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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도 아브라함과 같은 언약의 주체
'여성의 눈으로 읽는 성경'…부부 속사정에 개입하시는 하나님
  • 강호숙 (hosuk9969@hanmail.net)
  • 승인 2016.08.06 14:13

강호숙 박사(총신대 실천신학 Ph.D)가 기고한 글입니다. 기독인문학아카데미에서 강의한 내용입니다. - 편집자 주

지금까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연신 말해 왔어도 사라의 하나님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사라를 기껏해야 이삭을 낳은 어머니 정도라든지, 또는 애굽 여인 하갈을 취하라 하여 아브라함이 죄를 짓게 됐다는 정도로 알려 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성경이 아담과 하와를 통해 부부가 '한 몸'이라고 선언한 이상, 아브라함과 사라를 언약의 주체자로 보아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여성의 눈으로 아브라함의 하나님만 아니라 사라의 하나님도 알아야 하나님을 보다 크고 넓게 알아 갈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부부 속사정에 어떻게 개입하시는지 살펴야 오늘날 부부 관계에 대한 통찰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시면서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세우신다(창 12:1-3). 하나님께서는 왜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실 때, 굳이 아비 집을 떠나게 할 필요까지 있었는가를 질문해 보게 된다. 이에 대해 "떠남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답을 얻을 수 있다.

즉,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기 위한 출발은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 되기 위해 '부모를 떠나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안전을 보장해 준 가족으로부터 떠나 오로지 하나님의 도우심만 의지하기 위해 아비 집을 떠나야 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아내의 입장에서 사라를 살펴보면, 아브라함이 본토 아비 집을 떠날 때 일찍 아버지 하란을 여윈 조카 롯까지 받아들일 정도로 너그러운 아내요, 낯선 곳을 서슴지 않고 남편 아브라함과 함께 떠난 믿음의 동역자라는 생각에 머물게 된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그 당시 가나안 땅에서 철저히 '외부인'으로서, 가나안의 중앙 산지와 남부 사막 지역과 같은 외곽 지역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히브리'의 뜻은 '건너온 자'라는 뜻으로서 유브라데 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이주한 아브라함을 일컫는 단어이다).

하지만 설상가상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어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는데, 사라의 아리따운 모습에 애굽의 남자들이 수군대는 걸 본 아브라함은 생명의 위협을 느껴, 급기야 사래를 애굽 왕 바로에게 팔아넘기게 된다. 오늘날 이런 남편이 있다면 비난받아야 마땅한 엄청난 사건이겠지만, 사라는 아브라함의 제안에 순종한다.

고대 근동 아시아의 문화와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방인으로서 직면한 절박함과 궁여지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서 추측해 보건대 사라 역시 아브라함과 똑같이 생명 위협 때문에 그렇게 선택했을 거라 여겨진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일로 애굽 왕으로부터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의 엄청난 부를 얻게 되는데(창 12:10-16), 아마도 이때 애굽인 하갈이 사라의 여종으로 왔을 거라 추정할 수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몸에서 후사가 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창 15:4), 가나안에 거한 지 10년 정도 세월이 흘러도 사라는 잉태하지 못했다. 탈무드에 보면, 여자가 10년 동안 아기를 출산하지 못하면 후처를 둔다는 암묵적인 관례가 있다고 한다. 위기의식을 느낀 사라는 아브람에게 애굽 여종 하갈과 동침할 것을 제안하였고 아브라함은 사래의 말을 듣게 된다(창 16:1-3).

여기서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 속사정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남편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말을 듣는 것을 '팔불출'이라거나, 아브라함의 행동을 약속을 기다리지 못한 '믿음 없는 행동'으로 단순히 치부할 건 아닐 듯하다.

이는 한때 자신이 살기 위해, 아내 사라를 애굽 왕에게 팔아넘긴 전과를 갖고 있는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갖고 있을 미안함과 "네 몸에서 후사가 날 것"이라고 약속은 받았지만, 10년 동안 잉태하지 못하는 사라에 대한 안타까움과 후손을 기다리는 조급함 등 부부 속사정이 있었을 거라 간파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하갈이 잉태함을 깨닫고 여주인 사라를 멸시할 때,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나의 받는 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창 16:5)라고 말한다.

사라의 이런 모습은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사라는 지금까지 남편 아브라함에게 순종하고 자신의 여종을 첩까지 바치면서, 어찌 보면 아무런 권리도 주장하지 않는 종속적인 존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라가 하나님 앞에서 남편과 자신을 동등한 언약의 주체자로 세우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 주기에 그렇다.

신학대학원 시절, 창세기 1장부터 50장을 쉬지 않고 3시간 40분 동안 읽은 적이 있다. 그때 유독 눈에 띈 부분이 있었는데, 창세기 16장 16절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은 때에 아브람이 팔십 륙세이었더라"과 창세기 17장 1절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였다.

성경의 장과 절이 후대에 삽입되었음을 감안할 때, 성경이 아브람의 나이를 언급한 이유와 하나님께서 침묵하신 13년간 아브람이 어떻게 지냈을지 궁금했다.

학자들은 이 침묵의 13년을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하갈을 취해 아스마엘을 낳은 잘못을 회개하는 시간이요, 절망하는 기간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리고 13년은 이스마엘이 성년이 되는 동안 아브람 밑에서 양육받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견해를 무시하진 않지만, 여성으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엄마의 입장에서 볼 때, 이스마엘 출생 전후 아브라함의 가정은 불화와 갈등, 미움과 질투의 시간을 보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한편, 사라의 학대를 피해 도망한 하갈의 입장에서 보면(16:6),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이 된 셈이니 얼마나 억울하고 힘들었을까라는 생각도 미치게 된다.

드디어 하나님은 13년의 침묵을 깨고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지금까지 후손과 땅을 주겠노라고 늘 먼저 찾아와 약속하셨던 하나님이셨지만, 13년의 침묵 후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전능한 하나님'으로 자신을 계시해 주셨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이 곧 완전한 삶"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브람에서 '열국의 아비'인 아브라함으로, 사래에서 '열국의 어미'인 사라로 개명하시면서 후손과 복을 약속해 주셨다.

우리가 아브라함과 사라의 하나님을 알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시선은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사라에게도 머무시며, 아울러 하갈도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사라의 이름 '열국의 어미'는 "민족의 열왕이 사라에게 속한다"라는 뜻이다(창 17:16). 사라도 아브라함과 똑같이 언약의 주체자로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보여 주는 언약의 통로이며 여족장인 것이다.

아브라함은 어떤 남편이며, 사라는 어떤 아내일까? 21세기 교회가 말하는 부부 관계와 성경의 부부 관계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는 아브라함 없이 사라를 상상할 수 없으며, 사라 없이 아브라함을 상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한 몸'이기에 그렇다. 교회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아내'만 강조하지 말고 남편과 아내를 하나님 앞에 언약의 주체자로 동등하게 세워 사랑과 연합으로 살아가도록 가르칠 필요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경적인 부부 관계가 아니겠는가.

강호숙 / 총신대 실천신학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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