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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하나님과 복음의 공공성
[제2회 기독교공공성포럼을 앞두고] '상호 내주-상호 침투'의 신비 닮아 가야
  • 남기업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8.10.19 15:42

기독교공공성포럼(정재영 대표)과 <뉴스앤조이>가 11월 6일, 13일에 제2회 기독교공공성포럼 '공적인 교회, 공적인 신앙'을 엽니다.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정재영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성석환 교수, 토지+자유연구소 남기업 소장, 덕은동공동체 최규창 대표, 러빙핸즈 박현홍 대표, (주)늘푸른이야기 손민호 대표가 잃어버린 한국교회의 공공성을 되찾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 참고할 사례를 놓고 이야기 한마당을 펼칩니다. 행사에 앞서 11월 6일 강연자로 나서는 남기업 소장의 기고문을 소개합니다. 포럼 관련 자세한 사항은 http://joyproject.co.kr/ccg/index.html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편집자 주


하나님은 홀로 고독하게 존재하는 전제군주적 유일신이 아니다. 전제군주적 유일신은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신관이다. 하나님은 본질상 관계적 존재다. 성부·성자·성령, 이렇게 삼위가 하나가 되신 분이다. 각 위 하나님은 고유한 역할이 있으며 삼위 간 관계가 종속적이지 않다는 점이 중요하다. 즉 성부가 우위에 서서 성자와 성령을 통솔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귐이고,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학의 심장인 삼위일체론이다. 성경은 이 삼위일체의 신비를 '상호 내주-상호 침투'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 역시 관계적 존재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간다는 것은, 상호 침투와 상호 내주의 모습을 닮아 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닮아 간다는 것

상호 내주와 상호 침투란 무엇인가. 그것은 간단히 말해 상대방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셨을 때 하나님의 마음이 찢어지셨던 것처럼, 우리 이웃의 슬픔과 고통이 나의 것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고통당하는 사람을 보고도 데면데면하고 내면의 평안만 추구하는 것은 복음과 상관없는 삶이다. 복음을 더 깊이 체험할수록 상대방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게 된다.

복음을 체험한 사람은 세월호의 슬픔을 보고 그냥 있을 수 없다. 유가족의 슬픔이, 차디찬 바닷속에서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아이들의 고통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복음을 알면 알수록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고통의 소리를 외면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깨달은 사람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불의가 아니라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스스로 "나는 여호와, 여호와다. 불쌍한 이들을 한없이 측은히 여기며 가난한 이들을 바라보면 가슴 아파 견디지 못하는 하나님"(출애굽기 34장 6절, 현대어성경)이라고 말씀하셨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지녔기 때문에 신자들은 이웃이 진 빚을 대신 갚아 주거나 때로는 탕감해 주며, 불의의 사고를 당해 결국 땅을 팔아 버린 이웃의 토지도 되찾아 주는 것이다. 땅을 잃어버리고 엄청난 빚을 진 사람들의 고통이 나의 고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초대교회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희년을 실천했던 것이다.

기독교공공성포럼(정재영 대표)과 <뉴스앤조이>가 11월 6일, 13일에 서울 중구 필동 희년평화빌딩에서 제2회 기독교공공성포럼을 엽니다. 6일 강연자로 나서는 남기업 소장.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복음의 공공성

복음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우리는 복음의 공공성을 발견할 수 있다. 복음의 목표가 관계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사람 간 관계의 회복, 인간과 인간 간 관계의 회복, 그리고 인간과 자연 간 관계의 회복이 복음의 목표라는 점에서 복음이 공공성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말하는 복음은 이와 같은 공공성과 거리가 멀다. 마치 인간이 홀로 존재하는 것처럼 관계를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복음에서도 '관계'는 본질에 속한다. 그런 까닭에 율법과 선지자와 예수님과 사도들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라고 강조한 것이다. 복음의 공공성을 생각하면 나의 사회적·경제적 행위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된다. 복음이 공공성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부동산을 사고팔아서 돈을 버는 것이 우리 이웃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게 되고, 내가 사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하면 어떤 사태가 일어나는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지금 한국교회가 보이는 온갖 난맥상은 단지 복음의 '실천 부족'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복음의 핵심인 공공성을 부수적으로 간주하거나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제거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것은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는 운동이다.

남기업 /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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