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가 웬 맛집 소개?'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정직하게 음식을 만들고, 적정한 가격에 파는 가게들을 꾸준히 소개할 계획입니다. 프랜차이즈 물결이 거리마다 넘실대는 현실에서, 힘겹지만 묵묵히 살아가는 이 시대 소시민이 운영하는 정직한 가게. 강렬한 첫인상은 주지 못하더라도 돌아서면 생각나는 그런 숨은 맛집을 찾아 독자님들에게 소개하겠습니다. 제보도 환영합니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빵. 한 음절 단어지만 두 음절 세 음절 단어보다 이 얼마나 배불러지는 말인가. 빵이 흔하지 않던 어린 시절,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아버지가 사 오시던 나비 모양 파이를 그렇게 기다렸다. 퇴근하시면서 들고 오시는 빵 봉투를 받아 얇은 파이 피 하나하나를 벗겨 먹으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빵은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밥 대신 잠을 선택하던 학창 시절, 식빵 한 조각을 먹고 등교했고, 20대 이후로는 프랜차이즈 빵집의 공습으로 손쉽게 빵을 사 먹었다. 끼니 대신 빵. 대부분 크림이 들어간 달콤한 빵이나 치즈가 들어간 부드럽고 폭신한 빵을 먹곤 했다.

빵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은 프랑스에 살면서부터다. 새벽 2시부터 반죽해서 아침 6시면 갓 구운 빵을 내놓는 그네들 문화 속에서, 빵순이였던 나는 큰 기쁨을 맛봤다. 겹겹이 버터가 스민 고소한 크루아상, 초콜릿이 두 줄기 들어간 오쇼콜라, 시큼한 향이 나는 갓 구운 바게트.

▲ 빵을 주메뉴로 한 상 제대로 차렸다. 진수성찬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우리밀로 만든 빵이 맛있어 봐야…

한국에 돌아와서도 맛있는 빵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작은 빵집을 발견했다. 이런. 여기도 이름이 꽤 길다. '우리밀빵꿈터 건강담은'(건강담은). 경기도 안양시 4호선 범계역 근처 작은 골목길에 있다. 유명 빵집이 있는 곳이라 주변에 카페도 흔하고 유동 인구도 많은 곳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오전 11시 30분, 빵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니 구수한 빵 굽는 냄새가 가게를 가득 채웠다. 가게 앞쪽 진열장에는 막 오븐에서 나온 20여 종의 빵이 저마다 고유한 향을 뿜어내고 있다. 갓 구운 빵 냄새는 언제 맡아도 나쁘지 않다.

▲ 안양에 있는 '우리밀빵꿈터 건강담은'을 찾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건강담은에 있는 빵은 우리밀로 만들었다. 수입밀보다 우리밀이 소화가 잘 되고 몸에도 좋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밀은 글루텐 성분이 적어 잘 부풀지 않는다. 쫄깃하지도 않다. 우리밀로 빵을 잘못 만들었을 때 떡과 같은 식감이 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제빵사로서 최상의 재료를 쓰고 싶은 건 당연할 터. 애초에 핸디캡이 있는 재료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건강담은 주인장 이학진 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프랑스 밀 참 좋죠. 맛있는 빵을 위해 최적으로 개량된 종이니까요. 하지만 그 밀가루가 배에 들어가는 순간, 제 아무리 유기농 밀가루라 하더라도 유기농이 아닌 것으로 둔갑합니다. 프랑스서 여기까지 오면서 방부제를 안 넣을 수 없으니까요."

▲ '우리밀빵꿈터 건강담은' 주인장 이학진 씨는 우리밀로 빵을 만든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저마다 자기를 집어 달라고 아우성치는 빵 중에서 막걸리통밀하루견과를 골랐다. 따끈한 빵을 떼어 입에 넣었다. 고소하다, 고소해. 호두, 아몬드, 해바라기 씨, 캐슈너트, 헤이즐넛 등이 촘촘히 박혀 있다. 씹으면 씹을수록 통밀과 견과류가 합쳐져 한층 풍부해진 고소한 맛을 낸다.

