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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보편 교회란 무엇인가
[서평] 헤르만 바빙크 <교회의 분열에 맞서>(도서출판100)
  • 크리스찬북뉴스 (cbooknews@cbooknews.com)
  • 승인 2017.07.03 17:22

<교회의 분열에 맞서 - 기독교와 교회의 보편성에 대하여> / 헤르만 바빙크 지음 / 이혜경 옮김 / 도서출판100 / 80쪽 / 3,500원

교회에 대해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최초의 교회는 하나였을까'. 이런 생뚱맞은 질문은 오늘날 교회가 너무나 개교회 중심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사실 이러한 개교회 중심의 근본 뿌리에는, 불편하지만 '담임목사'라는 사람이 있다. 꼭 들어맞는 비교는 아니지만, 로마 가톨릭이 '교황'을 중심으로 운영되듯이, 오늘날 각 교회는 '담임목사' 중심이 되어 버린 듯하다.

이것은 교황 무오설을 주장하는 로마 가톨릭에서 교황이 성경을 해석하면, 그 해석이 무오한 것처럼 되듯이, 오늘날 개신교회 일부에서는 오직 담임목사의 입을 통해 나오는 성경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담임목사 중심으로 성경 공부를 하고, 교회 밖에서 성경 공부를 할 수 없게 만들고, 자신들이 이야기하는 성경 해석만 '무오'한 것처럼 강제로 인식시키고 있다(물론 이단이 활개치는 것을 우려해서 그런 경우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오늘날 교회에서 교리적으로 주장하지 않지만 실제적으로는 담임목사의 성경 해석이 소속 교인에게 '절대적' 권위를 지닌다. 여기 반하는 해석은 그 교회에 대한 '도전'으로 몰릴 수 있다. 본서 저자가 말하듯 이 현상은 교회의 분리와 성도 간 교제 단절을 야기하고 있다. 물론 노회나 총회의 활동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실 이 활동은 성도 간 복음적 교제보다는 행정적이거나 정치적인 것에 집중되어 있다.

보편 교회

저자가 말하는 보편적 교회는 무엇인가. 교회 가르침과 그리스도교 사상이 종교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일반 사회생활 전반에까지 영향을 주고 적용되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래서 본서 1장에서는 교부들의 보편 교회 개념을 인용하며 '율법과 이스라엘' 시대에는 종교와 삶이 일치를 이루었고, 이 두 가지를 분리할 수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신정 체제가 미래에 도래할 하나님나라의 전형이라고까지 언급한다(부분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중세의 크리스텐덤의 오작동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으며, 현재 기독당 같은 현상을 통해 다시 제국주의적 그리스도교로 흘러갈 우려에 대해 신중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예언이 이스라엘 민족 안에만 국한되지 않고, 타 민족과 타 국가에까지 범위가 미친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러나 신정 체제 같은 보편 교회가 하나의 조직적·행정적·지역적 개념은 아니라고 말한다(19쪽). 보편 교회의 핵심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 이스라엘과 유대는 민족주의로 전락해 버렸다.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과 국가를 위한 '제사장의 나라'가 되어야 했지만, 하나님 중심의 신정 체제가 '선민사상'으로 기울어져 타 민족과 국가에 대해 사랑을 실천하는 제사장 역할이 아니라 자기 사랑에 빠진 배타적 집단, 극단적 나르시스트 집단이 되어 버렸다(지금 한국교회 상황도 유사하다).

예수님은 골고다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 집단뿐 아니라 만유를 향하여 손을 내미셨다. 또한 바울은 배타적 유대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이방 선교에 앞장서서 그리스도교가 배타주의를 극복하고 보편 교회로 나아가게끔 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교회의 조직적 결속은 약화되었지만, 교회 사이에는 확실한 유대가 존재하였고, 인격적 결속은 사도성을 통해 모든 교회에 존재하였다(20쪽). 그리고 1세기 교회 가운데 일어난 파당·분열·분쟁 등의 문제와 이단들 출현에 대한 권징은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일로, 보편성을 더하는 것이었다(24페이지).

피해야 할 분리주의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형식적으로는 로마 국가 전체에 보편적 교회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은 모든 것을 정결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그리스도교 원리의 보편성을 자연으로부터의 초월로 여기면서 자연적인 것으로부터 초자연적인 것을 분리하는 이원론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교권과 교황의 권위를 세속적 권위와 황제권 위에 두면서 서로 상호 간 충돌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면서 로마 가톨릭은 "모든 것이 교회 안에 있다"라고 공포하였는데, 실제 내용은 세속적인 영역으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로마교회는 종교(자연으로부터 초월)적인 것에 집중하면서, 세속(자연적인 것)적인 것과 분리된 이원론적 사상과 신학을 선택한 것이었다(자신들만의 권력을 갖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세상적(비종교적)인 것으로부터의 초월이 아니다. 죄와 불경건으로부터의 초월도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오히려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죄와 불경건을 초래하는 그 문제를 향하여는, 내재적으로 들어가 그것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칼뱅은 모든 존재를 복음의 대상으로 보았고, 세속 사회 또한 그리스도교 원리의 지배 아래 놓인다. 교회의 보편성은 단 하나의 종교적 집단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양한 교단과 교회들이 존재하지만, 그리스도의 진리를 이 땅 가운데 실현하기 위한 연합된 모습이 바로 보편적 교회다.

