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가 본 기장 105회 속회 총회 수기…"가장 진보적이라 불리는 교단이 이 정도라니"
난생처음으로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이건희 총회장) 총회라는 곳에 가 봤다. 같이 사는 짝꿍이 "그래도 신도인데 총회 구경 한번 해 보고 싶다. 가서 맛있는 거 먹고 오자"고 해서 가벼운 당일치기 여행 느낌으로 출발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몰랐다. 장장 네 시간에 걸쳐 얼마나 어마어마한 광경을 보게 될지.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청주로 향했다. 장소에 도착하니 총회답게 입구부터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발열 체크를 하고 안건지를 받아 회의장 안으로 들어서려는 찰나, 경북노회에서 왔다는 남성분에게 웬 종이 하나를 건네받았다.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선전물이었다. 매우 불쾌했다. 나와 짝꿍은 성소수자 커플이기 때문이다. 총회 내내 지속적으로 혐오 발언에 시달리게 되리라 내다볼 수 있었다.
회의장 안에 첫발을 디딘 순간 생각나는 단어는 '만민공동회'였다.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안건마다 가·부를 논하고, 의사 진행, 질의를 이어 가며 발언하는데, 사람 수도 수거니와 각자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려면 일주일을 잡아도 회의가 쉬이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사회에서는 이미 빠띠·슬랙·잔디 등 온라인 플랫폼을 업무에 활용하는 회사가 많다. 이 플랫폼들은 안건별로 따로 채팅방을 설정해 논의할 수 있도록 돼 있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총회 보고서 안건을 모두 다뤄야 하는 상황이라면, 사전에 온라인 플랫폼 회의로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 두고 총회를 시작하는 게 빠른 진행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그러나 참가자들 연령대를 보아하니 이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의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와사회위원회'(교사위)와 '경북노회' 간 열띤 공방이 벌어졌다. 앞서 언급한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진영에서 "교사위 성명을 내리고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안건 어디에도 없던 돌발 발언이었는데도 별도의 제지는커녕 강성 발언이 지속·반복됐고, 마이크는 오래도록 꺼지지 않았다.
듣자 하니 교사위가 낸 차별금지법 찬성 성명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기장 전체가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것으로 비쳐 경북노회 내 교회가 연이어 탈퇴를 선언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니 해당 성명을 삭제하고, 총회 차원에서 차별금지법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 달라는 것이었다. 교사위원장은 "성명은 전체 구성원과 충분한 논의 후에 작성·게재한 단체 성명이므로 지금 이 자리에서 사과·철회할 수 없다. 추후 논의는 해 보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경북노회 총대들은 사람을 바꿔 가며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게다가 총회장까지 가세해 "사과를 포함해 말씀해 주신 부분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교사위 회의에 참석해 이끌어 보겠다"고 답했다. 너무나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총회를 구성하는 한 단체에서 결정한 일을 총회장이 직접 개입해 번복시키겠다니.
'사과 요구'와 '사과 불가' 입장이 계속 대립했고, 총회장의 "사과를 포함하여"라는 발언이 오래 이어졌다. 교사위원장이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자, 경북노회 측 한 목사님은 당당하게 "총회장님은 차별금지법에 찬성하시냐", "만일 이 성명이 삭제되지 않으면 경북노회만 따로 성명을 내고 교단과 관계 없이 활동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엄연한 사상 검증, 생떼였다.
연이은 발언들을 들으며 나는 한국교회가 점점 도태할 수밖에 없다고, 세상을 품기는커녕 정죄하기에 급급하다고 다시 한번 느꼈다. 몇몇 발언은 집에 돌아와서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나를 괴롭혔다.
현장에서 느낀 바는 기장도 어쩔 수 없는 교회요, 보수가 장악한 차별의 온상이자 기득권의 밀실이라는 것이다. 대체 언제부터 기장이 문자주의·근본주의에 연연하는 '갇힌 신학'을 했단 말인가. 총회를 개회하며 부른 한국기독교장로회가歌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아래 노랫말이 그냥 허울뿐이라면 이참에 다른 보수 교단에 흡수돼도 괜찮을 것 같았다.
