함을 몸소 체험한다. 부모님이 생존을 위해 아등바등 몸부림치는 현실과 주변에서 들려오는 세상 소식을 가만히 듣자 하니, 가장 안정적인 삶을 누리는 직업은 '건물주'와 '공무원'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떠도는 세상이다. 당장 치솟는 집값 걱정에 쫓기는 부모의 모습에서 아이들은 어쩌면 지독한 현실을 본 건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에서 꿈을 꾸자면 조물주보다도 단연 건물주가 매력적이다. 모두가 공평하고 안정적으로 사는 세상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와 땀을 흘린 조물주는 아이들에게 비현실적이다. 아이들은 실제로 이런 조물주가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하는 어른을 보지 못한 것이다. 이 땅의 안정과 복지가 보장된 건물주의 삶을 당장 내 부모와 세상이 부러워하니, 아이들도 이를 동경할 수밖에 없다.

꿈은 억지로 꾼다고 꿔지지 않는다. 교회와 어른들이 하나님나라를 꿈꾸지 않는데, 아이들이라고 그 나라를 꿈꿀 수 있겠는가. 우리 아이들의 솔직한 심정부터 들어 보자. 왜 건물주를 꿈꾸고 있는지. 아이들의 그런 꿈을 품은 이유는 '어른들이 하나님나라를 생생하게 꿈꾸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뼈아픈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토지제도' , '기본 소득' 개념
보드게임으로 접하다
희년함께가 새로운 사회를 상상할 수 있는 보드게임 '두 개의 세상'을 제작했다. 사진 제공 희년함께
희년함께가 새로운 사회를 상상할 수 있는 보드게임 '두 개의 세상'을 제작했다. 사진 제공 희년함께

하나님나라를 어디서부터 꿈꿔야 좋을지 난감한 부모와 아이들을 위해 '희년함께'가 보드게임을 준비했다. 이스라엘이 희년을 통해 이집트와 어떻게 다른 사회를 지향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사회인 오늘날 대한민국과 우리가 꿈꾸는 하나님나라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야 한다. '토지와 부를 독점한 사람이 더욱 빠르게 자산을 불리고 나머지 사람은 파산하는 사회'와, '토지로부터 나오는 이익을 모두가 공유하는 사회'가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으로 느껴 봐야 한다. 성경의 희년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토지제도'와 '기본 소득'을 보드게임을 통해 접해 보고 아이들과 토론해 보자. 어려운 현실 앞에서 뿌리 깊은 무기력 대신, 새로운 세상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발견해 보자.

부동산 투기 게임으로 모두에게 친숙한 '부루마블'은 116년 전 엘리자베스 매기가 개발한 원조격 게임인 '지주 게임'을 통해 지금까지 전해 온 게임이다. 엘리자베스 매기는 '토지 독점 세상'과 '토지 공유 세상'이라는 2가지 방식의 보드게임을 만들어 '토지 공유'를 통해 새로운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모노폴리, 부루마블 등 부동산 투기 게임만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희년함께는 '두 개의 세상 - 공유와 독점'을 만들어 원조 보드게임인 지주 게임을 복원했다. 부동산 투기를 배워 건물주가 되는 꿈이 아닌, 토지 공유를 통해 모두가 잘사는 새로운 세상의 꿈을 아이들과 나누고 싶다.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고, 그 세상을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자고, 누군가는 아이들에게 말해 줘야 한다. 아이들 이전에 우리가 그 꿈을 믿고 있는지 자문해 보자.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두 개의 세상'의 주사위를 던져 보자. 아이들이 모세와 같은 원대한 꿈을 꾸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김덕영 / 희년함께 사무처장
* 펀딩 참여 및 보드게임 직접 하기: http://j.mp/3reMk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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