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최바울 형제에게 보내는 글'을 발표한 이후 서경석 목사가 공청회를 제안했다. 당시 합동 측 교단이 총회 차원에서 인터콥조사위원회를 구성하였기에 추가로 글을 써야한다는 부담에서 스스로를 해방한 탓에 굳이 공청회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필자는 인터콥이 작금 한국 선교 현장에 끼친 순기능과 역기능을 조명하면서 이 모든 일은 한국 교회가 자정능력이 부족하고 건강성을 잃어버려 빚어낸 필연의 산물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럼에도 인터콥 문제는 언제나 우리 곁에 방치된 시한폭탄과 같다.

서경석 목사와 최바울 형제를 함께 만났을 때 필자는 그에게 인터콥 대표직에서 당분간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했다. 아프간 사태 이후 한국 교회에 대한 사회 비판과 교회에 비등한 인터콥 성토를 비켜가기 위한 최선의 방책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제의는 무위로 끝났지만 최바울 형제가 논란의 중심에 있는 한 인터콥에 대한 시비는 끝이 없을 것이다. 인터콥을 무너뜨리려는 사단의 궤계라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최바울 형제의 행태나 사고방식을 보면 여전히 우려된다. 이는 뉴욕 등 미주 지역 여러 곳에서 행한 그의 선교적 도전을 통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첫째는 그가 한국 교회와 함께 가겠다고 하면서 교회에 대한 태도는 여전히 도전적이라는 점이다. 흑백 논리와 편 가르기는 최바울 형제의 장점이면서 치유 불능의 아킬레스건이다. 분열의 영이 그를 지배하는 까닭이다. 방콕 포럼에서 선교지도자들에게 사과하고 한국 교회 앞에 사과문을 썼어도 이후 행위에 진정성이 없다면 그런 사과는 백 번이고 의미 없다.

둘째는 인터콥이 작금 미주 지역을 타깃으로 왕성한 조직 활동을 벌이고 있다. 국내에서 인터콥이 당면한 제약을 미주 지역에서 만회하기 위한 숨겨진 의도가 보인다. 그러나 이마저 나무랄 수는 없다. 선교단체로서 생존을 위한 비지니스를 누가 나무라겠는가. 미주 지역 내 여러 곳에 비전스쿨을 운영하다보니 아웃리치팀을 운영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문제는 지난 1월, 다게스탄 지역 같은 선교 제한 지역에 수십 명씩 몰려다니는 사려 깊지 못한 집단행동이 여전히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최근 아프간 정부는 한국 여권 소지자 뿐 아니라 미국 시민권자도 출신이 한국인이면 비자 발급을 중지하는 조처를 취했다.(본인의 선교기관 제작진 역시 미국 시민권자인데도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아프간 비자 발급을 거부당해 한국 외통부의 동의서를 요구하는 실정이다.)

아직 수면 위로 공식화된 것은 아니지만 아프간 축제와 샘물교회 사태 이후 아프간 정부가 취한 일련의 정책에서 인터콥은 결코 자유로운 처지가 아니다. 아프간 축제가 이루어지지 못한 데 대한 미련인가, 아니면 집착인가. 한국정부의 감시와 통제에서 자유로운 미주 지역 한인 교인들을 아프간 등지에 투입하여 인터콥은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인터콥 사태로 불거진 문제 핵심은 대부분 최바울 형제의 인격과 성향에서 온 것이다. 굳이 최바울 형제의 단점을 들추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나 이 문제가 다른 사역자들 신변과 미래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단순한 사과나 자중으로 끝날 수 없다. 최바울 형제가 인터콥에서 용퇴해야 할 이유로 몇 가지 고언한다.

첫째는 지나친 선교적 열정이다.

칸트는 "내용 없는 형식은 맹목이고 형식 없는 내용은 허무하다"고 했다. 최바울 형제의 선교적 관점은 뛰어나고 열정도 남다르지만 애석하게도 주위를 돌아보는 눈이 없다. 그는 자신의 주장에 빠지면 결코 주변 의견을 들으려는 진지함이 전무하다. 일견 확신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과신이 일으킨 문제 행태로 볼 때 그의 열정은 맹목이요 지나친 상상력과 리더로서의 편향된 왜곡 현상이 많다. 최바울 형제의 열정이 오히려 자신을 독선에 빠트리게 하는 요인이 된 셈이다. 그와 동일한 성향을 가진 추종 세력에게는 훌륭한 지도자로 군림할 수 있을지 몰라도 객관적으로 그의 지도력과 선교적 열정은 오히려 선교 현장에서 장애요인으로 부각될 뿐이다.

둘째는 인터콥 내부에 최바울 형제를 제어할 사람이나 장치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지난번 필자가 글을 발표했을 때나 여러 매체에서 그에 관한 비평적 기사를 보도할 때 예의 그를 지지하는 충성 집단의 광기는 상식적인 수준을 넘어 사교적 성향마저 보였다. 2년 전 뉴욕 장로교회 이영희 목사가 간통 사건으로 목회 현장을 떠나자 그를 추종하던 교인들이 "우리 목사님은 다른 여자를 범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여자들이 목사님을 약물로 유혹하고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서 사단이 생긴 것"이라는 해괴망측한 변명을 일삼았다.

