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남 얘기라 생각했어요. 누가 국회의원이 되든 나와 별 관련 없다 생각했죠. 지역구 국회의원은 재개발과 미래창조과학부 유치를 업적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삶이 변한 건 없어요. 오히려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소중한 친구들이 아파트 재건축으로 동네를 떠나야만 했죠. 그래서 고민했어요. 그들이 말하는 '정치'가 과연 뭘까."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4월 13일 20대 총선에서 경기 의왕·과천 지역구에 출마하는 녹색당 홍지숙 후보는 여덟 살부터 과천에 살았다. 그녀의 삶은 정치와 거리가 멀었다. 학교와 교회를 오가며 지냈다. 디자인학과 졸업 후 출판사 편집디자이너로 활동하다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홍 후보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14년 과천시장 선거부터다. 과천에서 8년 동안 시의원으로 활동한 서형원 후보(녹색당)가 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홍 후보는 정치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없었지만 교회 후배, 동네 친구들과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서 후보가 시의원으로 재직할 때 보여 준 새로운 정치에서 희망을 봤기 때문이다. 홍지숙 후보는 이 기간 동안 과천에 뿌리내린 풀뿌리 시민운동, 지역 정치 운동을 알게 됐다.

선거를 마친 후 과천 녹색당 활동가로 일했다. 활동가로 지내며 지역과 시민운동 역사를 배웠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꼭 국회의원 후보를 내야 하나, 지역 당원들과 함께 고민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둘러봐도 표를 줄 만큼 같은 뜻을 품은 사람은 없었다. 생태·환경보다 개발에 무게를 두는 후보뿐이었다.

▲ 홍지숙 후보는 자신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평범한 사람이 왜 정치하겠다고 나선 걸까. 그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알다시피…나는 참 평범한 사람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 누가 후보로 나설 것인가? 이 문제를 놓고 녹색당 당원들과 여러 차례 토론했다. 홍지숙 씨도 출마를 권유받았지만 망설였다. 정치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정책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닌데, 내가 과연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논의 끝에 홍지숙 씨가 후보가 됐다. 이왕 후보로 뽑혔으니 마음을 바꿔 먹었다. 평범한 사람도 정치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싶었다. 후보 얼굴과 이름, 경력에만 의존하는 기존 선거운동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으로 선거에 임하고 싶었다.

홍 후보는 '평범'을 강조한다. 나와 상관없는 특별한 누군가가 아닌 내 옆에 있는 평범한 사람도 할 수 있는 게 '정치'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대형 현수막을 거는 대신 매일 한두 시간 길거리로 나섰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사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다.

'정치 혐오' 깨고 싶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발견한 것이 있다. 뿌리 깊은 정치 혐오다. 동네마다 다르지만 국회의원 후보라고 하면 대부분 혀를 끌끌 차며 돌아섰다. 특히 젊은 사람과 나이 드신 여성들이 '정치인' 자체를 싫어했다. "지금이야 이렇게 행동하지만 당선되면 다 나 몰라라 할 거면서." 혐오와 불신이 느껴졌다.

"그런 분들께 혼자 정치하려 나온 것이 아니니 같이하자고 말씀드려요. 누군가에게 정치를 맡겼는데, 잘 안 됐잖아요. 남에게 맡길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거죠. 정치는 결국 관심에서 시작하잖아요. 정치는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다는 설명을 자주 드려요."

▲ 길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면서 뿌리 깊은 정치 혐오를 느꼈다. 홍지숙 후보는 누군가에게 맡겨 놓지만 말고 '함께 정치하자'고 외친다. (사진 제공 루카)

홍지숙 씨는 후보로 있는 동안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며 정치에 대한 혐오를 조금이나마 줄이는 것이 목표다.

"어떤 사안이 있으면 내 의견을 말하고 내 이야기가 반영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요. 우리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듣는 훈련의 장이 없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계속 시도해 보고 싶어요."

그는 평일 저녁에 의왕·과천 지역을 돌며 정당 연설회를 한다. 꼭 지역과 관련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녹색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전달하는 자리다. 하지만 몇 번이고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평화를 이야기할 때는 "그래서 개성공단을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라는 말을 들었고, 탈핵을 말할 때는 "국가가 하는 일을 왜 막아!"라는 말을 들었다.

