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하민지 기자] 청소년 시절, 주일에는 대중가요를 들을 수 없었다. 주일에 '세상 음악'을 들어서는 안 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영화나 책도 선정적 장면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골라 봤다. 교회에서 선하다고 하는 것들만 제한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에 대중문화를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한 목사는 '드럼'을 한국교회 오적五賊 중 하나로 지목하기도 했다. 예배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라 악기 소리가 된다는 이유였다. 새로운 시도는 배척된다. DJ진호는 댄스 뮤직 형태의 예배, '디제잉 워십'을 진행했다가 숱한 비판을 받았다.

2012년 설립된 빅퍼즐문화연구소(빅퍼즐·강도영 소장)는 문화를 대하는 기존 교회의 방식에 문제 제기하며, 기독교적 대안 문화를 만들어 왔다. 음악·영화·책에 대한 다양한 강연을 열어, 기독교인이 대중문화에서 기독교적 코드를 발견하고 교회 내 문화로 세상과 소통하는 실험을 해 오고 있다.

윤영훈 교수는 2012년 빅퍼즐문화연구소를 설립했다. 뉴스앤조이 하민지

빅퍼즐 설립자 윤영훈 교수(성결대)가 이제 소장직에서 물러난다. 빅퍼즐에서 영화 클럽(모임)을 담당하던 강도영 씨가 배턴을 이어받는다. 세대교체와 더불어 빅퍼즐 시즌2를 시작하며, 그간 해 왔던 문화 사역에도 변화를 줄 예정이다.

빅퍼즐에서 3월부터 진행하는 인문학 클럽 강사들이 격주 간격으로 <뉴스앤조이>에 기독 인문학 칼럼을 연재한다. 이원석 작가, 한선미 간사(IVF)를 비롯한 6명이 기독교적 관점에서 독서, 미술, 육아, 영화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계획이다.

빅퍼즐의 지난 활동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듣기 위해 2월 7일, 서울시 마포구 빅퍼즐 사무실에서 윤영훈 교수와 강도영 소장을 만났다. 두 사람과의 대화를 정리했다.

- 2012년 빅퍼즐을 설립했다.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해 왔는가.

윤영훈 / 동시대 문화를 기독교적으로 이해하려면, 교회 바깥에서 문화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는 문화를 사역의 소모품처럼 여겨 왔다. 교회 밖에서 소통하되, 기독 청년들이 무분별하게 문화를 수용하지 않고 비평할 수 있는 힘을 길렀으면 해서 빅퍼즐을 시작했다. 공동체로 모여 수업을 듣고 교제할 수 있는 아카데미, 이야기와 음악이 함께하는 공연, 음악과 영화로 소통하는 월간 클럽, 이 세 가지 활동에 주력해 왔다.

일하다 보니 '공간이 일을 한다'는 것을 느꼈다. 홍대에 있는 빅퍼즐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대중음악 전문 웹진 <이즘>, '영상문화연구소 필름포스', 기독연구원느헤미야, 개척교회나 사회운동가 등 다양한 그룹이 공간을 함께 쓴다. 공간을 빌려준다는 것이 어느새 중요한 사역이 됐다. 빅퍼즐을 중심으로 여러 네트워킹이 형성된 것이다.

강도영 / 이곳 홍대는 자발적 청년 문화의 탄생지이며, 청년 하위문화의 핵심 장소다. 다양한 실험이 가능하다. 빅퍼즐이 해 온 문화 운동도 홍대였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빅퍼즐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빼곡하게 꽂혀 있는 CD와 DVD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뉴스앤조이 하민지

- 빅퍼즐과 같은 '기독교 문화 운동'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윤영훈 / 종교는 전도유망한 인문의 영역이자, 다양한 문화의 근원이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 기독교 문화는 교회 속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다. CCM도 신학적 기반에 기초해 수용된 게 아니라, '이거 해야 청년들이 온다'며 효율적 목회를 위해 수용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독교 정체성을 뿌리로 두고 있으면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의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혜민 스님이나 법정 스님 책은 비기독교인도 많이 보지만, 목사들 책은 대부분 기독교인만 본다. 기독교인이 향유하는 문화가 교회에만 매몰돼 있기 때문이다.

