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스포트라이트'. 2002년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을 폭로한 <보스턴글로브> 스포트라이트팀의 실화를 배경으로 했다.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지난 2월 24일 개봉한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이라는 민감한 이슈를 다뤘다. 2002년 이 문제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미국 보스턴의 신문사 <보스턴글로브> 스포트라이트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당시 스포트라이트팀은 보스턴을 거쳐 갔던 신부 70여 명이 아동 성추행 때문에 보직을 옮겼고, 이 과정에서 추기경 등 가톨릭 권력자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고 폭로했다.

영화는 가톨릭의 영향력이 큰 보스턴에서 스포트라이트팀이 진실을 드러내는 과정을 극적으로 그렸다. 기자들의 취재에 사람들의 반응은 주로 "교회는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다", "사람들은 위로가 필요하다. 정말 보스턴을 위한다면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마라", "신임 편집장이 유대계라 가톨릭을 공격하는 것이다" 등이었다. 추기경 등 권력자들은 피해자들의 부모에게 "책임지고 조치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성추행을 일삼은 신부는 또 다른 교구로 파견될 뿐이었다.

신부 한 사람의 성추행 사건으로 시작된 취재는 파고 들어갈수록 점점 실체가 드러났다. '한 사람의 개인적 일탈'이 아닌 사제 사회에 오래, 깊숙이 뿌리박은 현상임이 밝혀졌다. 종교 권력을 잡은 자들은 추악한 범죄에 너무나 관대했고, 이들의 태도는 또 다른 범죄를 방조하고 부추겼다. 수십 년간 은밀하게 자행되어 온 학대의 피해자는 상상 이상이었다. 보스턴에 사는 사람은 한 다리 건너면 피해자가 있을 정도였다.

주목할 점은 영화가 비난의 화살을 가톨릭 사제 사회에만 돌리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영화는 '그럴 리가 없다'며 쉬쉬했던 일반 시민들의 무관심을 지적한다. 사건을 철저하게 취재한 스포트라이트팀의 팀장이자 보스턴 토박이인 월터 로빈슨도 수년 전 성추행 사제들의 명단을 제보 받은 적이 있지만 그것이 진실인지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제보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피해자들의 변호사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 말을 기억해 둬요.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지만,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에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것을."

▲ 성직자의 성추행. 가톨릭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기시감이 들었다. 저 말에서 '마을'을 '교회'로 바꾸면 무리일까. 수년간 교회를 급성장시키며 한국교회 차세대 리더로 떠오르던 목사가 성추행 의혹에 휘말렸다. 목사는 부인했고 교인들은 목사의 말을 믿었다. 피해자가 어렵게 입을 열었지만 사람들은 믿어 주지 않았다. 그 목사는 성장 신화를 이뤄 낸 훌륭한 사람이라고, 은혜가 되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다니면 안 된다고, 이런 일로 교회가 공격을 받으면 안 된다고, 급기야는 피해자들을 이단으로 몰았다.

종교 권력자들은 어떤가. 노회·총회 목사들은 굼떴다. 여간해서는 '같은 목사'의 범죄를 다루기 싫어했다. 여론의 압박과 몇몇 양심 있는 목사의 행동으로 어렵게 이뤄진 재판에서도 '성추행의 증거가 없다'며 너무 쉽게 면죄부를 주었다. 성범죄를 저지른 목사가 숨을 곳은 많았고, 피해자들이 설 곳은 없었다. 무조건 목사를 옹호한 종교 지도자들과 사건에 무관심한 일반 교인들이 피해자를 두 번 세 번 죽였다.

스포트라이트팀은 수개월간 취재 끝에 2002년 1월 첫 보도를 시작으로 그해에만 600여 건의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그 결과 보스턴 대교구의 사제와 수도사 249명이 성추행 혐의로 공개 기소됐다. 아동 성추행 피해자는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됐다. 당시 신부들의 범죄 사실을 알고도 은폐한 추기경은 사임했다.

물론 이 일로 전 세계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이 근절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14년이 흐른 지금 <보스턴글로브>의 이야기는 할리우드 영화로 제작되었고, 바티칸 교황청 신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는 2월 29일 자 사설에서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가톨릭 신자들이 겪은 깊은 상처를 알리고 경고의 소리를 울리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반가톨릭 영화가 아니다"고 말하며 영화를 지지했다.

한국교회는 어떤가. 목사들의 성추행을 고발하고 피해자들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언론을 지지하는가. 성범죄를 묵인하는 종교 권력과 목사들이 은밀한 범죄로 손을 뻗치게 되는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는 기사를 보며 심각하게 고민하는가. 더 이상 "그런 기사는 은혜가 안 돼"라며 외면하는 목사와 교인들이 없기를 바란다. 진실은 그런 말 속에 교묘하게 숨어 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