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이재철 목사(100주년기념교회)가 세월호 가족의 슬픔에 동참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단체도 우상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3월 8일 경기도 가평 필그림하우스에서 진행된 목회자·신학생 멘토링 컨퍼런스서 강의 후 질의응답 시간에 나온 말이다.

'교회란 무엇이고 목회란 무엇인가'라는 주제 강의를 들은 한 목사는 "오늘 아침 세월호 유가족과 대화 시간이 있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 사건 속에서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유가족을 보면서 목사님은 이들의 투쟁과 행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현재 정권이나 사회 풍토를 보시면서 한국교회가 어떻게 반응해야 되는지 조언의 말씀을 구한다"고 질문했다.

▲ 제5회 목회자·신학생 멘토링 컨퍼런스 둘째 날 강사로 이재철 목사(100주년기념교회)가 나섰다. 그는 '교회란 무엇이고 목회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이재철 목사는 "세월호는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했고 지금도 아픔에 동참하고 있는데, 조금 다른 관점에서 말하고 싶다"고 운을 뗐다.

"슬픔을 당할 때 그 슬픔에 동참하는 것,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떤 이유에서든, 어떤 단체든 우상이 되는 것을 금해야 한다. 세월호 유족들이 슬픔을 당했기 때문에 그분들의 모든 것이 '언터처블(untouchable, 건드릴 수 없는)', 아무도 터치할 수 없는 우상이 된다고 한다면 그건 아니다.

모든 분들이 다 슬픔을 이야기하고 동참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달리 말씀드릴 필요가 없고,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일을) 조명을 하고자 할 때 우리가 기독교인으로 충분히 해야 하지만,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어떤 한 개인이나 한 집단을 언터처블한 우상으로 만들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거기에서 깨어 있는다면 우리의 동참,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진선미를 전해 주는 좋은 통로가 되리라 생각한다."

목사라면 '자립'과 '자기 객관화' 이뤄야

질의응답을 시작하기 전 이재철 목사는 약 1시간 동안 목사들에게 '자립'과 '자기 객관화'에 대해 강의했다.

이재철 목사는 교회가 하나 되려면 공동체 구성원이 서로 자립해야 하는데, 목사부터 자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목사가 경제적으로 자립을 이뤘다고 하더라도 행위의 자립을 이루지 못했다면 목사라 해도 결코 행동이나 도덕성에서 남보다 우월하지 않다고 했다.

"한 교단의 총회가 끝났다. 끝나고 나가는 자리에 자기가 먹고 남은 쓰레기, 마신 물병, 받은 자료집 등을 그대로 놓고 나갔다. 자기 흔적을 전부 그 자리에 남겨 두고 간 거다. 그런 목사들이 주일이면 전부 양복 입고 거룩하게 설교할 것 아닌가. 사도행전 1장 1절을 보면 분명히 예수님은 먼저 '행하고' 나중에 '가르쳤다'고 기록돼 있다. 왜 목사들이 먼저 행하지 않는가. 왜 자신이 쓰고 남은 것들을 다른 사람이 치워야 하는가."

이어 이재철 목사는, 목사가 먼저 거룩한 길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교회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목사라면 먼저 자기 객관화를 수반하는 거룩함을 갖추라고 했다. 자기비판에는 인색하면서 세상 비판은 잘하는 목회자가 많다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 눈으로 자신을 객관화해야 한다. '부족하고 죄인인 나를 목사로 세워 주신 하나님이 보시기에 내가 정말 구별된 길을 걷고 있는가' 늘 질문해야 한다. 하나님이 보시고 있다고 생각하면 목회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온갖 모임에는 스스로 나가면서 구별해서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 목회자도 있는데 점검해 봐야 한다. 교인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다. 교인의 눈에 나를 맞추려는, 자기 객관화하려는 노력 없이 목회자의 삶은 바뀌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볼 때 나를 바꿀 수 있는 거다."

▲ 강의가 끝난 후 목회자 20여 명이 이재철 목사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김종일 목사(동네작은교회)가 진행을 맡았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20대에 도전 정신 심어 주는 목사가 되라

강의 후 질의응답은 김종일 목사(동네작은교회) 사회로 진행됐다. 질의응답을 간추려 일문일답으로 소개한다.

