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목사는 한마디로 비정규직입니다."
"부목사는 담임목사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아요."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2014년 <뉴스앤조이>는 교회 내 부목사 인권을 살펴보는 기획 기사를 썼다. 당시 부목사들은 자신을 비정규직, 교회 소모품, 담임목사 섬기는 사람으로 표현했다. 복음에 헌신하는 마음으로 사역을 시작했는데, 실제 교회 안에는 부당한 일이 많았다. 인권 사각지대. 취재에 응한 사람들만의 일은 아니다.

7월 10일(일) 오후 1시. 한 교회를 찾았다. 생긴 지 5개월 된 신생 교회. 현재 네 가정과 한 커플이 모이고 있다. 구성원 중에는 두 돌 된 아이들도 있다. 멤버 12명 중 3명이 전도사다. 선교사도 있다.

교회 건물은 따로 없다. 부천 한 가정집에서 예배한다. 두 가정은 수유리에서 한집 살림을 한다. 교인이 늘어 같이 나눔하기 어려워질 때는 분립하자고 결심했다. 세벗교회 이야기다. 세벗은 '세상의 벗'이라는 뜻이다. 예수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셨듯, 세상과 단절하지 않고 예수의 뜻을 따르겠다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다.

▲ 세벗교회에는 두 아이가 있다. 부모 외에도 교회 삼촌, 교회 이모가 아이들을 돌본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함께 먹고 예배하고, 생각 나누고

주일 아침에 예배 장소를 찾았다. 문을 열자, 밝게 웃는 사람들이 인사를 건넸다. 부엌은 음식 준비로 분주했다. 사람들은 기자가 온다고 김밥 대신 떡만둣국을 준비했다고 농담을 했다. 사람들은 각자 가져온 텀블러와 수저, 젓가락을 탁상 위에 올려놨다.

존칭 대신 서로를 '버디'라 부르며 이야기를 나눴다. 자리가 좁아 몇 사람은 거실에, 몇 사람은 주방에서 식사했다. 감기 기운이 있는 한 아이를 구성원들이 돌아가며, "열이 있는데, 괜찮느냐, 밥은 언제 먹었느냐" 물었다. 아이들과 놀아 주고, 성경책을 보며 웃었다.

오후 2시 30분이 되자 예배를 시작했다. 예수께서 간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성경 본문으로 설교했다. 설교자는 예수의 말씀을 사회적 약자들, 힘이 없는 여성들을 위한 차원으로 해석했다. 말씀 속에서 세벗교회가 적용해야 할 지점을 찾았다. 설교 도중 사람들에게 자주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은 틀린 답이라도 자기 생각을 주저 없이 말했다. 틀려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설교는 전도사 세 명(이민우, 황동영, 허장은)이 돌아가며 맡는다. 하나님나라와 개혁, 마태복음 산상수훈, 현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을 주제로 번갈아 전한다. 룰에 매이지 않고 교인과 설교자의 필요를 적극 반영한다. 지금은 설교자가 셋이지만 처음에는 원하는 누구나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 2부 순서로 간증을 하기도 하고, 버디들 전문 분야를 살려 의학과 경제학 특강을 하기도 했다.

설교 후에는 새로 알게 된 점을 나눈다. 설교자에게만 의존하지 않는다. 공동체 나눔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왜일까? 메시지를 한 사람이 독점하면 권력이 한쪽으로 쏠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눔은 이를 방지하기 위한 방편이다. 설교자는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주제를 던지고 교인들은 나눔을 통해 서로 배운다. 나눔은 1시간 정도 걸리지만 생각을 교류하고 삶을 듣는 것이 즐겁다.

▲ 교회 건물이 따로 있진 않다. 설교는 세 전도사가 돌아가면서 전한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공장에 들어간 전도사, 공동체를 꿈꾸다

세벗교회에는 사역자가 3명이나 있다. 처음부터 세 사람이 교회를 함께 시작한 건 아니다. 이민우 전도사 가정이 사촌 동생 커플과 먼저 모임을 시작했다. 기존 교회와 자신이 안 맞다고 느꼈다.

그즈음 황동영 전도사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사역하면서 부조리한 모습을 보았다. 실망이 컸다. 제도권 교회에 의문이 생겼다. 동시에 가나안 교인들에 대한 마음이 커져 갔다. '교회에서 상처받고 아픔을 겪은 이들은 누가 목회하지?'란 생각이 들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한 사람에 가나안 교인도 포함된다고 생각했다.

공장에서 1년 정도 일하고 있을 무렵, 이민우 전도사가 먼저 만나자고 제안했다. 둘은 서울신학대학교 대학원 출신으로 얼굴은 알았지만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두 사람은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공유했다. 마음이 맞았다. 황 전도사가 공동체 준비 모임에서 설교를 했다. 이렇게 세벗교회가 움직여 갔다.