"교리와 전통만을 높이는 그곳엔 진리가 포로되어 신음하고 있다 / 말씀의 자유정신 빛나게 해 보자 / 우리는 듣는다 새로운 말씀, 우리는 배운다 새로운 신앙"
해당 논란이 어찌어찌 마무리되고, 이후 다른 안건에 대한 회의가 진행됐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돼 회의는 빠르게 진행됐고, 이 과정에서 다수 안건을 한꺼번에 묶어 처리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한 여성 목회자분이 설명이 미흡하고 토론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 꼭 이야기해야 한다며 발언을 요청했다. 그러나 총회장님은 "이미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고, 현 안건과 상관이 없다"며 여성 목회자분에게 발언권을 주지 않았다.
회의 초반 차별금지법 논란 때 남성 목회자의 반복적인 이야기만 칼같이 쳐 냈어도, 여성 목회자분은 발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총회장 논리대로라면, 차별금지법 반대 발언 역시 안건과 상관이 없는 발언이므로 발언자의 마이크를 끄고 진행하지 않았어야 했다.
회의 진행 내내 한 사람이 두세 번 반복해서 진행과 질의를 번갈아 하는 건 귀 기울여 듣더니, 반드시 해야 하는 발언, 중요한 발언을 하겠다는 목회자의 말은 막는 진행이 참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회의장 내 구성원 성비는 언뜻 보아도 여성이 1/3도 안 돼 보였다. 이 와중에 양성평등위원회·성폭력대책위원회 관련한 여성 목회자분 발언 기회를 박탈한다면, 양성평등위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성폭력대책위원회가 헌의한 '성폭력대책위원회의 존속과 조직 변경 헌의의 건'을 다룰 때 나왔던 어마어마한 반대표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통과는 됐지만 찬성과 반대표 차이가 10표 남짓이었으며, 어떤 남성 목회자분은 "이미 양성평등위원회가 있는데 왜 또 성폭력대책위원회가 필요하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젠더 감수성 교육이 얼마나 절실한지 보여 주는 장면이이었다.
성폭력대책위원회는 아직도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교회 내 성차별·성희롱·성폭력 앞에서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 신도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기구다. 피해자 성비가 뚜렷한 이 문제 앞에서 목사는 역시 '남자'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이미 지난 총회에서 결의한 내용을 자체 회의를 통해 마음대로 뜯어고쳐 헌의한 위원회도 있었다. 중·고등학교 학급 회의보다 못한 수준에 입이 떡 벌어진 순간이었다.
회의를 참관하는 내내 스트레스와 경악,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 교단이 이 수준이면 다른 곳은 대체 어떻다는 이야기일까. 신을 믿는 사람으로서, 성공회나 기장 정도 스탠스를 가진 교단이 있으니 그래도 점차 나아지지 않을까 했던 생각이 부끄러워졌다.
기형적으로 보수적인 한국교회 안에서 기장은 그나마 진보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기장이 그러한 자만에서 벗어나 현실을 보길 바란다. 양성평등위원회와 성소수자목회연구위원회는 진보·보수를 가르는 기준이 아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당연히 갖춰야 하는 기본일 뿐이다.
기장이 민주화 운동을 함께한 교단, 사회 진보에 함께 목소리를 내 왔던 역사가 있는 교단, 변두리 소외당하는 자와 함께하려 노력했던 교단으로서 지속적으로 사회 진보에 동참하고 싶다면, 우선 아래 부분은 갖춰야 할 것 같다.
- 젊은 총대 뽑기. 젊은 총대에게 발언권 쥐어 주기.
- 여성 총대 수 늘리기. 여성 총대에게도 충분한 발언의 기회 주기.
- 양성평등위원회·성소수자목회연구연구회를 교단의 진보성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보지 말고, 위원회 활동을 적극 보호·지지하기.
- 성폭행 가해자 목사 제명하기. 젠더 감수성 기르기.
- 회의 진행에 있어 새로운 수단을 도입하고 공정성 가지기.
선승희 / 섬돌향린교회 소속 가나안 성도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등 국내 교회들 행태가 부끄러워 누군가 종교를 물으면 일단 '무교'라고 대답하는 샤이 크리스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