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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preter's Progress 혹은 해석자의 순례를 위한 지침서
[서평] 앤터니 티슬턴 <두 지평>(IVP)
  • 김진혁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7.10.2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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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그리스도인과 성서

"지저분한 옷을 입은 남자가 자기 집을 외면한 채 서 있었다. 손에는 책 한 권을 들고 등에는 무거운 짐을 짊어졌다. 사나이는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 가만히 보니, 눈물을 쏟으며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나중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는 듯 큰소리쳤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1)

17세기에 쓰인 그리스도교 고전,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의 꽤 유명한 도입부다. 버니언이 인상적으로 보여 주듯, 성서는 인간에게 삶의 방향을 틀기를, 옛 삶에서 벗어나 새 삶의 길로 접어들기를 요구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그 책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믿을 수 있냐고. 그런 질문을 듣고 순례자 크리스천은 대뜸 다음과 같이 답한다. "두말하면 잔소리죠. 거짓말할 줄 모르는 분이 들려 주신 말씀이거든요."2)

이제껏 한국교회 일반, 혹은 복음주의 신학계에서 논의됐던 성서론은 주로 '성서의 권위' 문제와 연관되었다. 하지만 <천로역정>에서 나오듯 하나님 말씀으로서 성서는 안락한 삶을 떠나 진리를 향하는 구도의 길을 떠나도록 요청하는 책이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인은 성서의 권위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성서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존재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에게 편안하고 익숙한 성서 해석을 끊임없이 넘어서고 성서 본문의 의미에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며 살아가는 순례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80년에 영국에서 처음 출판됐던 앤터니 티슬턴(Anthony Thiselton, 1932~)의 <두 지평: 성경 해석과 철학적 해석학>(IVP)은 해석이라는 순례길에서 살짝 방황하던 많은 이에게 좋은 지침을 줬던 명저다. 한국어판 부제가 보여 주듯 티슬턴은 독일어 사용권에서 발전한 철학적 해석학이 신약성서 본문을 해석할 때 어떤 실제적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그 가능성과 한계를 꼼꼼하고 독창적으로 풀어 간다. 1990년에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던 작품이 2017년에 새로운 번역으로 다시 나왔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두 지평>에 대한 수요와 관심이 국내 독자들 사이에서 뜨겁지는 않을지라도 몹시도 끈질기게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혹자는 이 두껍고 난해하고 비싼 책을 접하고 이렇게 질문할지도 모르겠다. '해석학이라는 복잡하고 난해한 이론이 있어야 성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 오히려 성서는 성서로 풀어야 하고, 그 의미는 상식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 아니야?'

<두 지평 - 성경 해석과 철학적 해석학> / 앤터니 티슬턴 지음 / 박규태 옮김 / IVP 펴냄 / 758쪽 / 3만 5,000원. 사진 제공 IVP

성서와 해석

다시 <천로역정>으로 돌아가 보자. 크리스천은 성서가 생명을 주는 하나님 말씀임을 굳게 믿었음에도, 순례 중 환난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려움 속에 있던 크리스천은 선의(Good-will)라는 인물이 베푼 도움과 환대 덕분에 다시 길을 걸어갈 힘과 용기를 회복한다. 작별 인사를 하는 크리스천에게 선의는 '좁은 길'을 따라 걸어가면 '해석자(Interpreter)의 집'이 나오고, 그 대문을 두드리면 주인이 나와 놀라운 사실을 알려 줄 거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성서의 '해석' 및 그 해석을 통해 드러난 풍성하고 다채로운 '의미'와 밀접하게 결합해 있다는 17세기 청교도 글쟁이의 통찰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인간은 해석을 통해 자기 앞에 놓인 대상을 인식하고 의미를 찾아가는 존재다. 그렇기에 해석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의식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하지만,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이 '문을 두드려야' 해석자가 나와서 '놀라운 사실을 설명'해 줬듯, 해석에 대한 이론적 성찰과 실제 훈련은 눈앞의 세상을 이해하고 텍스트를 현실에 적용하는 데 경이로운 차이를 만들어 낸다. (비트겐슈타인 사상을 인용하며) 티슬턴이 말하듯, "우리가 늘 거기에 있어 볼 수 있는 것을 알아차리게 하는 시각을 열어"3) 주는 해석학은 결코 학자들만의 전유물이라 할 수 없다. 해석학은 단지 텍스트를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한정된 이론이 아니라, 우리 삶의 다원적 형태와 그 속에서 언어를 매개로 자아를 찾고 관계를 형성하는 인간의 이해 활동과 소통 행위를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기술(art)인 셈이다.