이 전도사가 공동체에 대한 고민, 이야기를 SNS에 올렸다. 제도권 교회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역자들에게서 유독 연락이 잦았다. 가치에 공감하는 이들이 예배 장소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 교회 주보에는 이들의 지향점이 잘 드러나 있다. 세상과 교회를 구분하지 않고, 공동체로서의 대안을 제시한다는 내용이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뭣이 중헌디?

교회 건물이 없는 것도, 교인이 많지 않은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제도권 교회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을 세우는 게 먼저였다. 직분의 위계질서가 아닌 평등을 중요하게 여겼다. 목사, 장로에게 쏠리는 권력을 분산하고자 했다.

먼저 호칭을 없앴다. 목사도 전도사도 없앴다. 그 자리에 '벗님'만 남겼다. 조금 더 친근한 표현으로 '버디'를 사용했다. 주보 한 면에 성인부터 두 살 난 아이들까지 얼굴과 이름을 실었다. 여기서도 호칭은 버디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부르다 보니 적응됐다.

세벗교회는 개인 구원에만 몰두하지 않으려고 한다. 거듭남이 개인 차원에서 머무르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구원이 중요하지만 공동체로서 사회적 대안(공평한 사회, 나누는 경제구조)을 제시하고자 한다. 공동체 안에서 매달 회비를 걷은 후 1/10은 구제 헌금으로 적립, 사회적 약자 소외된 계층을 위해 쓴다. 함께 책을 읽고 공부하며 공적 신앙의 감수성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황 전도사는 "교역자들이 하나님 사랑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하지만 공의, 정의 부분이 약하다. 이 시대에서 정의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 힘이 약할지라도 약자 편에 계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메시지를 전한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분들을 잊지 않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 세 전도사들은 주중에는 교회 밖으로 나간다. 황 전도사는 아이들에게 진로 교육을 한다. (사진 제공 황동영)

설렘이 있는 공동체

전도사가 3명이나 있어 외부에서 볼 때는 공동 목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아니다. 목회자 정체성보다 각자 공동체 일원으로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다. 대신 버디들의 삶을 돌보는 목양지기가 있다. 서로 의견을 모아 회의를 진행하고 의견을 조정하는 일을 한다. 황동영 전도사의 업이다.

물론 힘든 점도 있다. 제도권 교회처럼 교역자 생활비를 책임질 순 없다. 주변 목회자들, 지인들이 세벗교회를 두고 염려하는 점이자 공동체의 과제이기도 하다. 현재는 생활비 전부를 줄 순 없지만 벗님들이 낸 십일조로 일부를 마련한다. 이 사례비로 목양지기가 소신 있게 역할을 감당하도록 돕는다. 건물 대여비가 없으니 다른 개척교회만큼 부담되진 않는다.

아주 가끔씩 꼬박꼬박 사례비를 받는 동료 전도사가 부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 삶을 따라가고 싶진 않다. 제도권 교회의 사역이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담임목사가 바뀌면 떠나야 하고, 파트에서 전임, 전임에서 부목사로 올라가는 것도 만만치 않다. 위로 갈수록 자리가 없어진다. 그렇다면 행복하게 사역할 곳을 찾는 게 맞지 않겠는가.

주중에 세 전도사는 교회 밖으로 나간다. 교육자, 일반 사무원, 운전자로 일한다. 일하면서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 세상과 소통한다. 신기하게도 각 때마다 하나님의 채우심을 경험한다. 생계가 유지되지 않을 만큼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다.

황 전도사에게 5개월간 공동체로 살면서 제일 좋은 점을 물었다.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토요일 밤, 잠들기 전에 설렌다. 그거면 이야기가 다 된 거 같다."

그는 한국교회 교역자와 교인들이 얼마나 이 설렘을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세벗교회가 앞으로 넘어야 할 산, 고민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함께하는 것' 자체에서 힘을 얻는다고 했다. 같이 밥상을 나누고 직접 삶을 나눈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힘이다.

개척을 준비하는 젊은 교역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을까? 그는 사역하는 전도사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든다고 했다. 기존 교회 문제점을 잘 알면서도 그곳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게 대다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는 신학생들에게 계산하거나 미래를 불안해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붙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도행전을 보면 똘똘 뭉쳐 있던 예수의 제자가 각지로 흩어지면서 복음이 전달된다. 이처럼 교회 안에 똘똘 뭉쳐 있는 교역자와 교인들이 세상과 벗 되며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여 주시는 하나님을 만났으면 좋겠다."

▲ 남기업 소장을 초청해 희년 강의를 듣기도 했다. (사진 제공 이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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