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부천 ㅊ교회 담임목사 성추행 의혹 '교회 혼란'". 이 기사는 <뉴스앤조이>가 창간된 지 100일도 지나지 않은 2000년 10월 9일에 실린 목사 성추행 관련 기사다. 담임목사가 여자 청년, 여성 전도사를 성추행한 사실이 교회에 알려진 후 교회가 분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다.

15년 7개월이 지난 2016년 5월 24일 <뉴스앤조이>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교회에서 성희롱이 발생한 적이 있는지 묻고, 만약 있다면 사례를 기술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익명으로 쓸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막상 결과를 마주하니 참담했다.

이미 한 차례 기사에서 소개한 바 있지만 기사가 나간 후에도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20년 전 초등학교 여름 수련회 때 목사가 반바지 안으로 손을 넣어 자신을 만졌다는 기억이 아직도 괴롭다는 답변에 눈길이 머물렀다. 남성이 목회자에게 성추행 당한 사례도 있었다. 이미 결혼해 자녀가 둘이나 있는 목사가 전도 여행에서 같은 침대에 누운 자신을 끈질기게 더듬었다는 내용은 읽으면서도 믿고 싶지 않았다.

기독교 언론에 있으면 자연스레 목사 관련 뉴스에 촉각이 곤두선다. <뉴스앤조이>가 다 다룰 수 없어 보도하지 못한 목사 성추행 사건만 해도 한두 건이 아니다. 법의 처벌을 받아 수면 위로 드러나는 사건 외에 수면 아래에 묻혀 버리는 사건이 얼마나 많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은 이제 더 이상 목사가 저지른 범죄에 놀라지 않는다. 딸을 때려 죽인 목사, 교회 여자 청년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하고도 멀쩡하게 목회하고 있는 목사, 여자 청년을 성폭행하고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주장하는 유부남 목사, 위조수표를 만들어 성매매한 신학생. 최근 몇 년 사이 발생한 목회자들의 성 문제를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 목사들의 성추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대부분 가해자인 목사 편에서 사건을 무마하는 데 힘을 쏟았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이런 종류의 기사가 보도되면 단골로 달리는 댓글이 있다. "목사 개인의 일탈일 뿐 기독교 전체를 매도하지 말라", "이렇게 기독교의 치부를 드러내는 기사를 써서 얻는 것이 뭔가", "기독교 언론에서 이런 기사를 다루면 전도의 문이 막힌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자기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목사들도 많은데 굳이 이런 기사를 쓰는 저의가 뭔가."

저의는 없다. 모든 논의의 초점이 가해자인 목사에게만 맞춰지는 것이 싫을 뿐이다. 목사도 사람이고 목사도 실수할 때가 있고 그렇기에 목사도 용서받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순서다.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없는데 누구를 용서하라는 말인가.

목사를 용서해야 한다고 소리 높이는 사람들에게 피해자는 보이지 않는다. '목사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말에 세뇌되어 피해를 당했음에도 입을 다물고 숨어 버린 여성들. 같은 여성에게조차 '목사 홀린 꽃뱀 같은 년'이라는 막말까지 들어야 했던 피해자들. 그들은 10년,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악몽을 잊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 위기론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위기를 말하면서도 내부 문제는 애써 외면했다. 동료의 잘못을 '일탈'로 규정하고 그들의 잘못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막았다. 적은 내부에 있었지만 외부에 적을 만들어 교인들의 눈과 귀를 가렸다. 그러는 사이 위기는 실체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났고 교인 수는 급감했다.

애초 잘못 내린 처방 때문에 한국교회는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 곪다 못해 썩어 빠진 상처 위에 반창고만 덕지덕지 붙였다. 칼을 들고 내 살을 도려낸 후에야 그 자리에 새살이 돋아나는 법이지만 그 아픔조차 감당하기 힘들었던 걸까. 목사들은 잘못을 범한 동료 목사를 대놓고 감싸 줬고 오히려 그들만의 견고한 성을 만들었다.

처음에 소개한 ㅊ교회는 지금도 문제없이 잘 돌아간다. 담임목사는 4개월 안식월을 보낸 후 복귀했고 교회는 이전처럼 운영됐다. 당회는 물론 교회가 속한 교단 지방회는 담임목사 편에 섰다. 이후 사건은 당사자 간의 합의로 사실상 종결됐다. 담임목사는 교단에서도 승승장구해 현재 중직을 맡고 있다.

목사들의 '일탈'이 보도되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어휴 목사가 또...'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 뿐이다. 그 누구도 이 문제가 '우리'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부' 교인, '일부' 목사, '일부' 교회, '일부' 교단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고 우리는 관련 없는 것처럼 외면하고 지나간다. 그러는 사이 교회는 또 같은 굴레에 빠져 세상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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