<두 지평>에서 티슬턴은 해석학의 과업을 한편으로는 근대 철학적 해석사의 발전 궤적을 역사, 언어, 신학과의 관계를 탐구하며 밝힌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해석학과 성서 해석의 만남과 협업 가능성을 하이데거, 불트만, 가다머,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드러내 보인다. 언뜻 보면 책장을 넘길 때마다 홍수처럼 밀려드는 사람 이름과 이론의 목록에 휘말려 정신이 아득하지만, 이 박학다식한 저자가 '두 지평'(two horizons)이라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논의를 풀어 가는 것을 추적해 보면 상당한 유익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티슬턴이 강조하는 지평이란 무엇일까. 글을 쓰는 사람이든 글을 읽는 사람이든 모두는 역사 속에서 부여받은 구체적인 문화·언어·공동체적 상황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마치 물고기가 물에 잠겨 있듯이, 우리도 우리에겐 투명하여 보이지 않는"4) 지평에 잠긴 셈이다. 따라서 해석은 언제나 텍스트의 지평과 해석자의 지평 사이의 긴장에서 일어난다. 그렇기에 해석은 따로 떨어져 있던 두 지평이 만나며 형성되는 창조적이고 변혁적인 사건이다.

물론 해석자는 자신이 속한 지평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두 지평 사이의 완전한 융합(fusion)이란 일어날 수 없다. 즉, 해석이란 시공간의 간격을 넘어 두 지평의 융합을 지향하면서도, 동시에 각 지평의 고유함을 존중하고 인식하는 행위이다. 해석에 대한 이러한 미묘한 접근은 수천 년 전 기록된 성서라는 고대 텍스트를 현대인이 어떻게 읽고 이해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중요한 통찰을 던져 주기에, 티슬턴은 철학적 해석학이 실제 성서 해석에 결코 무시하지 못할 소중한 이바지를 한다고 본다.

성서 해석과 철학적 해석학

<천로역정>의 주인공 크리스천은 해석자 덕분에 그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의미를 하나하나 깨닫게 된다. 해석자의 설명이 없었다면 그 심오하고 풍성한 영적 의미는 삶의 친숙함과 낯섦이라는 역설적 베일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크리스천은 새로운 방에 들어가며 "여기에는 무슨 의미가 들어 있습니까?"라고 먼저 질문할 정도가 되었다. 빠른 학습 속도를 자랑하던 크리스천은 전투 끝에 궁전에 들어가 금빛 옷을 입는 사내를 보고는 빙그레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뭘 의미하는지 알겠어요. 이제 가던 길을 계속 가야 할 때가 된 것 같군요."5) 그러자 해석자가 딱 잘라 말한다. "아직은 아닐세!"

인간은 책을 읽으며 단지 정보만을 습득하지는 않는다. 책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의미의 세계에 잠김으로써, 자아를 변혁하고 초월하는 가능성을 얻는다. 하지만 필요한 정보만 얻고 책을 덮어 버리는 인스턴트식 독서, 혹은 책에서 억지로 의미를 짜내 적용점을 찾아내려는 강박적 해석에 현대인은 위험할 정도로 익숙해져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 역시 이런 식으로 성서를 대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럴 때일수록 <천로역정>에서 빨리 길을 떠나려는 크리스천을 잡아 두던 해석자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일러둘 게 조금 더 있으니 다 듣고 나서 가도록 하게나."6) 조급증에 걸린 책 읽기 방식에서 벗어나, 우리 의식에 의미가 형성되고 각인되고 소통되는 방식을 느긋하지만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게 도움을 주는 도구가 바로 해석학이다.

실제 티슬턴은 자신의 성서 해석을 독자들에게 성급히 제시하지 않고, 해석학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이들의 흔적을 더듬어 따라가는 데 꽤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의 고민은 하이데거, 불트만, 가다머, 비트겐슈타인의 이론을 소개하고 그들의 공헌을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들 사상가가 신약성서를 해석하는 데 어떤 유익을 줄 수 있는지를 궁극적으로 질문한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다 보면 철학적 해석학이 어떻게 바울서신에서 몸과 영, 복음서에 등장하는 비유의 본성, 바울과 야고보의 상반된 믿음 이해 등을 새롭고 균형 있게 보게 해 주는지에 대한 독창적인 논의를 접하는 행운도 누린다. 특별히 티슬턴 본인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듯, 이 책은 오늘날 가장 널리 회자되는 철학자 중 한 명인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신약 해석과 연결시키려는 선구적 시도라는 점에서도 읽어 볼 가치가 충분하다.

