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가 웬 맛집 소개?'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정직하게 음식을 만들고, 적정한 가격에 파는 가게들을 꾸준히 소개할 계획입니다. 프랜차이즈 물결이 거리마다 넘실대는 현실에서, 힘겹지만 묵묵히 살아가는 이 시대 소시민이 운영하는 정직한 가게. 강렬한 첫인상은 주지 못하더라도 돌아서면 생각나는 그런 숨은 맛집을 찾아 독자님들에게 소개하겠습니다. 제보도 환영합니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화창한 가을, 자전거 타고 훌쩍 떠나고 싶은 날씨. 잘 정비된 남한강변을 따라 달리다 보면 슬슬 배가 고파 온다. '남양주 맛집'으로 검색해 보자. 가게 이름과 음식 이미지가 줄줄이 뜬다. TV프로그램에 소개된 집, 줄 서서 먹었다는 집 등 온갖 훈장을 내건 식당들이 저마다 손짓한다.

남양주시 조안면 일대에는 TV에 소개된 유명한 식당이 많다. 강변을 따라 줄지어 늘어서 있는 식당. 메뉴도 다양하다. 만둣국을 전문적으로 하는 집, 칼국수를 만드는 집, 순두부집, 카페 등 한두 개가 아니다. 널찍한 주차장, 넉넉한 홀을 갖춘 식당들 틈에 이름도 외우기 힘든 작은 식당 하나가 있다.

'토종 우리 앉은뱅이밀로 만든 앉은뱅이밀국수집'. 자칫 가게를 지나칠 뻔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가게다. 앉은뱅이밀국수집은 그런 곳이다. 가게 이름도 뭔가 입에 착착 붙는 맛이 없다. '앉은뱅이밀'이라는 다소 생소한 단어가 아예 가게 이름이다. 겉만 보면 선뜻 문 열고 들어가기 쉽지 않은 곳이다.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위치한 '토종 우리 앉은뱅이밀로 만든 앉은뱅이밀국수집' 가게 앞이 주차장이라 차라도 세워져 있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앉은뱅이밀국수집은 이름 그대로 앉은뱅이밀을 주재료로 하는 식당이다. 앉은뱅이밀은 기원전 200년부터 우리 땅에서 자란 토종 밀이다. 단백질과 글루텐, 당분 함량이 일반 밀에 비해 낮다. 그래서 밀 자체가 지닌 고유한 향과 맛을 간직하고 있다.

앉은뱅이밀알이 가득 담긴 비빔밥, 앉은뱅이밀가루로 반죽한 칼국수, 냉국수, 콩국수 등 면류가 주 메뉴다. 항생제를 먹이지 않고 기른 돼지고기로 만든 돈가스와 수육도 있다. 남양주에서 나는 미나리를 얇게 부쳐 만든 미나리부침개도 별미다.

백문이불여일식. 일단 먹어 보자. 맛보지 않고 어찌 음식을 평할 수 있을까. 얼큰장칼국수, 고추소박이냉국수, 앉은뱅이밀비빔밥을 시켰다. 마음으로는 메뉴판에 있는 모든 음식을 다 맛보고 싶었지만…(후략)

▲ 앉은뱅이밀국수집은 개방형 주방이다. 맘만 먹으면 음식하는 모습을 밖에서 볼 수 있다. (위) 칼국수는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국수를 준비한다. (아래) ⓒ뉴스앤조이 이은혜
 

홀에 앉아 있던 주인장이 갑자기 바삐 움직인다. 냉장고에서 숙성 중인 반죽을 꺼내 1인분만큼 떼더니 얇게 편다. 0.3mm 두께로 편 반죽을 돌돌 말아 큼지막한 칼로 숭숭 썰어 낸다. 국수 주문과 동시에 면발을 준비한다. 하루 동안 숙성을 거쳐 그 자리서 막 만들어 낸 면발이라니. 그 맛이 기대됐다.

얼큰장칼국수는 말 그대로 얼큰한 맛 칼국수다. 방금 썰어 낸 국수를 삶아 미리 준비한 국물에 한 번 더 후루룩 끓여 낸다. 김이 모락모락 국물을 먼저 한 입. 맵긴 매운데 전혀 자극적이지 않다. '맵다'만 강조한 여느 음식처럼 먹는 순간 기침 나고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그런 매운 맛이 아니다. 깊은 데 깔끔하다.

▲ 된장과 고추장, 청양고추로 국물 맛을 낸 얼큰장칼국수. 멸치, 다시마 육수와 바지락 맛까지 더해져 국물이 시원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된장의 구수함과 고추장의 달달함, 청양고추의 칼칼함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칼국수. 된장은 직접 담갔고 고추장은 강화도 한 시골 교회가 만든 것을 사서 쓴다. 육수는 멸치와 다시마가 베이스다. 매일 아침 구리농수산물시장에서 사 오는 싱싱한 바지락도 듬뿍 들어가 있다. 얇게 썬 감자, 채 썬 당근과 애호박, 살짝 올린 부추가 색감을 풍부하게 한다.

