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서울 노원구에 있는 생명사랑교회(한문덕 목사)는 올해 부활절, 전 교인 114명 모두에게 '생활 지원금' 명목으로 5만 원씩 지급했다. 2세 아기부터 97세 노인까지 나이와 직분 구분 없이 똑같이 나눠 줬다.

부활절 예배도 온라인으로 대체했기 때문에, 한문덕 목사와 전도사·장로들은 4월 11일과 12일 짝을 지어 교인들 집을 방문했다. 생활 지원금 봉투와 달걀, 작은 화분, 한 목사의 목회 서신을 전달했다. 교인들은 오랜만에 만나 반가워하면서도 봉투를 받고는 어색해했다. 교회에서 돈을 받는다는 게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활 지원금은 생명사랑교회가 시도한 작은 실험이었다. 교회에서 4월 26일 만난 한문덕 목사는 "코로나19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경제가 어려워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교회가 생존 공동체로서 어떻게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적은 금액이지만 함께 나누는 훈련을 해 보면 좋겠다 싶어 당회에 제안했다"고 말했다.

안건은 당회를 통과해 목회운영위원회에 올라갔다. 운영위원들이 가장 크게 걱정한 것도 역시 '돈'이었다. 1년 예산이 빠듯하게 정해진 작은 교회에서 전 교인에게 5만 원씩 지급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교인들은 "생존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동의했다. 마침 상반기 예정했던 행사를 모두 취소해서 예산에도 조금 여유가 생겼다.

교인들은 부활절 때 받은 생활 지원금과 화분, 달걀을 한곳에 놓고 찍은 사진을 공유하며 기쁨을 나눴다. 사진 제공 한문덕 목사
교인들은 부활절 때 받은 생활 지원금과 화분, 달걀을 한곳에 놓고 찍은 사진을 공유하며 기쁨을 나눴다. 사진 제공 한문덕 목사

교회에서 생활 지원금을 받은 교인들은 이전에는 생각해 보지 못한 새로운 교회 역할을 고민하게 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 교인은 "교회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해 봤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라는 계기로 교회의 활동, 역할을 수정하고 이를 통해 미래가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 교회가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가는 역사 변혁의 한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모든' 교인에게 5만 원씩 지급하겠다는 결정은 교회 구성원 중 누구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목회운영위원회 의지가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뜻하지 않은 '기본 소득'을 손에 쥐게 된 청소년들 역시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생명사랑교회 육성한 전도사는 "받았을 때의 마음을 잘 기억했다가 나중에 도움이 필요한 곳에 똑같이 나누면 된다고 청소년들에게 설명했더니, 취지를 잘 이해하고 교회에 더 소속감도 느끼게 되더라"고 말했다.

당회원 채경숙 장로는 "우리는 월세를 내야 하는 상가 교회로 예산도 빠듯하다. 하지만 큰 교회가 오히려 변화를 시도하는 게 더 어렵지 않았을까. 우리는 규모가 작아서 바뀐 환경으로 전환이 필요할 때 더 빠르고 능동적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 재정적 어려움은 여전하겠지만, 새로운 일을 시도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신도가 운영 주체 되어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교회

2012년 설립한 생명사랑교회는 처음에 평신도들의 모임이었다. 교회 분쟁을 겪고 나온 교인들이 모여 예배 공동체를 구성했다. 이들은 3년 넘게 모임을 지속하면서 공동체 틀을 다졌고, 2015년 11월 한문덕 목사를 담임으로 청빙했다. 한 목사는 부임 후에도 평신도가 운영의 중심이었던 공동체 특성을 그대로 살리면서 기성 교회 모습을 간직한 교회로 활동할 수 있도록 운영 방침을 정했다.

​​​​​​​​​​​​​​생명사랑교회 목회운영위원회는 한 달에 한 차례 모인다. 참석자 절반이 여성이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생명사랑교회 목회운영위원회는 한 달에 한 차례 모인다. 참석자 절반이 여성이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생명사랑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으로, 여느 장로교회처럼 당회가 있다. 당회는 교회 운영의 큰 방향과 틀을 논의하고, 목회운영위원회는 교회 운영 실무를 논의한다. 목회운영위원회는 담임목사를 비롯한 당회원과 신도회 및 권사회 대표 각 1인, 각 부서 부장으로 구성된다. 성비와 연령대 등이 다양하게 어우러져 교인 의견을 골고루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평신도가 운영 주체로 참여하는 생명사랑교회의 강점은 코로나19를 맞아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교회가 평소처럼 헌금이 걷히지 않아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생명사랑교회는 오히려 이 기간에 헌금이 조금 늘었다. 한 가족처럼 살아왔기 때문에 교회가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도나도 십시일반 조금씩 더 헌신했다.

생명사랑교회는 여전히 주일예배를 온라인으로 대체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 한문덕 목사와 전도사들, 당회원이 모여 주일예배를 녹화하고 편집해 주일 오전 교회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다.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는 결정은 물론 현장 예배 재개 시점을 정하는 일도 목회운영위원회 몫이다.

위원들은 현장 예배 재개 시점부터 어떤 방식으로 모일 것인지 한참 토론했다. 위원들은 코로나19 이전과 똑같은 방법으로 모이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데 동의했다. 우선 한 번만 모이던 주일예배를 세 번으로 나눠 모일 수 있도록 주일예배 시간을 조정했다. 정부가 사회적 거리 두기를 5월 5일까지 연장했기 때문에 현장 예배는 5월 10일부터 재개하기로 했다. 한문덕 목사는 "솔직히 5월 3일부터 교인들 얼굴을 직접 보고 싶었는데 위원들 결정을 따라야지 어쩌겠나"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한문덕 목사는 코로나19 이후 미래 교회는 다시 초대교회 같은 가정 교회 모습을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생명사랑교회 교인들은 하나님나라 시민으로서 신앙은 깊이 간직하되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역동적이고 능동적이다. 복음의 본질만 변하지 않는다면 이를 담는 그릇은 어떤 모습이라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 많은 교회가 같은 고민을 나누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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