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9일 12시 30분부터 1시 30분까지 1인 시위를 한 이성혜 씨의 후기입니다. 온라인 카페 '사랑의교회 건축, 어떻게 할 것인가'(http://cafe.daum.net/howsarang)에 게재된 글을 이성혜 씨에게 허락받고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 이성혜 씨가 사랑의교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뉴스앤조이 유연석
사실 첫날을 지원한 것은 아닌데 교회개혁실천연대(개혁연대) 간사님의 부탁으로 박득훈 목사님 다음으로 1인 시위를 하게 되었습니다.

날이 풀린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마음이 추워서 그런지 좀 떨었습니다. 도착해서 기자회견 중이던 개혁연대 사람들을 보며 마음이 좀 따뜻해졌습니다. 제 착오로 한 시간 일찍 도착한 덕에 따뜻한 식사 대접을 받고 나서 교회 정문 주차장 나무 앞에서 피켓을 들었습니다. 어정쩡하게 서서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몰라 처음엔 영 어색하더군요. 점심 무렵이라 사람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다녔습니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면 얼른 그쪽 방향으로 피켓을 돌리기도 하고, 가끔(사실은 자주) 저를 노려보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기도 하며, 1인 시위에 조금씩 익숙해졌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카메라를 든 개혁연대 간사님 한 명, 또 여러 사람이 주변에 서 있어서 두렵지는 않았습니다. 솔직히 우발적인 상황을 떠올리면서 감당하리라 다짐은 했으나 염려가 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아마도 권사회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세련되고 멋진 모습의 권사님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교역자 분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나름 제가 사랑의교회 원로(?)인지라 면식이 있는 분들을 꽤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피켓을 든 탓인지, 모자를 쓴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저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가끔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지만 관심 두고 제 얼굴을 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재작년 남편의 제자 훈련을 담당했던 목사님도 저를 그냥 지나쳤습니다. 저만치 가시는 뒷모습을 한번 돌아보았는데, 그분도 마침 저를 돌아보시더군요. 그분은 저를 알아보셨을까요.

많은 이들이 애써 외면하고 무시하며 지나쳤습니다. 간혹 "자기들이 왜 하라 마라 하는 거야", "왜 남의 교회 와서 저러지", "왜 남의 교회가 짓겠다는데 반대하고 난리야" 등과 같은 말씀을 지나치며 하더군요.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왜 중단하라는 거예요? 이유가 대체 뭐죠"라고 따지듯 물었습니다. 단답형으로 대답할 수 없는 이 질문에 그냥 난감한 미소만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득훈 목사님은 "'이유를 정말 듣고 싶으세요? 말씀드릴까요'라고 했더니 아니라며 고개를 절래 흔들며 총총 지나갔답니다. (저도 주일에는 그렇게 할까 봐요.(웃음)) 제게 이런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을 때에는 사랑의교회 커뮤니케이션실 직원이라는 젊은 남자 분께서 가만히 말려 주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만행(시위)을 할 수 있느냐고 대로하시던 분들을 가라앉혀 주니 상황이 쉽게 정리가 되더군요.

조금 길었던 어느 권사님과의 대화입니다.

권사님 : 이 일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인지 기도해 보셨어요? 기도는 해 보셨냐고요.

: 기도하면서 교회 건축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이란 확신을 주셔서 1인 시위를 하게 됐습니다.

권사님 : 하나님 음성 들었어요?

: 침묵. (아직 부족한 영성이라 한 번도 직접 하나님 음성을 들은 적이 없는 고로 꼬리 내림.)

권사님 : (몇 걸음 가시다가 몸을 돌리시며) 느헤미야서를 묵상하세요. 

: 네.

교역자들께서는 대체로 제게 시선을 주지 않았습니다. (중략) 나름 열심히 '쿨' 하게 잘 끝내고 싶었는데, <뉴스앤조이> 기자가 몇 가지 질문을 하는 통에 누르고 눌렀던 감정이 흐트러져 눈물을 쏟게 되었습니다. 시위하는 한 시간 내내 제가 지울 수 없는 생각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사랑의교회는 이제 이름만 남았구나. 나를 감동시키고 변화시켰던 그 사랑의교회는 이미 없구나….'

제가 자랑스러워하고 그리워하는 그 옛적 사랑의교회라면 달랐을 것입니다. 옥한흠 목사님께서 부교역자들이나 순장들에게 "시위하는 사람들은 우리와 생각이 다를 뿐이다. 그들을 냉대하지 마라"고 이르셨을 것이고, 당신도 외면하고 지나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순장들께서는 "아유, 추운데 고생 많다"고 따뜻한 물 한 잔 건네고 가셨을 것입니다. 적어도 적대적인 눈초리가 아니라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성도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같이 위협적인 반대자들의 존재가 없었고, 반대자들이 있어도 기꺼이 포용하려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관용'을 몸소 실천하며 가르치던 목사님 곁에는 순종하려 애쓰는 비슷한 순장과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목적을 위해 세상의 수단을 거리낌 없이(혹은 거리낌이 있더라도) 사용하고, 반대자들의 존재 자체를 못 견디시는 오정현 목사님 곁에는 당연히 그와 비슷한 성도들이 있을 뿐이 아니냐는 생각에 슬펐습니다. 담임목사를 뛰어넘는 부교역자들이 없고 교역자들을 뛰어넘는 성도들이 있을 수 없다는 저의 편협한 견해를 굳게 하는 한 시간의 경험이었습니다.

곳곳에서 무언의 응원을 보내시는 분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힘든 상황과 이유 때문에 드러내 놓고 반대할 수 없는 분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생각합니다. 그분들을 매도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교회 내부이든 외부이든 마음 합하여 기도하고 끝까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행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수몰된 고향 마을을 찾은 사람들의 심경이 이런 것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으로 긴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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