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에 '#MeToo, #WithYou'가 울려 퍼졌다. 뉴스앤조이 하민지

[뉴스앤조이-하민지 기자] 세계여성의날(3월 8일)을 나흘 앞둔 3월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국 여성 대회'가 열렸다. 한국여성대회조직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여성단체연합(공동대표 백미순·김영순·최은순)이 주관한 이날 집회에는 비가 오는 날씨에도 3000여 명이 참석해 광장을 가득 메웠다. 참가자들은 #Metoo #WithYou가 적힌 피켓을 흔들며 미투 운동에 지지를 보냈다.

"초4 때 담임이 성추행"
"진보 정당 남성들, 여성 외모 비하"
"동료 성추행 고발 돕다 꽃뱀 낙인"
각계각층 발언 쏟아져

시민이 발언하는 '샤우팅' 시간에는 청소년부터 20년 경력 교수와 경찰 등 여러 계층 여성이 무대에 올라 자신이 당한 성폭력을 이야기하며 미투 운동에 동참했다. 

고등학생 이은선 씨는 초등학생 4학년 때 담임교사에게 당한 성추행 사실을 이야기하며, 청소년에게 참정권을 달라고 했다. "단순히 투표하고 싶어서 참정권을 달라는 게 아니다. 내 권리를 찾기 위해서다. 학교 내 성폭력을 근절하려면 교사와 학생 간 권력관계를 봐야 한다. 참정권을 가지고 이에 대해 문제 제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청년활동가 이아란 씨는 진보 정당의 무딘 성평등 의식을 고발했다. 그는 "현재 진보 정당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 정당에서 여성의 외모를 비하하고 평가하는 일이 있었다. 명백한 여성 혐오다. 이를 공론화했지만 묵살당했다. 이 정당이 말하는 민중에 여성은 없었다"고 했다.

박한희 변호사는 "트랜스젠더에게 좋은 것이 여성에게도 좋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하민지

김해경찰서에서 후배가 당한 성폭력 고발을 돕다 '꽃뱀 경찰'로 몰린 임경희 씨와 동료 교수에게 당한 성희롱을 폭로했다가 해직된 남정숙 전 성균관대 교수는 잘못된 조직 문화를 공통적으로 언급했다. 이들은 상위 계급 남성이 하위 계급 여성에게 쉽게 성폭력을 가할 수 있고, 남성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채 피해 여성만 유난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문화를 규탄했다.

트랜스젠더 박한희 변호사도 발언대에 올랐다. 그는 "'양성평등'이라는 용어는 성소수자를 배제한다. 성소수자와 여성 모두 춤출 수 있는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했다. 전 남자 친구에게 디지털 성폭력을 당한 익명의 참가자는 "참다 못해 피해 사실을 폭로했더니 가해자가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하겠다고 한다. 법을 바꿔 달라.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없게 하는 법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축사
"미투 운동 방향 명확, 성평등 실현"
참가자들 "축사보다 구체적 변화 원해"
추미애·박원순·심상정·정현백 등 참석

추미애 의원. 뉴스앤조이 하민지
왼쪽부터 남인순·이정미·심상정·노회찬·진선미 의원. 뉴스앤조이 하민지

이날 집회에는 추미애·남인순·진선미 의원(더불어민주당), 이정미·심상정·노회찬 의원(정의당), 박원순 서울시장, 정현백 장관(여성가족부) 등이 참석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축사를 보냈다.

정현백 장관이 기념식 순서에서 문 대통령이 보낸 축사를 대독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여성의 날이 법정 기념일로 지정되고 현재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한국 사회는 중요한 변화 한가운데에 놓였다. 대한민국에서 미투 운동의 방향은 명확하다. 성평등을 실현하는 것이다. 성평등이 모든 평등의 시작이다. 민주주의나 경제 발전도 성평등 위에서 가능하다. 촛불 시민의 한 사람이자 대통령으로서 미투 운동이 불러온 변화에 사명감을 느낀다. 정부는 젠더 폭력에 단호하게 대응하고 법과 제도를 개선할 것이다"고 했다.

왼쪽부터 남은주 대구여성회 상임대표, 권해효 한국여성단체연합 홍보대사. 뉴스앤조이 하민지

기념식 사회자 남은주 대구여성회 상임대표는 "우리는 축사가 아니라 구체적 변화를 원한다"고 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남은주 대표 말에 환호했다. 다른 사회자 권해효 홍보대사(한국여성단체연합)도 기념식에 참석한 국회의원들을 향해 "뭘 해야 할지 잘 들으셔야 한다"고 말해 참가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남인순 의원은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정치권력을 바꾸자고 말했다. 남 의원은 "권력형 성폭력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권력이 바뀌어야 한다. 더 많은 여성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일어난 미투 운동을 보면서 서울시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성평등 민주주의로 우리 삶이 바뀌고 여성이 어느 곳에서도 차별받지 않도록 서울시가 노력하겠다"고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뉴스앤조이 하민지

이날 집회는 오후 12시에 시작해 5시 무렵 마무리됐다. 시민 발언이 끝난 후 참가자들은 1시간 30분가량 종로 일대를 행진했다.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온 뒤 이어진 기념식에서는 페미니스트 최현희 교사, 문단 내 성폭력을 공론화한 '탈선' 등 성평등에 기여한 단체 5곳과 여성운동에 기여한 르노삼성자동차 내 성희롱 고발자가 상을 받았다. 혐오 콘텐츠를 방조한 아프리카TV, 여성을 뽑지 않으려고 면접 순위를 조작한 한국가스안전공사 등 5곳이 '성평등 걸림돌'에 선정됐다.

집회 참가자들은 다양한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나는 너였다. 우리는 함께한다"는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음악에 맞춰 춤추는 등 밝은 분위기였다. 뉴스앤조이 하민지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