한국교회는 개교회 중심적이고, 개교회 성장주의(자기중심적 분리주의)에 치우쳐 있으며, 세속과 종교의 이원적 분리관을 가지고 있다. 한국교회에는 이렇듯 교회 존재 목적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근본부터 다시 출발하게 하는 요소가 남아 있다.

세상을 사랑하라

성경과 교회사를 비교해 살펴보면, 일치점과 차이점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극복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는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반복해서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가 즐겨 암송하는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도 그 핵심을 압축, 요약하고 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나오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명제는 여전히 성도와 교회 안에서 오해와 외면을 받고 있다. 아직도 영혼과 세상을 분리하는 영지주의적 잔재가 교회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복음이 아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교회에는 또 다른 분리주의적이고 배타적인 율법주의와 선민사상이 남아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것은 선민사상이 아닌 소명 사상이다.

그리스도교의 보편적 교회가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결국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의 교회만 사랑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타인과 세상을 사랑하지 않았고, 그들을 이분법적으로 배격하여 바라보았으며, 내세적 천국만 원했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제자 됨과 교회의 책임을 간과했다. 세상으로 들어가 복음의 빛을 비추기보다는(어둠 속으로 들어가 어둠을 밝히기 위해 싸우기보다는) 세상을 멀리하고, 스스로의 정결만을 추구했으며, 자기만족만 구하는 잘못된 경건주의(종교 안으로 회피) 방식으로 일관했다.

본서는 얇지만 엄청난 에너지를 압축하여 담고 있다. 제왕적 목회를 원하거나, 무사안일만 추구하는 목회와 자기중심적 신앙생활을 원하는 자에게 금서(禁書)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이 있음을 각인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여 당당히 주님 앞에 서고자 하는 이들에게 분명한 도전과 확신의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 줄 것이다.

오늘날 모든 시민을 교회로 인도하자는 성시화 운동이 있다. 이 운동의 취지는 분명히 존중하지만, 정말 보편적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고민한다면, 본서를 반드시 옆에 두고 성시화 운동을 진행할 것을 당부드린다.

헤르만 바빙크에 대하여

저자 헤르만 바빙크는 네덜란드 호헤베인에서 분리 측 기독개혁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님의 권유로 분리 측 교단 신학교인 캄펀신학교에 입학하였다가, 다시 현대신학 중심지였던 레이든대학교에 등록하여, '슐라이어마허가 성경 해석에 미친 영향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라는 주제로 석사 시험을 통과하였고, '츠빙글리의 윤리학'이라는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바빙크는 자유대학교 교수로 초청을 받아 수락하였다가 다시 철회하고 프라네커에 있는 기독개혁교회 목사로 약 1년 반을 섬겼다. 그러다 총회의 결정으로 교단 신학교인 캄펀신학교 교수로 임명되었고 1883년부터 1902년까지 19년간 교의학·윤리학·철학 등을 가르쳤다. 그 후 자유대학교에서 1902년부터 1921년까지 19년간 교의학 교수로 지내며, 연구·교육·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바빙크의 신학은 방대하고 포용력이 있었다. 특히 바빙크는 기독교와 교회의 보편성을 추구한 신학자였다. 그러한 바빙크의 신학은 교회 일치에 대한 노력으로도 나타났다. 1892년 분리 측 기독개혁교회와 애통 측 네덜란드개혁교회 합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캄펀신학교와 자유대학교 통합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두 학교의 통합은 성사되지 못하였다.

바빙크는 우리나라 신학에도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오랫동안 우리나라 신학교에서 교의학 교과서처럼 사용된 벌코프의 <조직신학>(크리스천다이제스트)은 바빙크 <개혁교의학>(부흥과개혁사) 축약본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주요 저작으로는 <개혁교의학 1~4>(부흥과개혁사), <개혁파 교의학>(새물결플러스, 앞선 책 축약본), <하나님의 큰일>(CLC) 등이 있으며, 우리말로 나온 바빙크에 대한 평전으로는 론 글리슨의 <헤르만 바빙크 평전>(부흥과개혁사), 유해무의 <헤르만 바빙크 : 보편성을 추구한 신학자>(살림)가 있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강도헌 / <크리스찬북뉴스> 운영자, 제자삼는교회 담임목사, 프쉬케치유상담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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