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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망각 사이에 있는 신학적·윤리적 난제들
[빅퍼즐의 기독 인문학 칼럼] 세월이 가도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 김상덕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8.05.04 19:51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최근 '기억'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기억(memory)이란 내가 기억하는 것(what I remember)과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 혹은 잊어버린 것(what I don’t remember or forget)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기억과 유사한 개념으로 역사가 있습니다. 역사는 과거에 대한 이미 내려진 평가로서 고정적인 것인 반면, 기억은 과거에 대한 현재 나의 기억 행위(remembering and forgetting)로서 현재진행형이고 가변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기억과 함께 살펴볼 단어는 '기념'(commemorate)입니다. 기념이란, 과거의 인물이나 사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기억하는 행위와 의식을 말합니다. 기억과 동시에 뜻과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기념의 목적에서 중요합니다.

가만 보면 기억은 기독교 전통에서 매우 친숙한 주제입니다. 시편의 기자들은 종종 청중들에게 주의 은혜와 선하심을 생각(기억)해 보라 말합니다. 구원의 기억은 신자의 현재의 삶에도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선택하도록 돕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성찬을 베푸시며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4-25) 당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찬을 통해 그분을 기억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겠다 다짐합니다. 기억은 기독교 신앙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사진과 기억의 관계도 흥미롭습니다. 사진은 기억과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집합 기억'(collective memory) 개념을 처음 소개한 모리스 알박(Maurice Halbwachs)은 집단 정체성 형성을 공동의 기억에서 찾았습니다. 즉 공동의 기억을 갖는 단위로서 집단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족은 가족 구성원만이 아는 사적이고 특별한 기억을 공유하는 집단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가족사진은 가족 구성원의 고유한 기억을 강화하고 지속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기억은 주관적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흐릿해지기 마련인데, 사진은 과거의 순간을 시각적으로 고정하여 흡사 영구불변한 기록으로 남기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하여 과거와의 만남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 흐릿했던 기억을 더 분명하게 해 주고 잊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하지만 기억을 강화하는 사진의 힘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가족의 상실을 경험한 이들이 이미 떠나가 버린 가족의 사진을 보는 데서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를 들어, 평소 일상의 삶을 살다가도 떠나보낸 가족의 사진을 보는 순간 상실의 감정들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비슷한 예로, 롤랑 바르트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을 가리켜 자신의 기억보다 더 온전한 어머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과거의 모습이므로 과거에 "존재했었던", 즉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어머니의 상실감을 상기해 주는 것으로도 이해했습니다.1) 어느 쪽이든 사진은 우리의 기억을 자극합니다.

지난달, 필자는 빅퍼즐문화연구소와 함께 '사진과 기억: 사진으로 읽는 세월호'라는 제목으로 사진과 기억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유가족분들에게는 너무도 지독한 상실과 고통의 기억입니다. 그날의 사진들을 마주하는 것이 사실 그분들께는 그날의 아픔을 들추어내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수많은 사진이 당시 사건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유가족들에게 그날의 사진이란 부인할 수 없는 상실의 증거입니다. 그들에게 그날의 고통은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는 상처와 같습니다. 그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채로 가족들 뇌리에, 가슴에, 온몸에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마치 변하지 않는 사진 속 기억처럼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진은 우리 기억을 강화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고통스런 과거 기억을 잊지 못하게 하는 단점도 있습니다.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온라인 미디어에서는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에 대한 논의가 한창입니다. 사람들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거나 잊힐 수 있지만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모든 것이 기록되고 저장되기에 쉽게 잊힐 수 없다는 사실을 비판하면서, 개인이 원하면 잊혀질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디지털 미디어 사회에서 '망각'은 인권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기에 과거의 고통에 매이지 않고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와 같은 끔찍한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아 우리를 현재가 아닌 과거에 매여 살아가게 합니다. 기억과 망각 사이에는 철학적·윤리적·신학적 난제들이 존재합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이자 미국의 저명한 작가이며 교수인 엘리 위젤(Ellie Wiesel)은 "구원은 오직 기억 속에서만 발견된다"고 말했습니다.2) 그는 평생 홀로코스트를 세상에 알리고 기억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했습니다. 그에게 기억은 구원의 길이었고 과정이었습니다. 반면, 미로슬라브 볼프는 <기억의 종말> 에서 망각의 중요성을 주장합니다.3) 볼프는 위젤의 말을 역으로 적용하여 구원을 고통스런 기억으로부터의 자유/해방으로 이해하고, 망각이야말로 온전한 기억의 완성이라고 보았습니다.