정작 문제를 일으킨 목사가 공식석상에서 시인한 사안조차도 그를 지지하는 무리들은 엉뚱한 논리를 동원하여 이를 부인하는 맹목적 충성으로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최바울 형제를 둘러싼 추종 세력의 과민 충성에는 옳고 그름을 인식하거나 인터콥 내부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자성이 없다는 점이다. 제 아무리 선교를 목적으로 조직한 기관이라도 최소한의 합리적 사고와 운영은 필요하다. 이러한 여과 기능이 없을 때 선교를 빙자한 사교 집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인터콥 이사진 가운데는 필자의 친구도, 좋은 가르침을 준 스승도 있다. 최바울 형제는 아프간 평화 축제가 이사회 결의를 거쳐 시행한 행사이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작 인터콥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라 세간의 가십에 올랐을 때 이사진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인터콥을 위해 총대를 메는 분을 보지 못했다. 이사회에서 아프간 축제를 결의하고 강사진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가는 일은 자랑스럽고 고통과 책임은 나누어지지 못하는 자세는 선교 현장에서 순교를 최고의 가치인 양 선전하는 선교 단체 인터콥의 이사로서 개탄스러운 일이다. 인터콥 이사진의 의식이나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아야 할 단계다.

마찬가지로 한국교회의 덕망 있는 인사들을 이사로 모셨다면 최바울 형제는 이들에게 진정성 있는 멘토링을 받아야 한다. 화려한 이사진 그늘에 숨어 자기 합리화를 위한 방패로 이용하기보다 죽으나 사나 영광도 고뇌도 함께 나눌 이사들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 근본적인 문제는 최바울 형제의 정직성이다.

필자는 그와 교제할 기회를 적지 않게 누렸다. 그를 귀히 여기고 또 인터콥 내 사역자 다수와 여전한 존경과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럼에도 최바울 형제의 인격 장애 가운데 최대 문제는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과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다른 이들에게 전가하는 점이다.

아프간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는 손석희 씨와 나눈 이틀간의 대담에서 앞뒤가 다른 이중성을 보여주었다.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일했던 인터콥 김인태 형제가 '인터콥에는 잘못이 없다'는 반론을 보내왔지만 이는 손석희 씨와 나눈 대담의 행간을 제대로 읽지 않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부분이 많았다. 손석희 씨는 이튿날에 이러한 멘트로 대담을 시작했다.

"어제 피랍된 23명 중에 3명도 바로 아시아협력기구 명의로 비자를 받아서 아프간에 입국해 봉사단원들과 함께 활동했는데, 혹시 최한우 사무총장은 아시아협력기구하고는 무관하다, 이렇게 얘기한 바 있습니다."(2007.7.26)

그는 또한 첫날 대담에서 ANF와 고세중 선교사가 인터콥과 협력 관계라는 사실만을 우회적으로 인정하였을 뿐 고세중이 인터콥 소속 선교사라는 건 숨겼다.(현재는 탈퇴하고 중동지역에서 사역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정작 솔직해야 할 부분은 두루뭉실하게 말을 바꾸는 최바울 형제의 부정직은 가히 놀랍다. 선의적인 거짓을 양념 삼아 적당히 둘러댈 수는 있어도 하나님나라의 지경을 넓히겠다며 순교를 부르짖는 선교 단체 리더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이길로·홍성집형제가 실크로드 축제를 기획하고 진행하였기 때문에 "나하고는 상관이 없다"던 최바울 형제. 필자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예수의 사형을 언도하고 폭도들에게 예수를 내어주며 손을 씻던 빌라도가 내뱉던 말과 무엇이 다를까를 곱씹어 보았다. 인터콥 사역자들이 기획하고 진행했던 실크로드 대축전은 그야말로 축제로 끝났지만 중앙아시아의 인근 국가로 하여금 한국 선교에 대한 빗장을 걸어 잠그는 계기도 되었다.

소위 선교 단체 대표가 내부적 토론을 거쳐 기획·진행한 실크로드 축제에 대해 담당자를 거론하며 나는 상관이 없다는 자기변명으로 일관했다. 실크로드 대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이 이 말을 들었더라면 "과연 최바울"이라며 무등이라도 태울 것인가.

결론은 간단하다. 최바울 형제 퇴진만이 인터콥을 제자리에 세우고 한국 교회의 선교를 도와주는 최고·최선의 길이다. 물론 최바울 형제 용퇴로 모든 문제가 단번에 정리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미 인터콥 내에는 제2, 제3의 최바울 같은 아류가 다수 길러진 것도 깊은 우려를 낳고 있다. 그럼에도 최바울 형제의 용퇴를 촉구하는 것은 인터콥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일종의 긴급 처방인 셈이다.

이처럼 미주 지역 한인 교회를 아프간 전선으로 끌어들이는 노력보다 더 시급한 것은 최바울 형제가 하나님 존전 앞에 엎드려 자신의 내면을 둘러볼 일이다. 최바울 형제의 출생과 성장, 예수를 영접하고 난 이후 그가 거쳐 온 영적 터전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그분이 만났던 하나님과의 관계.

믿음으로 시작했던 동역자들은 떠나고 결코 그를 위해 총대 메는 법이 없는 이사들. 그가 지니고 있는 마음의 벽을 허물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아름답게 용퇴하길 바란다. 그리고 겸손함과 더욱 깊어진 영성으로 돌아올 때 최바울 형제를 박수하며 맞으리라. 진정한 형제애로 용납하며 그리스도의 풍성한 믿음으로 함께 나가리라.

양국주 / 열방을섬기는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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