- 경제적 자립을 말씀하셨는데, 아내와 자식을 둔 사역자가 생활할 수 있는 기본에 대해 욕심을 갖는 것도 안 되는 것인가.

경제 자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목회자 한 명의 결심이 아닌 가족의 결단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나는 "소명받은 사람은 목사지 목사 자식들은 아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목사가 소명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식도 같이 소명의 길에 있어 줘야 한다. 자식이 원하는 것을 "우리 형편에 할 수 없단다"라고 목사 부모가 이야기할 때 자식들이 그것을 받아 주지 못하고 다른 집 아이들과 비교한다면 경제적 자립은 어렵다. 삶의 기본적인 판을 만들 때 아내, 자녀들과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 객관화된 눈을 갖는 것이 어려운 일인데, 과연 나를 향한 객관적 눈을 가질 수 있을까. 목사님은 어떻게 객관화를 했나.

말씀에 자신을 비춰 보는 것이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말씀을 설교 재료로만 쓴다면 그 목사는 이미 영성을 떠난 것이다. 오늘 어떤 집에 심방 가는데 필요한 말씀이 뭔가 찾기 시작하면 영성과는 이미 멀어진 것이다.

목사에게 있어 말씀은 자기를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말씀으로 내 관절과 내 골수를 내가 먼저 쪼개야 한다. 그 거울로 나를 비춰 보고 나를 객관화할 때 바로 그 경험이 설교로 공유되는 것이다. 그 설교가 교인의 가슴을 움직이지 않겠는가.

단순히 성경을 설교하기 위한 재료와 수단으로만 삼는다면, 아무리 좋은 예화와 편집이 있다 할지라도 공기 진동에 불과하다.

▲ 이재철 목사는 한국교회가 말씀만으로 새로워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신 목회자들에게 가르친 것을 먼저 행하는 목사가 되어 달라고 주문했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 위기의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회복될 것이라 보는가.

만약에 가르치고 배우는 의미의 말씀이라면 아마 힘들 거다. 이미 말씀 공부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말씀을 가르치는 그 목회자가 먼저 행하면, 행하면! 말씀이 역사한다.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단순히 공기에 진동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씀을 가르친 대로 (그 말씀을) 먼저 행하면 삶을 주는 것이다.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전해졌다. 예수님이 회당 안에서 가만히 앉아서 3년 동안 가르쳤으면 그 말씀이 어떻게 우리에게 로고스가 되고 레마가 되겠나. 예수님은 말씀대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죽음을 깨뜨리셨기 때문에 그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말씀을 행한다는 것은 내 손과 발에 말씀을 집어넣어서 내 손과 발이 말씀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그렇게 사는데 그 말씀의 생명력이 사람을 회복시키지 않고, 교회를 회복시키지 않는다면 우리 예수 믿지 말자. 그건 거짓말이다. 성령의 감동으로 쓴 것이 아니라 사람이 쓴 거다.

2,000년 동안 수없이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이 말씀에 자기를 던졌다. 말씀은 인간이 쓴 소설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에 바울도 이 말씀을 행하기 위해 참수형당해 죽은 것이다. 말씀대로 행하라. 된다.

- 교회에서 다른 목사 아내를 '사모'라는 명칭 대신 집사, 또는 누구누구 엄마라고 부른다고 들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나는 늦은 나이에 신학교에 가서 교인 입장에서 오래 있었다. 교회를 다니며 '아 저건 아닌데'라고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젊은 목회자가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 아내를 '사모'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제 사회 경험상 젊은 사람이 자기 아내를 사모라고 부르는 경우는 목사밖에 없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건 여러분들께서 유념해서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목사만 모르지 교인들은 다 우습게 생각한다.

▲ 이재철 목사는 흙수저·금수저라는 키워드도 언급했다. 그는 20대가 뿌려야 할 씨를 뿌리도록 돕는 것이 목회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 부목사가 성경에 비추어 합리적·이성적·변혁적인 의견을 제시한다. 하지만 담임목사가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부목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싸움, 그럼에도 반드시 이겨야 할 싸움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여러분이 함께 사역하고 있는 담임목사를 비판만 하면, "며느리가 시어머니 욕하다가 나중에 시어머니 된다"고, 여러분도 똑같이 된다. 이 세상 모든 상대는 내가 배우고자 하면 다 선생이 된다. 한쪽은 반면교사가 되고, 한쪽은 진면교사가 되는 것이다.