밤콩밤콩. 이름도 귀엽다. 딱 보면 사실 손이 가게 생긴 빵은 아니다. 떡처럼 하얀 빵 가운데 밤이 툭툭 박혀 있다. 손으로 잡고 죽 뜯었다. 어랏, 이것도 맛있다. 안에 듬뿍 담긴 크림치즈와 밤이 어우러져 독특한 식감을 만들어 낸다. 푸석푸석하지 않고 쫄깃하다.

▲ 밤콩밤콩 안에는 크림치즈와 밤이 들어가 있다(사진 중간). 100% 호밀빵은 꿀에 찍어 먹으면 딱이다(사진 아래). ⓒ뉴스앤조이 이은혜

구석에서 별로 손길을 못 받고 있는 호밀빵을 먹어 보자. 호밀은 한국에서 자주 사용하는 식재료는 아니다. 생산되는 호밀 대부분이 사료로 쓰인다. 건강담은에서 해외에서 수입하는 재료로 만든 빵은 호밀빵이 유일하다. 100% 호밀빵은 생각보다 많이 뻑뻑하다는 느낌이다. 크게 한입 베어 물면 몇 번 씹기도 쉽지 않다. 조금 베어 물고 우물우물 소가 되새김질하듯 천천히 계속 씹는다.

꿀을 찍어 먹는 것도 호밀빵과 친해지는 방법 중 하나다. 온기가 가신 호밀빵을 후라이팬에 앞뒤로 바삭바삭하게 구운 다음, 꿀을 푸욱 찍어서 한입 베어 물었다. 이런, 생각보다 괜찮다.

▲ 자기제분통밀빵은 앉은뱅이밀을 갈아 만든다. 일반 밀로 만드는 빵과 다르다. 제분기로 만든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곳에서도 앉은뱅이밀을 만날 수 있다. 앉은뱅이밀은 제분 방법이 일반 밀과 다르다. 맷돌 방식으로 제분해야 해서 제분기가 따로 있다. 이 제분기로 진주에서 난 앉은뱅이밀을 갈아 자가제분통밀빵을 만든다. 하루에 맛볼 수 있는 자가제분통밀빵은 고작 3개 남짓. 할 수 있는 만큼 만든다는 게 이학진 씨 철학이다.

건강담은에서 만든 빵에는 기본적으로 버터·우유·계란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런 재료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방부제, 유화제, 색소 같은 화학물질은 넣지 않는다. 빵을 부풀리는 이스트도 일반 빵과 비교하면 극히 소량만 넣는다. 빵을 먹고 난 뒤에 따라오는 더부룩함이 없는 이유다.

이스트 없이 어떻게 빵을 부풀릴까. 방법이 있다. 주인장은 발효종을 따로 만든다. 남은 빵을 물에 불린 후 갈아서 빵 반죽할 때 넣는다. 그날그날 발효종의 상태가 다르고, 기후에 따라 빵 만드는 상황이 변하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 세세하게 신경 써서 조정한다.

▲ 발효종을 따로 만들면 이스트를 소량만 넣어도 빵을 부풀릴 수 있다. 남은 빵을 물에 불린 후 갈아서 반죽할 때 넣는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제 가게 문을 연 지 5개월. 이학진 씨가 인수하기 전 이 가게는 우리밀 단팥빵으로 유명한 집이었다. 이학진 씨는 사부에게 빵 만드는 법을 배워 가게를 인수했다. 본인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말한다. 자신도 아직 빵을 잘 모른다고 말하는 이 시기에 입소문을 타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고맙고 또 고맙다.

12시가 넘어가자 하나둘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보인다. 우리밀로 만든 빵, 건강한 빵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다. 아이 엄마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멀리서 차를 타고 찾아 온 손님도 있다. 주차 공간도 없는데, 가게 앞에 잠깐 차를 대고 들어와서 원하는 빵을 주저 없이 골라갔다.

하루에 만들어 내는 빵은 그렇게 많지 않다. 더 많이 만들어 더 큰 수익을 올릴 수도 있지만 이학진 씨는 아직까지 그럴 생각이 없다. 만들 수 있는 한도 안에서 열심히 빵을 만들고 그 빵이 여러 사람에게 가서 피가 되고 살이 되길 바라는 마음. 빵이 오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며 알아가는 일. 이학진 씨가 꿈꾸는 바다.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시민대로 136번길 15(택배 서비스: 010-5294-7867)
공식 블로그 바로 가기 / 주인장 페이스북 바로 가기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