성경 공부하다 교회 밖으로 눈 돌려

홍 후보는 '열심' 기독교인이다. 교회에 다니며 말씀대로 사는 것이 뭔지 고민했다. 특히 '청지기 정신', 이 세상에서 누리는 것들은 내 것이 아니라 잠시 맡겨진 것이라는 말씀에 꽂혔다. 하늘에 보화를 쌓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 갔다.

성경을 읽을수록 궁금한 점이 많아지던 시절, 새로 부임한 청년부 전도사가 홍지숙 후보의 삶을 흔들었다.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성경 공부 시간이 되면 만사 제쳐 두고 교회에 갔다. 성경 공부가 재밌었다.

그렇게 홍 후보는 조금씩 교회 안에서 밖으로 눈을 돌렸다. 교회를 다니며 거리를 뒀던 '세상'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삶의 현장, 고통의 현장을 돌아봤다. 돌아볼수록 정치에 침묵하는 교회가 눈에 밟혔다.

"신앙과 정치는 뗄 수 없어요. 삶이 곧 신앙인데 우리 삶과 정치를 어떻게 떼 놓을 수 있겠어요. 한국교회는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을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데는 열심이죠. 하지만 시스템 안에서 순응하려 하지 균열을 내려고는 하지 않아요. 그렇게 하면 근본적인 변화가 어렵지 않을까요. 뭘 해도 스스로 만족하고 위로하는 정도겠지요."

▲ 성경을 읽으면서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 잠시 맡겨진 것이라는 '청지기 정신'에 꽂혔다. 생태와 환경을 이야기하는 녹색당의 가치에 공감했다. (사진 제공 루카)

20대 후반이 되며 다니던 교회와 거리가 멀어졌다.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언제 결혼하느냐'고 물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교회 안에서는 하자 있는 사람, 숙제 안 한 아이 취급받으며 훈계를 들어야 했다. 결혼이 늦어진 또래들도 비슷한 이유로 교회를 떠났다. 교회에서는 새로운 도전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한국교회를 정의하자면…세상보다 더 세상 같은 곳. 끊임없이 서로 비교하죠. 성적, 옷차림, 경제력을 비교하며 형편이 나은 사람은 하나님 복을 더 많이 받았다고 여겨요. 하나님의 뜻이라며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고요. 과연 그게 하나님 뜻일까 생각해요."

국회의원 한 명 배출한다고 얼마나 달라질까

녹색당은 성 소수자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홍지숙 후보는 이 주제에 대해 생각을 정립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저도 기독교인이니까 교회 주장은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성 소수자가 사회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인권을 지키려고 하는 것을 보며 그들의 절박함과 진정성을 느꼈어요. 예수님이 지금 한국에 오신다면 과연 누구 곁으로 가실까요. 핍박받는 성 소수자에게 가시지 않을까요. 스스로의 삶을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도록, 서로 침범하지 않는 게 좋은 것 같아요."

▲ '함께 정치하자'는 홍지숙 후보가 내거는 주요 슬로건이다. 평범한 사람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사진 제공 조준기)

성 소수자에 대한 생각은 '정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도 일맥상통한다. 홍지숙 후보는 결국 정치를 소통이라 본다. 대한민국이라는 좁은 땅덩이에서 한정된 자원을 갖고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는 것. 사회 구성원이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고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 것. 이것이 평범한 이웃 홍지숙 후보가 생각하는 정치다.

"녹색당 국회의원 한 명이 국회에 들어가도 뭐가 바뀔 수 있겠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과천 시의회에서도 야생화자연학습장을 유지하기 위해 소수의 시의원이 지역 사회와 함께 다른 시의원들을 압박한 적이 있어요. 소수라 하더라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거든요.

최선을 다해 선거에 임하겠지만 꼭 제가 당선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지만 녹색당 국회의원은 꼭 배출되면 좋겠어요. 녹색당 가치에 동의하는 다른 당과 연대할 수 있다면, 국회가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을까요."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