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는 2월 13일부터 "박상현의 누군가를 위한 '사이다'"라는 제목으로, 박상현 선교사의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박상현 선교사가 탄자니아 현지에 있으면서 겪은 일이나 선교에 대한 소회 등을 나눌 예정입니다. 매월 둘째 주, 넷째 주 토요일에 글이 게재됩니다. - 편집자 주 

'개발'에 관한 선입견

언제부터인가 돈 있는 한국 기업과 사람들이 기부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문화가 되어 버렸다. 우후죽순으로 각 기업에 '사회적', '지속 가능'이란 단어를 남발하는 부서가 생기기 시작했다. 웬만한 대형 교회들도 선교 전략 차원으로 재단이나 NGO(비정부기구)를 설립해 '개발', '선교'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차후 연재를 하면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학부 때 NGO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글로벌거버넌스(Global Governance)를 공부하는 나에게 '개발'은 대단히 복잡하고 미묘한 단어다. 개발을 무조건 좋은 것이라 생각했던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또 깊이 공부하면서 긍정적인 부분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본국 사역 기간에 많은 책을 읽었다. 그중 필립 맥마이클의 <거대한 역설>(교양인)과 아마르티아 센의 <자유로서의 발전>(갈라파고스)을 집중해 읽은 것만으로도 얕은 지식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전에는 어렴풋이 사전에서 얘기하는 타동사로서 '개발'(연구하여 새로 만들어 내다. 개척하여 유용하게 만들다) 정도만 알고 있었다.

20대에 수많은 제3세계 국가를 방문하고, 최근 6년간 아프리카에서 살면서 머리를 떠나지 않은 생각이 있었다.

'NGO와 EDCF(대외경제협력기금),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자원봉사자, 선교사와 같은 이 땅의 모든 돕는 세력이 어느 순간에 떠나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오히려 자립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머리로만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행동하기 시작하며, 작은 것부터 자발적인 배가를 일으키지 않을까.'

마사이족이 한 손에는 창을 들고, 한 손에는 모바일 폰을 들고 다니는 세상이다. 창과 모바일 폰 사이의 모든 중간 과정이 생략되었다. 그 누구도 그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새로운 기술과 완성된 물건을 들고 들어와서 그들에게 건네주기 바빴을 뿐이다.

맥마이클은 말했다.

"개발에 대해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않는 이상 우리가 하고 있는 개발은 그 실체도 분명치 않으며 그 목표나 효과를 모른 채 그저 빛 좋은 개살구처럼 한 국가를, 사회를, 지역을 발전시키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지게 한다." (필립 맥마이클, <거대한 역설>)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 센, 국제 개발 분야의 석학 맥마이클이 풀어놓은 개발에 관한 생각과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를 읽어 내려가면서 상상해 봤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독자가 비슷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까.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누구를 위해서?'

나는 필드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탄자니아 동네 청년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다

탄자니아연합대학에서 태권도 교수로 학생들은 가르치던 나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집 앞에 건장한 현지 청년들이 찾아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개별적으로 태권도를 배우고 싶어 하는 동네 청년들이였다.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새로운 것을 배울 기회가 없는 그들에게 '태권도'는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좋은 도구였다. 평소 중국 영화를 접한 이들이 그냥 '날아다녀 보고 싶어서'(?) 찾아온 것은 분명했다. 늘 봉술, 쌍절곤, 기계체조 같이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것에만 관심을 보였으니 말이다.

나는 흙바닥에서 청년들을 가르쳤는데, 몰려드는 학생들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업을 나누지 않고 운동의 강도를 높였다. 한 달간 인사를 시키고, 체력 훈련과 제식훈련, 예절 교육을 집중했다.

그랬더니 청년들이 훈련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열댓 명이 남았는데, 이들은 모진 훈련을 잘 버틴, 정말 태권도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 하는 알짜배기들이었다. 열정 하나만큼은 최고였다.

▲ 집 앞에 찾아오는 동네 청년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사진 제공 박상현)

이들을 데리고 본격적으로 태권도를 가르치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 한 명이 높이 찍어 차기를 하다가 뒤로 발라당 넘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너무 강하게 지면과 부딪히는 바람에 뇌진탕이 왔다.

제대로 된 장소가 없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수업하다가 부상당하는 것을 많이 봐 왔던 나에게 그 사건은 그동안 고민하던 큰 문제를 해결하는 결심을 하게 된 좋은 계기가 되었다. 내가 고민하던 문제란, 모든 선교사가 필드에서 겪게 되는 보편적인 것이었다. 바로 선교사는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인식에 대한 문제였다.

선교사라는 직책이 사람을 참 쪼잔하고 가난하게 만든다. 좋은 차를 타면 안 될 것 같고, 좋은 집에 살면 안 될 것 같다. 늘 얻어먹어야 할 것 같고, 무조건 '없이' 시작해야 할 것 같고…. 이유도 모른 채, 나 역시도 재정의 압박에 시달리는 평신도 선교사라 전기도 없는 집에서 살고 있었다.