만약에 여러분 담임목사가 성경에서 떠난 사역을 한다, 그러면 그것을 낱낱이 기억해야 한다. 나중에 내가 담임목회를 할 때 이런 것 절대 하지 않겠다, 결심하고 지금부터 여러분이 여러분과 싸우고 만들어 가야 한다. 지금 사회적으로 교계적으로 목사들은 신학교 졸업하자마자 담임목사 했나. 아니다. 다 전임목사 거쳐서 담임목사 됐을 텐데, 남 비판만 하고 자기와의 싸움에 져서 자기를 준비하지 못했을 때 똑같은 일이 또 벌어지는 것이다.

현재 담임목사에게서 저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는 부분이 보이면, 지금부터 여러분 스스로 그런 부분이 있는 것을 고쳐 가야 한다. 그래야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뛰어넘는 목회를 할 수 있는 것이다.

- 작년 12월 <중앙일보>와 대담에서 청년들에게 "직선적 삶, 남을 의식하지 않는 삶을 살라"고 했는데, 현실적으로 한국 사회는 출구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다양화된 상황 속에서 선택이 어렵다. 이런 현실에서 현실의 문제를 그냥 두고 다양성을 바라볼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오늘날 20대만 어려웠던 것 아니다. 일제강점기 20대는 끌려가서 죽었다. 해방 이후 찢어지게 가난했다. 한국전쟁 터지면서 20대가 나라 지키기 위해 산화했다. 60년대 보릿고개, 흉년이 들었다. 먹을 것 없어서 나무 껍질과 뿌리 삶아 먹었다. 민주화 위해 희생했다. 살 만했는데 IMF가 터졌다. 여러분 언제 20대에게 편한 때가 있었나. SNS에 속지 말라. 지금 20대가 가장 어려운 것처럼 이야기하는 언론의 무책임성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동안 20대는 어려웠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 내가 뿌려야 할 씨를 뿌리고 때가 됐을 때 그 열매를 거두는 젊은이들에 의해 오늘 세상이 바뀌었다. 흙수저·금수저, 옛날에도 다 있었다. 도가 지나칠 뿐이다. 경제 정의 이뤄야 한다. 경제 정의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치·사회 정의 이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20대가 '그거 다 이루어 주세요. 좋은 직장 있도록 해 주면 그때 (직장에) 가겠다' 이거는 아니다.

이 상황 속에서 교회는 20대에게 뿌려야 할 씨를 뿌리고, 가야 할 사막에 강을 내야 한다. 남을 비판하고 남이 상 차려 주면 가겠다고 하는 20대를 만들면 교회가 미래를 소망 없게 만드는 것이다. 20대 90% 이상이 대학 졸업장 갖는 나라가 어디 있나. 1년에 대학 졸업하는 사람이 40만 명 정도인데, 그중 절반이 삼성에 응시하는 병적인 나라다. 교회 지도자들은 그런 젊은이들의 생각을 바꿔 줘야 한다.

그래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지금은 한 분야에 삶을 던지면 사무직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시대가 아닌가. 그런데 사무직으로 책상 앞에 앉지 않으면 패배자인 것처럼 만들었다. SNS가 그렇게 만들고 '헬조선' 이런 단어, SNS에서 무분별하게 쓴 단어를 일반 언론이 가져다 쓴다. 교회 목사들이 설교하면서 그 단어를 쓴다.

기독교인은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는 사람이다. 그런 도전 의식을 심어 줘야 한다. 오늘날 청년 문제를 놓고 기독교인 정치가는 정치·경제 개혁 당연히 해야 한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금수저·흙수저 타령이 아니라 이 시대 속에서 경제 정의를 구현함과 동시에 내가 얼마나 근면하게 내 생을 살아갈 것인가, 지금부터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교회 지도자들이 해야 한다. 그런 도전 의식만 심어 주면 미래에 소망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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