볼프의 주장은 위젤의 기억 강조를 기독교적 관점과 피해자 중심 관점으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그는 기억해야 하는 당위보다 어떻게 기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그는 '바르게 기억하기'(remembering rightly)의 실천 과제로 세 가지 제안을 합니다. 첫째 진실하고 정의로운 기억, 둘째 타자를 해치지 않으면서 피해자를 치유하기 위한 기억, 그리고 셋째 화해를 추구하는 기억입니다.

이 세 가지 제안은 한국 사회가 품은 여러 고통과 갈등의 역사들을 풀어가는 훌륭한 지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교회가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진실과 화해를 위해 기억을 실천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사진은 이 세 가지 기억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역시나 상반된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사진은 진실을 드러내기도 하고 왜곡하기도 합니다. 사진은 치유를 돕기도 하지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화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필자가 빅퍼즐문화아카데미 강좌를 통해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요약하면, 사진을 보지 말고 읽으라는 것입니다. 즉 사진을 수동적으로 보고 단순하게 믿기보다 적극적이고 비평적으로 해석하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필자는 지난 모임에서 세월호를 상징하는 대형 리본 조형물 함께 찍힌 팽목항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참가자 중 대부분이 그곳이 팽목항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중 실제로 팽목항에 가 본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만, 그럼에도 모두가 그 사진 속 장소가 팽목항임을 알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바로 미디어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기억하는 많은 사건들은 우리가 직접적으로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갖게 된 2차 기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기억에 주체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역사에도 '기억된 역사'와 '선택된 트라우마'가 존재하듯, 배제된 기억의 단면들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사진은 이 소통의 가장 훌륭한 전달자인 반면, 보고 싶은 것만 보도록 하는 눈가리개 역할도 합니다. 미디어가 보여 주는 것만으로는 진짜 세상을 보고 느끼고 기억할 수 없다는 사실도 함께 알아야 합니다. 미쉘 푸코가 말하듯, 사진은 일반적이고 통제 가능한 '대중 기억'을 형성하는 도구로 사용되기 쉽습니다. 반대로 적극적인 해석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사진이 보여 주는 대중의 기억에 '저항하는 기억'의 공간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혹시 세월호 '이전의' 팽목항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불행히도, 인터넷 세상에서는 세월호 이전의 팽목항 사진은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팽목항에 관한 치유와 화해의 기억은 어쩌면 '세월호 이전의 팽목항'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는 이유입니다.

다가오는 5월 16일에는 '진실의 기억'과 관련한 또 다른 만남을 준비 중입니다. 이번에는 광주 항쟁의 기억을 다룰 예정입니다. 특별히 '사진은 어떻게 진실을 드러내는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 볼 계획입니다. 짧은 지면으로 못 다한 말들을 이날 모임에서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김상덕 / 보스턴대학교와 에모리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영국 에든버러대학교에서 기독교윤리와 실천신학 박사과정을 졸업할 예정이다. '평화를 위한 사진의 역할에 관한 비평적 고찰: 광주 항쟁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썼다. 평화학, 미디어, 공공신학 등을 넘나들고 있으며, 사진 매체를 중심으로 갈등의 역사를 해독하는 일과 평화를 위한 해석 공동체로서의 교회 역할에 관심이 있다.

각주

1) 롤랑 바르트, 김웅권 옮김, 『밝은 방』, 동문선, 2006.
2) Ellie Wiesel, From the Kingdom of Memory: Reminiscences (Summit Books, 1990), 201.
3) 미로슬라브 볼프, 홍종락 옮김, 『기억의 종말』, IVP,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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