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자유연구소가 '자본주의, 그 다음'이라는 이름으로 11월 5일부터 5주 동안 토지+자유 아카데미를 시작합니다. 남기업 소장과 김종철 교수(서강대학교), 이태경 사무처장(헨리조지포럼)이 각각 토지제도와 금융 질서, 기업 지배 구조를 두고 질문을 던집니다. 남기업 소장 글에 이어 김종철 교수의 글을 소개합니다. - 편집자 주

은행과 보통예금의 예금자는 예금을 대략 두 배로 불리는 계약을 맺는다. 이것을 경제학은 무미건조한 어투로 "은행의 화폐 창조 기능"이라고 부른다. 보통예금에 입금한 돈은 예금자가 언제든지 찾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예금자 소유다.

그런데 은행이 이 예금을 은행 명의로 타인에게 빌려준다. 이때 타인 명의의 보통예금 계좌를 열고 예금을 입금해 준다. 이 타인도 이 예금을 언제든지 찾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예금의 실질적인 소유자다. 신기하게도 원래 예금자가 입금했던 하나의 예금이 신기하게도 두 배로 불어나는 일이 벌어진다.

이런 은행에 의한 화폐 창조 기능은 중세기 때만 해도 범법 행위였다. 예금된 돈은 예금자 것인데, 이것을 은행이 마치 자기 것인 양 남에게 빌려주어서 이득을 챙겼기 때문이다. 남의 것을 자기 것인 양 함부로 사용해서 이득을 취한 경우를 지금도 법에서는 횡령이라고 칭한다. 중세에는 이 횡령을 저지른 은행업자를 심한 경우 광장에서 군중이 보는 앞에서 사형에 처했다. 이런 범법 행위는 17세기 말 명예혁명 직후 영국에서 합법화한다. 이 합법화로 자본주의가 시작된다.

이 횡령의 합법화와 더불어 새로 생겨난 일이 있었다. 유한책임 주식회사의 탄생이다. 명예혁명 직후 설립된 영란은행(The Bank of England)이 최초의 유한책임 주식회사이다. 설립과 함께, 영란은행은 과거 횡령이었던 은행업을 허가받는다. 유한책임 주식회사는 아주 새로운 것이었다. 주주가 회사 주인이기도 하고 때로는 주인이 아닐 수도 있게 조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주주는 회사 주인으로서 의결권을 행사하지만, 회사가 비도덕적 영업 행위를 해 책임을 져야 할 때는 더 이상 회사 주인이 아니고 채권자에 불과하게 되어 어떤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자못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이 두 제도—현대의 은행업과 유한책임 주식회사—는 어떻게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제도가 된 것일까. 이 제도들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쳐 온 걸까. 이 두 제도를 대체할 만한 좋은 제도들이 있는 걸까. 이 질문들에 답을 해 봐야 한다.

이 두 제도는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영국에서 처음 개발되었고 지금도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이 두 제도 덕분에, 부유한 계층은 자신의 부富로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누리면서도, 권력 행사에 따른 책임은 회피할 수 있었다. 결국 이 두 제도는 사회 내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유지시키면서도, 다른 나라 부를 수탈하여 그 양극화를 임시적으로나마 완화하는 역할을 해 온 셈이다.

평화롭고 우애 넘치고 평등한 미래의 문명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위 두 제도의 본질을 탐구하고 그 대안을 찾아야 한다.

김종철 /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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