이제 국수 면발이다. 앉은뱅이밀은 글루텐 함량이 적어 오랜 시간 숙성해도 쫄깃한 맛이 덜하다. 오히려 메밀국수 식감과 비슷하다. 메밀국수보다는 조금 더 찰진 국수. 쫄깃쫄깃한 면발을 기대했다면 이 부분이 조금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글루텐 함량이 적기 때문에 밀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다.

▲ 얼큰장칼국수에는 큼지막한 바지락이 푸짐하게 들어가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서울부터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따라왔다면 이미 갈증이 나고 있을 터. 그런 사람은 고추소박이냉국수를 먹어 보자. 주변에 오이소박이냉국수로 유명한 집이 있다지만 앉은뱅이밀국수집에는 고추소박이냉국수가 있다.

첫인상은 정갈. 투명한 국물 위에 짙은 분홍색 무 세 조각, 고추소박이가 올라가 있다. 여느 고추소박이처럼 빨간 고춧가루는 사용하지 않았다. 풋고추 배를 가르고 잘게 채 썬 무로 그 속을 채웠다. 삭을 대로 삭아 물컹할 것 같지만 씹으면 또 아삭하다.

▲ 동치미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강추. 고추소박이냉국수는 흔히 먹는 동치미 국수와 조금 다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냉국수 면도 앉은뱅이밀로 만든 소면을 사용했다. 새하얀 일반 소면과 달리 앉은뱅이밀 소면은 얼핏 보면 누르스름하고 얼핏 보면 옅은 회색이다. 소면은 칼국수 면보다 조금 더 쫄깃하다. 차가운 국물에 담겨서 그런지 면이 퍼졌다는 느낌이 없다.

국물 한번 마셔 볼까. 어렸을 적, 북한에서 오신 외할아버지 댁 장독대에 들어 있던 그 백동치미 맛이다. 어떤 때는 '맛이 간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곰삭은 동치미 국물. 조금 더 시원했으면 훨씬 맛있게 먹었을 것 같다. 고추소박이 한 점, 앉은뱅이밀국수, 동치미 국물. 한꺼번에 입에 넣었다. 따로따로 먹을 때와 또 다른 맛이다.

▲ 앉은뱅이밀비빔밥은 7가지 나물, 된장찌개와 함께 나온다. 나물은 그때그때 조금씩 다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사람들이 제일 많이 찾는다는 앉은뱅이밀비빔밥. 하얀 쌀밥 사이로 갈색 밀이 마구 박혀 있다. 한입 떠서 먹으면 밀알이 톡톡 터지는 게 식감이 재밌다. 밀은 쌀과 따로 불려 한 번 삶는다. 미리 삶은 밀로 밥을 하면 식감이 훨씬 부드럽다는 게 주인장 설명이다. 비비기 전에 밀밥만 한 숟가락 떠먹었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다.

들어가는 나물은 호박, 버섯, 당근, 무생채, 콩나물, 산나물, 미나리다. 1인용 된장찌개가 같이 나온다. 보통은 시금치를 넣는데 요즘은 미나리를 넣는다. 미나리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꼭 비벼 먹지 않아도 좋다. 참기름 향이 더 많이 나면 훨씬 구수하고 좋을 것 같다.

▲ 하얀 쌀 반, 갈색 앉은뱅이밀알 반. 씹을 때마다 톡톡 터지는 식감이 일품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주인장 조언정 목사 가족은 6년 전 남양주로 이사 왔다. 조 목사는 농촌에서만 목회하며 우리 먹거리 살리기 운동에 주력해 왔다. 아내 오혜정 씨는 손맛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유기농 김치 공장에서 일하다 출장 뷔페도 잠깐 했다. 그러다 아예 식당을 차렸다. 우리 먹거리에 관심이 깊었기에 앉은뱅이밀로 만드는 국수집을 개업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재료는 모두 남양주 인근 혹은 구리농수산물시장에서 직접 조달한다. 앉은뱅이밀은 경상남도 진주에서 3대째 정미소를 하는 집에서 사 온다. 배추김치, 열무김치도 직접 담근다. 요즘처럼 배춧값이 금값일 때도 어쩔 수 없다. 우리 농산물만 사용하겠다는 주인장 부부 의지가 굳다.

▲ 주인장 조언정 목사(왼쪽) 오혜정 씨 부부. ⓒ뉴스앤조이 이은혜

가게를 찾는 이들 중에 한 번만 오는 사람은 드물다. 한 번 오면 또 오고, 그렇게 단골손님이 돼 간다. 정직하게 만들다 보면 언젠가 찾는 이들도 많아지지 않을까. 조 목사 부부가 바라는 바다.

강렬하지 않지만 구수한 뒷맛이 혀끝에 남는다. 언젠가 다시 생각날 것만 같은 맛. 남양주에 바람 쐬러 가는 이들이여, 앉은뱅이밀국수 한 그릇 어떠신가.

주소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7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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