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것들의 노래>/ 정재헌 지음 / 행복미디어 펴냄 / 708쪽 / 2만 7,000원

고 이용도 목사!

참 기구한 인생이었다. 그의 신앙적 양태가 어쨌든 하나님밖에 몰랐던 이용도가 왜 한국교회의 이단의 괴수가 되었을까. 아닌데 그렇다고 해도 문제고, 그런데 아니라고 해도 문제다. 그간 이용도에 흠뻑 빠져 이용도의 실제 모습 찾기에 생을 건(?) 정재헌이 또 일을 저질렀다.

자그마치 708쪽짜리 책을 들이밀며 "이용도가 이래도 이단이냐?"고 묻고 있다. 책 이름은 <주의 것들의 노래>(행복미디어)다. 저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과 통합이 이용도 목사를 이단으로 정죄한 1933년부터 이용도가 얼마나 왜곡되어 이단으로 굳혀져 지금까지 내려왔는지 사료들을 들이밀며 변호하고 있다.

저자는 이미 <이용도 목사 평전>·<이용도 목사 시편>·<이용도 목사 365 묵상집>(행복미디어) 등으로 벌써 여러 편의 이용도 목사 관련 서적들을 잇달아 출간하고 있다. 저자의 열정에 행복미디어 정우택 대표가 우직하게 힘을 보태고 있다. <이용도 목사 평전>은 필자가 '버림받은 목사 이용도, 그가 진짜였다'라는 서평으로 몇몇 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다.

저자 정재헌의 헌신

▲ <주의 것들의 노래>의 저자 정재헌

시무언선교회 간사인 저자 정재헌은 기타리스트로 현대음악을 전공한 사람이다. 유럽 자전거 여행 중 은혜를 체험하고 성경에 두 손을 바치고자 결심하고 미국의 신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선교사로 활동하다 이용도 목사 원고 복원의 사명을 받고 캄보디아 도서관을 뒤지면서까지 이용도 목사의 원고 복원과 명예 회복에 힘을 다하고 있다.

내가 이리 장황하게 정재헌을 소개하는 것은 그가 앞으로 저지를(?) 일들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어느 대학교수나 학자들 못지않게 '이용도' 하면 '정재헌'이 떠오르게 될 것을 감히 예언한다. 지금 그의 열정이라면 분명히 그렇게 되고 말 것이다.

이용도 목사 이단론을 조목조목 반박한 708쪽의 <주의 것들의 노래>나 1064쪽짜리 <이용도 목사 365 묵상집 - 진리를 드소서>는 그만큼의 열정이 없으면 엄두도 못 낼 작업이다. 일단 책을 받아 든 순간 그 부피에 입이 쩍 벌어졌다. 물론 쪽수를 줄여 출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하나하나 조목조목 뒤틀리고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두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책은 "이용도 목사의 역사는 어떻게 굴절되어 왔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오늘날 이용도 목사에 대한 의견은 두 가지로 양극을 이룬다. '성자라고 불릴 만한 인물'이라 말한 이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다. 피도수 미국 선교사는 '100년에 한 번 나올 인물'이라며 존 웨슬리나 성 프란시스와 비교했다. 역사신학 교수인 송길섭 박사는 '한국교회의 개혁자'라 했고, 외에도 '작은 예수', '한국적 영성가' 등 좋은 평가를 한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용도 목사를 이단으로 보는 이들은 '극단적인 신비주의자', '도덕 폐기론자', '무교회주의자', '영육이원론자', '이단의 원조', '피가름이나 혼음파의 조상' 등으로 몰아붙인다. 고인이 된 이용도 목사는 말이 없다. 작금 그에 대한 명예 회복 움직임이 감리교회 내에서도 일고 있다. 이런 차에 나온 <주의 것들의 노래>는 이용도 목사를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이용도 목사, 이단 꼬리표 없애기

1933년 9월 22회 장로교 총회가 "이단으로 간주할 수 있는 단체(이용도, 백남주, 한준영, 이호빈, 황국주)에 미혹되지 말라"고 결의한 이래 지금까지 이용도 목사는 '이단'이란 꼬리표를 달고 있다. 저자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이 결의는 죄목도 없고, 해명 기회도 주지 않았으며, 5명을 잘못 묶었다고 말한다.