성서 해석이라는 순례

티슬턴은 자신의 해석학적 입장을 여러 사상가와 대화를 통해 다져 가지만, 해석학과 성서 해석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주된 입장은 (책 제목이 암시하듯) 가다머의 '두 지평' 개념에 상당히 빚지고 있다. 가다머를 따라 티슬턴은 해석을 본질상 두 떨어진 지평, 저자의 지평과 독자의 지평의 만남과 융합이라고 본다. 하지만, 신약학자로서 그는 특별히 성서를 읽을 때는 본문의 지평에서 해석자의 지평을 떼어 놓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철학적 해석학도 각 지평의 고유성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런데 성서학자이자 사제로서 티슬턴이 볼 때, 하나님 말씀의 지평의 고유성과 우선성 확보는 성서 해석에서 필수 작업이다. 독자의 지평에 흡수되거나 환원될 수 없는 지평을 가지는 "성경은 오늘도 성경 해석자 자신의 지평을 바로잡고 재형성하고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말할 수 있으며 또한 말하고 있다."7) 성서 해석을 통해 해석자의 지평이 변혁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티슬턴의 입장은, 한편으로는 특정 신학적·역사적 해석을 절대시하는 교리주의적 태도를 경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성서마저 해석자의 기호나 이해관계에 따라 선별하거나 해체하려는 상대주의적 접근과도 차별성을 보여 준다.

물론 약 30년 전에 쓰인 이 책이 철학적 해석학과 성서 해석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과 결과에는 여러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철학적 해석학이 성서 해석에서 생기는 난제를 해결해 주었다고 하더라도, 그 성서 텍스트가 품고 있는 신학적·교리적·윤리적 문제까지 완전히 해소된 것도 아니다. 또한 티슬턴이 후속 작품에서도 인지하고 있듯,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다양한 신학적·철학적 해석학의 발전이 있었고, 성서 해석 역시 당시보다 훨씬 복잡한 지적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염두에 두면서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두 지평>은 철학적 해석학의 지평과 성서 해석의 지평 사이의 창조적 긴장을 시대에 앞서 화두로 만든 기념비적 저작이 틀림없다. 특별히 해석자 지평의 변혁 가능성에 대한 논의 덕분에, 해석이 자아의 독단적 선입견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인내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대화의 과정임을 깨닫게 된 것은 이 책을 통해 얻은 큰 소득 중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성서 해석이라는 순례를 가는 이들이 꼭 한번쯤은 읽으면 좋을 고전적 위치에 오를 법한 지침서이자 안내서라 할 수 있다.

물론 텍스트 자체가 아니라 해석에 관한 '이론'을 공부하기는 쉽지 않고 많은 수고를 요구한다. 모든 어려움과 인내에 보상이 뒤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두 지평>이 안겨 줄 유익은 출판 이후 오랜 기간 이 책이 얼마나 높은 평가를 받고 널리 읽히고 있는지가 간접적으로 보장해 준다. 그래서인지 <두 지평>을 꼼꼼히 읽은 독자라면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이 해석자의 집을 떠나며 남긴 훈훈한 작별 인사 비슷한 감상평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 본다.

"크리스천도 작별 인사를 했다. '[해석자의 집에서] 희한하고도 유익한 일, 유쾌하면서도 두려운 일, 안정감과 지혜를 주어서 주어진 과제를 잘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두루 보았습니다.…선한 해석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러곤 다시 먼 길을 떠났다."8)

김진혁 /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신학 공부>(예책) 저자

각주

1) 존 버니언, 『천로역정』, C. J. 로빅 편집·최종훈 옮김(서울: 포이에마, 2011), 25. 강조는 필자의 것.
2) 버니언, 『천로역정』, 34.
3) 앤터니 티슬턴, 『두 지평: 성경 해석과 철학적 해석학』, 박규태 옮김(서울: IVP, 2017), 580. 강조는 필자의 것.
4) 티슬턴, 『두 지평』, 471.
5) 버니언, 『천로역정』, 71.
6) 버니언, 『천로역정』, 71.
7) 티슬턴, 『두 지평』, 23. 강조는 필자의 것.
8) 버니언, 『천로역정』,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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