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주 화요일에 감신대 학생들은 '집 밥'을 먹을 수 있다. 감신대를 나와 작은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박인성 목사와 아내 이경숙 씨가 아무런 대가 없이 60인분을 준비해 온다. 고기반찬은 필수, 손이 많이 가는 반찬도 정성스럽게 준비해 온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일산의 한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 박인성·이경숙 부부는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아침이 되면 손이 바빠진다. 새벽부터 60명 먹을 밥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딱 쌀밥만 준비하는 게 아니다. 국도 끓이고 고기도 재운다. 멸치도 볶고, 나물도 데친다.

감신대를 나온 박인성 목사는 이 밥을 들고 모교를 찾는다. 50대 부부 둘이서 '도시락톡'이라는 이름으로 매주 후배들에게 무료로 밥을 나눠 주는 일을 하고 있다. 두 아들이 대학생 또래다 보니 아들딸에게 밥 먹이는 기분이다. 정성스레 갖은 반찬을 준비해 가면서 입소문이 났다. 밥이 맛있단 소문에 '배가 부흥'했다. 2014년 감신대 건물 지하 세미나실에서 30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60명이 밥을 먹으러 온다. 연세대학교에도 밥을 들고 나선다. 화요일과 수요일 매주 두 학교에는 학생들이 '선착순'으로 밥을 먹으러 달려온다.

박 목사 부부가 도시락톡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이경숙 씨는 감신대에 다니는 아들에게 도시락을 싸 주곤 했는데, 어느 날 아들이 도시락을 친구들과 나눠 먹는다고 얘기했다. 처음에는 친구들 밥까지 10인분을 준비해 주고, 먹고 싶어 하는 반찬도 만들어 주다가 아예 학교로 밥을 들고 오게 됐다.

"밥이 너무 맛있어요"

4월 19일 감신대를 찾았다. 12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지만 벌써 많은 학생이 와서 점심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간고사 기간임에도 학생 50여 명이 몰려와 '집 밥'을 찾았다. 학부생 정원이 1,000명 안 되는 작은 대학에서 50명이나 밥을 먹으러 왔으니 적은 숫자는 아니다.

도시락톡은 밥 먹기 전 매주 게스트를 섭외한다. 분식집 하는 목사님, NGO 활동하는 목사님, 커피 내리는 목사님 등 열심히 현장을 뛰는 목사님들도 부르고, 신문사 기자, 아나운서, 농부 등 다른 일하는 사람들도 불렀다.

▲ 감신대와 연세대에서 도시락톡을 하고 있지만, '게스트'는 감신대에만 있다. 신학생 후배들이 맹목적으로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지 말고, 다른 진로에 대한 이해도 가져 보라는 의미에서다. 학교도 박 목사 부부의 정성을 이해하고 장소를 제공하는 등 편의를 돕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무렵, 이날 게스트인 감신대 85학번 지희경 권사가 학생들 앞에 섰다. 지 권사는 음악 선교단체인 '트리오크로체'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신학교를 나와 다른 길로 접어들게 된 사연을 소개하면서, 학생들이 다른 진로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고민할 줄 알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이미 다 만들어 놓은 길로 가야 한다면 그건 로봇이죠. 삶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미래는 정해진 게 아니에요. 지금의 선택과 판단, 노력이 여러분의 미래가 돼요. 기도하는 만큼 행동해야 하고 책임질 줄 알아야 합니다."

식사 시작. 이날 메뉴는 짜장밥과 제육볶음, 계란 프라이였다. 밥만 먹으면 목이 멘다고 음료수도 한 캔씩 준비했다. 배식받는 줄이 길게 늘어졌다. 2년째 도시락톡에 와서 밥을 먹고 있다는 학생은 "집 밥 같아서 매주 오고 있다. 밖에서 밥 사 먹는 게 부담되어서 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밥이 너무 맛있다"고 했다.

'게스트'는 신학교 선배가 후배들에게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박인성 목사는 선배들을 데려는 이유를 말했다. "신학교 왔다는 이유로 진로에 대해서 고민을 안 하는 경우가 많아요. 목사 할 거니까. 그래도 자신의 인생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분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입학한 지 한 달 남짓 된 1학년 학생은 "다양한 분야의 선배님들이 와서 얘기해 주시는 게 너무 좋다. 기숙사에 살아서 기숙사 밥을 먹을 수 있지만, 일부러 여기로 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같은 뜻을 품고 연세대학교 송도 캠퍼스와 인천대학교에서 도시락톡을 하고 있는 박상철 목사(예일교회) 같은 동역자들이 더 많이 생기면 좋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엄마 마음'이라서 한다

박인성·이경숙 부부는 화요일에 감신대, 수요일에 연세대를 찾는다. 연세대도 2년 전부터 총학생회와 함께 학생 60여 명에게 밥을 주고 있다. 다시 목요일 저녁에는 감신대를 찾아서 야간 수업을 하는 목회신학대학원 학생들에게 야식을 나눠 준다. 대가는 없다.

감신대 학생들에게야 '선배 목사님'이 주는 밥이지만, 연세대 학생들에게는 아무 연결 고리도 없는 아저씨, 아줌마가 와서 밥을 주는 셈이다. 이경숙 씨는 연세대 학생들이 특히 좋아한다면서 "요즘 누가 와서 무료로 청년들에게 해 주는 게 거의 없잖아요. 고기도 많이 먹을 수 있고 학교 밥보다 맛있으니까 많이 와요"라고 말했다.

밥 사 먹을 만한 애들 말고, 정말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밥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뭐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나 밥을 주면 무슨 의미냐는 것이다. 그러나 박 목사 부부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려운 사람들 와서 밥 먹으라면 오겠어요? 나 같아도 자존심 상해서 안 올 것 같아요. 누구나 오라고 하면 어려운 애들도 올 수 있겠죠. 지방에서 올라와 집 밥 못 먹는 사람들, 밥 한 끼 사 먹기 어려운 사람들 누구나 오면 되잖아요."

부부는 목사티도 안 낸다. 밥을 주는 건 그냥 밥을 주는 것일 뿐, 전도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전도 차원에서 하는 게 아니에요. 목사라고 티 내고 하지는 않지만, 언젠가 그 향기를 세상 사람들이 맡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경숙 씨도 거창한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지금 소위 혼밥 시대잖아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같이 밥 먹는 시간 자체가 의미 있다고 봐요. 애들도 별말 안 해요. 잘 먹었다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가요. 그것뿐이죠. 뭐가 더 필요해요."

박 목사 부부는 청년 주거 문제에도 작은 도움을 주고 싶다. 지난해 말 북아현동에 방 두 칸짜리 작은 집을 얻었다. 셰어 하우스를 하기 위해 지금 내부 수리 공사 중이다. 5월 초 입주 공고를 내려고 계획하고 있다.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일 참이다. 얼마 전 5,000원에서 1만 원씩 십시일반 후원해 주는 100여 명을 모아 '도시락톡'을 비영리단체로 등록했다. 후원자가 제법 생겼지만 1주일에 200인분 가까운 분량의 식사를 준비하는 건 아무래도 힘에 부친다.

부부 둘이서 시작했고 지금도 둘이 주축이 되어서 한다. 몸이 약한 탓에 자주 앓기도 하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한다. 그래도 동역자가 생기면 더 좋겠다고 한다. "아무 조건 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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