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인으로서 가해자를 어떻게 용서하고 화해할 것인지에 대해 다루는 책 <기억의 종말> 출간 기념 좌담회가 은혜와선물교회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미로슬라브 볼프의 <기억의 종말>(IVP) 출간 기념 좌담회가 5월 2일(월) 강변역 테크노빌딩 14층 은혜와선물교회에서 열렸다. <기억의 종말>은 상처를 입은 피해자가 어떻게 고통을 올바르게 기억하고, 치유하고 망각할 것인지 이야기하는 책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엄중한 예수의 명령을 앞에 두고, 피해자 입장에서 가해자와 어떻게 화해할 것인지 실천 문제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미로슬라브 볼프의 실제 신앙고백이기도 하다. 미로슬라브 볼프는 칼 마르크스에 관한 논문을 썼다는 등의 이유로 유고슬라비아 군대로부터 무고하게 스파이 혐의를 받은 적이 있다. 몇 달간 심문을 받았다. 이를 주도했던 인물이 'G 대위'다. 볼프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고통스런 심문의 기억을 잊고 G 대위와 화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치열한 사고 실험을 책 속에서 재현해 보인다.

좌담회 전체 사회는 김응교 교수(숙명여대)가 봤다. 1부 순서로 강영안 교수(고신대 이사장)가 발제하고, 2부 순서로 강영안 교수와 김경은 교수(장신대), 박종운 변호사(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가 <기억의 종말>을 직접 강독한 뒤 좌담을 나눴다. 3부 순서는 청중과 질의응답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올바르게 기억하고 화해하라

강영안 교수는 '<기억의 종말>을 통해 본 볼프의 화해 신학'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강 교수는 이 책이 특별히 피해자가 자신에게 악행을 가한 가해자를 용서하고자 할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가 자신이 겪은 고통과 아픔을 계속 기억할 것인가, 망각할 것인가가 <기억의 종말>이 붙들고 있는 화두라고 했다.

볼프는 용서를 하려면 먼저 올바르게 기억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볼프는 세 가지를 주장한다. △진실하고 정의롭게 기억하라 △치유를 위해 기억하라 △과거의 일이 정의로운 투쟁과 화해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억하라. 볼프는 기억은 100% 정확할 수 없고, 언제나 왜곡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화해를 하려면 바르게 기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 1부 순서로 강영안 교수가 발제를 맡았다. 강 교수는 미로슬라브 볼프의 신학적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조직신학자이면서도 목회적 관점을 견지하고, 역사적인 배경을 놓치지 않으며, 항상 평화를 추구하고 화해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그런데 이 기억이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 프레임, 관점을 취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프레임은 없다. 볼프는 출애굽의 기억과 그리스도의 십자가·부활이라는 프레임으로 봐야 가해자와 화해하는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 강 교수는 이런 볼프의 이야기가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볼프는) 우리가 고통을 당하더라도 가해자에 대해 끊임없이 기억하고 징벌하려고 하는 것보다 오히려 나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가해자를 마치 피해자처럼 받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화해가 '기억의 종말', 기억을 끝내는 것이고 동시에 기억의 목적이다.

기억의 종말이라고 하는 것이 기억의 목적이며,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사랑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 그것이 우리의 (아픈) 기억을 끝내게 만든다. (볼프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유는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화해는 고통받지 않기 위해 하는 것

2부 좌담의 주제는 '세월호 이후 우리에게 기억이란 무엇인가'였다. 패널들이 <기억의 종말>을 읽으면서 밑줄 친 부분을 낭독하고, 감상을 이야기한 뒤 의견을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김경은 교수는 볼프가 다른 화해 신학자들과 비교했을 때, 화해를 영성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고 지적했다. 볼프는 △사람들의 내면을 바꾸는 문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정체성 문제 △화해자로 살아가는 소명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왜 우리가 가해자를 용서해야 하고, 기억의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지 덧붙여 이야기했다.

"화해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위해 해야 하는 거다. 우리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이라는 관점으로, 많은 고통받은 사람들과 연대하고 화해하고 사랑의 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고 볼프는 제시한다. 그것이 기독교인의 소명이다.

하지만 가해자가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화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만, 피해자가 먼저 화해를 시작해야 한다는 거다. 가해자는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가 먼저 용서해야 한다. 고통당한 사람들이 고통으로부터 치유받기 위해서라도 화해 작업은 시작할 수밖에 없다."

▲ 2부는 강영안 교수, 김경은 교수, 박종운 변호사가 패널로 나와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꾸려졌다. 각자가 <기억의 종말> 중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을 낭독했고, '세월호 이후 우리에게 기억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고통에 무감한 한국교회

박종운 변호사는 기억과 화해의 문제와 관련해 세월호 2차 청문회에서 보았던 두 가지 사례를 이야기했다. 한쪽은 사과의 기회를 달라고 한 뒤 죄송하다고 공개적으로 세월호 가족들에게 사과를 했고, 다른 한쪽은 "나도 너무 힘들었다. 감옥 가면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고 대꾸했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잘못한 사람이긴 해도 솔직하게 말하면서 용서를 구하니 가족들이 위안을 받았지만, 후자의 경우, 진정한 의미로 사과나 화해를 원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건 이후 교회를 돌아보며 느낀 점을 나눴다.

"목사들이, 우리 신앙인들이 인본주의자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신앙이 없는 인본주의자들도 아픔에 동참할 줄 아는데 (신앙인들은) 그게 없다. 자신의 어떤 이론적인 신앙을 가지고 배려를 하지 않는다. '계산이 다 나오는 건데, 왜 아직도 이러고 울고 있지? 왜 아직도 저기 가서 슬퍼하지?' 그런 생각을 하는 거다. 고통에 동참하고 기다려 주는 하나님의 마음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강 교수는 박 변호사 말을 이어받아, 한국교회가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에 동참하지 않고 무감한 것은 교회에 만연한 잘못된 신학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하나님을 고통받지 않는 분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나님은 고통과 무관한 방식으로 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화해는 고통의 강에 집을 짓는 것"

3부 질의응답 시간에는 기독교인이 용서해야 하는 것은 옳은데, 강압적인 용서는 폭력이 될 수 있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가 나왔다. 용서에는 여기에는 과정과 순서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화해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에 김경은 교수는 화해가 정말 힘든 과정이지만, 볼프가 말하는 것처럼 과거의 기억을 갖고 영원히 살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아픈데도 감수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화해는 정말 아픈 과정이다. 그래서 화해 신학자 레더라크(J. P. Lederach)는 '화해는 고통의 강에 집을 짓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힘들다는 거다. 적대자를 향해서, 우리의 얼굴을 돌리고 영원히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봐야 되기 때문이다. 더한 것은 그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하기 때문에 관계 회복이 필요하다."

세월호와 관련해 기도 말고, 어떤 행동을 해야 실제적으로 유가족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묻는 질문도 있었다. 박종운 변호사는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기도 자체가 행동이라고 말하면서,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자랑스럽게 리본을 달고 다니는 것이 세월호 유가족들이 하는 일에 동참하는 하나의 행동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광화문이나 안산 등에 가서 광화문 목요 예배, 서명운동 등 여러 방식으로 세월호와 관련한 소규모 모임에 참여하는 것을 중요하다고 했다. 또 SNS에 유언비어가 퍼지면 바른 정보를 가르쳐 주는 등 작은 것 하나하나를 떳떳하게 실천하고 수용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 7시 40분경에 시작한 좌담은 2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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