나는 기독교적으로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길을 알려 주고 싶다. 비기독교인과의 소통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기독교인 비기독교인 가리지 않고 청년들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결혼이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기독교인의 결혼관'으로만 몰아간다. 기독교 정체성을 가지되, 비기독교인과도 소통할 수 있는 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

문화 사역을 통해 구원으로 가는 작은 공동체를 많이 만드는 것이 강도영 소장의 꿈이다. 뉴스앤조이 하민지

- 이제 리더십이 교체된다. 강도영 소장은 앞으로 빅퍼즐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 생각인가.

강도영 / 2015년 8월부터 빅퍼즐 월간 클럽에서 영화 모임을 맡아 진행해 왔다. 그동안 클럽을 담당하며 '꼭 영화·음악·책에 국한되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문화는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문화를 받아들이는 행위는 각 분야에서 어떤 방식의 삶을 살 것인지 선택하는 것이다. 그래서 빅퍼즐이 다루는 문화의 외연을 더 넓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클럽이 3개에서 7개로 늘어난다. 김효주 리디아R&C 전략기획팀장의, 경영서를 읽으며 직장에서 '나'의 의미를 찾는 법을 가르치는 클럽이 개설된다. 기존 교회의 경영서 읽기는 세상의 독서 모임과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청년이 힘든 건 결국 준비가 안 돼서다. 잘 준비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힘들지 않을 수 있다"며 고지론을 지향하는 방식으로 가르치고 있다. 김 팀장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지고 어떻게 삶의 일터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를 이야기할 것이다.

명지대·장신대에서 기독교와 문화를 가르치는 이민형 목사는 기독교 건축·성화 등 고전 이미지의 아름다움을 살펴보는 법을 가르칠 예정이다. '기독교 문화'라고 하면 대중문화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CCM도 팝만 떠올린다. 이 클럽에서는 고전 기독교 문화의 아름다움을 현대에서 바라보는 법을 알 수 있다.

그동안 빅퍼즐이 진행해 온 강연 포스터. 뉴스앤조이 하민지

한선미 IVF 간사가 '엄마의 서재'라는 이름으로 아이와 함께하는 독서법을 강연한다. 젊은 엄마들을 위한 클럽이다. 아이들이 등·하원하는 시간에 강연을 들을 수 있도록 시간대도 조정했다. 영상 제작 강사 유지은 씨가 영화와 사진을 통한 심리 테라피를, <공부하는 그리스도인>(두란노)을 쓴 이원석 작가가 기독교 고전을 읽는 법을 강의할 것이다. <3650일 하드코어 세계 일주> 저자 고은초 씨는 '일단 쓰기: 글쓰기의 두려움을 넘어' 클럽을 연다.

대중음악 전문 웹진 <이즘> 편집장 정민재 음악평론가가 21세기 '우리 시대' 명반을 찾는 클럽을 열 예정이다. 기존에 '명반'이라고 불리던 것들은 1960~1980년대 음악이다. 비틀스, 마이클 잭슨에 멈춰 있다. 그때가 '레전드'라고 하지만, 젊은이들의 레전드는 따로 있을 수 있다. 정 평론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좋은 음악을 찾는 작업을 할 것이다.

이런 문화 사역을 통해 평론가·작가·대중이 자기 이야기를 건강하게 하는, 좋은 담론들을 만들고 싶다. 하나님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함께 다채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을 만들려고 한다.

빅퍼즐 인문학 클럽 강연자들이 <뉴스앤조이>에 격주 간격으로 기독 인문학 칼럼을 연재한다. 연재 일정과 주제는 아래와 같다.

2월 24일 / 직장에서 나의 의미 찾기(김효주)
3월 10일 / 기독교 문화 여행: 흐릿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기독교 이미지를 찾아(이민형)
3월 24일 / 21세기를 준비하는 기독교 고전 읽기(이원석)
4월 7일 / 한 걸음 더 들어간 영화 이야기: 영화와 사진을 통한 나 돌아보기(유지은)
4월 21일 / 한국교회에서 문화 사역하기(강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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