"총회의 이용도 목사 이단 정죄의 결함은 첫째, 그가 왜 이단이 되는지 이유를 밝혀 놓지 않은 채로 이단이라고만 박아 놓은 불법. 둘째, 이단 판결을 내리기 전에 해당자들에게서 말을 들어 봐야 할 의무를 저버리고 또한 해명의 권리를 당사자들에게서 박탈한 비법. 셋째, 정죄하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기본 사실관계에서조차 틀리니 그 연구 조사를 신뢰하기에는 틀린 일이라는 절망." (23쪽)

저자는 이용도 목사 이단 정죄의 원류를 민경배의 <한국기독교회사>·<교회와 민족>(연세대학교출판부)으로 보고 있다. '신비주의자 이용도'라는 용어가 '이용도 목사 이단'으로 발전한 과정을 사료를 들어 검증하고 있다. 정작 민경배 박사는 저자와의 대화에서 이용도 목사를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대는 이용도를 이단으로 확정하는 데 박사님의 연구를 활용했으니 이는 어찜인가"(224쪽)라며 통탄해 한다.

장로교회의 총회 결의 이후 최삼경, 박응규, 안수강, 박영관, 정성구, 이민성 등으로 이어지는 이용도 이단 연구들이 모두 이용도의 설교문이나 기도문, 혹은 문학 작품들에 근거한 연구가 아니라 민경배 박사의 저서들이 원전인 양 인용되면서 재생산되었다고 지적한다. 원전 아닌 원전에 의거해 연구된 이용도 이단 연구는 근거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이용도가 주장하지 않은 걸 주장했다고 말하고 "그래서 이단이다"라고 한다는 뜻이다. 사랑이 따르는 믿음을 강조한 걸 가지고 믿음보다 사랑의 공로주의를 강조했다거나, 이용도가 그리스도의 보혈을 강조한 "모든 인간들은 그의 피의 주사로만 신생할 길을 밝히 봄이었느니라"(이용도 서간집)라는 말을 피가름이나 혼음파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단 몰이가 주로 지적하는 이용도가 "사탄에게도 배울 게 있다"고 주장했다는 것에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타고르의 <기탄잘리>를 인용해 서신을 주고받은 걸 오해해 '성애적 신비주의자'라고 몰아붙이는 우를 범했다고 지적한다.

"이용도 자신의 글에 의하면 '당신의 손이 나를 만지매'에서 '나'는 이용도가 아니라 앞서 말한 '조그만 갈대 피리'로 봐야 한다. 임의 손이 그 피리를 불 때 피리(나)는 황홀한 소리로 노래하는 청각적 이미지다. 이를 성애적 이미지로 인식하는 이들의 시각과 발상이야말로 성애적이지 않은가." (147쪽)

책은 부록으로 '스베덴보리주의(Swedenborgianism)'까지 다루고 있다. 이는 과학자이며 철학자였던 스베덴보리가 체험한 신비주의를 일컫는 단어다. 1934년 김인서가 이용도를 백남주, 한준명과 함께 이단으로 몰며 '접신녀'와 '스씨설'과와의 연관성을 제시했는데, 바로 '스베덴보리주의'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자는 이용도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고자 한다. 책을 읽으며 터득한 게 있다면 원전을 찾아 연구하는 태도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원전 아닌 원전으로 연구되어 확대 재생산 되는 게 위험하다. 그 희생양이 바로 이용도 목사다. 감리교에서 내린 이용도 목사 휴직(본인이 건강문제로 원한 것)이 파면이 되고, 파면은 금족령이 되고, 금족령은 급기야 이단이 된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이지만, 혹 이용도 목사가 기도를 많이 하고, 가는 곳마다 기적이 일어나고, 부흥이 일어나니까 그만한 기도 생활과 능력 있는 사역을 할 수 없었던 다른 목사들이 시기, 질투하여 '이단'으로 묶은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