함께 사역한 선배 선교사들에게 조언을 구하면, "한국도 예전에는 그랬다", "우리도 다 겪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3년을 살다 보니, 스스로 강퍅해진다. 선교사 사역이 아니라 그냥 '교회’라는 회사에서 파견 나와 한국교회에서 하는 사업 중 하나인 선교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게, 사역을 위해서는 아내와 딸 모두 희생시켜야 하는 줄 알았던 나는 모든 열정을 일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발생한 모든 스트레스가 가족, 현지인, 동료에게 흘러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면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며 한참 고민하고 있던 시기였다. 

다행히 응급처치를 잘해서 그 친구가 깨어났다. 나는 이 사건 이후로 마당에 잔디가 깔려 있는 집을 구하기 시작했고, 새로 구한 집의 마당에서 그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생각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이제는 필요한 곳에 아낌없이 쓸 게요"라는 다짐과 함께.

감사하게도 우리를 파송한 기관에서 이자 없이 마이너스 통장을 해 줬다. 우리는 최대한 유연하게 그 기능을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뒹굴면서 땀을 흘렸다. 재정에 얽매이지 않았다.

잔디 위에서 태권도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자들의 실력은 시범단을 창단할 정도로 일취월장했다. 그중 두 명은 탄자니아 태권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아프리카 국제 태권도 대회에서 금메달과 4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내가 탄자니아로 향하면서 제일 중요하게 여긴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지속 가능한가', 두 번째는 '자발적인 배가가 이루어지는가', 세 번째는 '토착화(현지화)되었는가'다. 어려운 일이다. 돈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삶으로 보여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영향력이 있다는 생각이 늘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공사장에서 일당 받으며 벽돌을 나르는 친구, 감자를 사다가 값싼 기름에 튀겨 팔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친구, 그런 일거리도 없어 하루 종일 가만히 집 앞에 앉아 있는 친구…. 대부분이 내 제자였고 단원이었다.

"필요하면 너희들이 지어"…보이지 않는 움직임 볼 수 있는 시야 필요해

우리 팀의 리더 M이 어느 날 시내의 국제 학교에서 '방과 후 교실'에 태권도를 개설하는 엄청난 일을 해냈다. M이 그 학교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그 학교의 정교사 월급보다 많았으니 엄청난 이슈였다. 그리고 M은 시내 8개가 넘는 국제 학교에서 똑같이 '방과 후 태권도 교실'을 개설했다.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M이 모든 학교를 독점하는 게 아니라 일자리가 없는 우리 단원을 '방과 후 교실'에 한 명씩 배치하는 것이었다. 소름 돋는 리더십이었다.

사실 M은 다른 선교사의 사이트에서 사고를 많이 친 문제아이자 골칫거리였다.

▲ 선교를 하면서 세 가지를 가장 중요하게 봤다. '지속 가능한가', '자발적인 배가가 이루어지는가', '토착화(현지화)되었는가'. (사진 제공 박상현)

M이 나를 찾아왔을 때, 그를 고용했던 선교사님이 절대 M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당부까지 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그가 어떤 문제를 일으켰든지, 선교사인 우리마저 선입견을 갖고 그들을 품지 못하면 이들을 대체 누가 품겠는가.

나는 정중하게, 잘 가르치고 훈련시켜 보겠다고 말씀드리고 M을 받아들였고, 열심히 하는 M을 보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팀의 리더로 세웠다. 리더로 세우자 M의 내면에 잠재된 리더십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단원들이 자립할 수 있는 물꼬를 틀게 되었다.

그렇게 단원들이 자립하기 시작했다. 각 지역과 마을에서 태권도 클래스를 오픈해 가르치고 있다. 나는 열댓 명을 양성했을 뿐이다. 그런데 현재 이들이 학교와 각 지역에서 가르치는 제자들은 근 2년 사이로 1,800명이 넘었다.

나는 현지인은 현지인이 가르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빠르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어느 정도 자립을 이루고, 내가 자리를 비워도 태권도단이 알아서 잘 굴러가게 될 때쯤 단원들이 나를 찾아와서 물었다. 요컨대 왜 체육관을 건축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사실 흙바닥에서 수업할 때부터 주구장창 주문해 왔던 것이다. 다른 선교사와 기관은 땅도 금방 사고, 교회, 유치원, 보건소, 학교까지 짓는데, 왜 사범님은 체육관 하나 짓지 못하느냐고 했다. 그 요청에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너희들이 필요하면 너희들이 지어."

난 2년 넘게 같은 요청을 받았고, 똑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M에게 모든 리더십을 이양하고, 한국에서 1년간 쉬기 위해 그간의 사역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M이 따로 나를 찾아왔다. 모바일 폰을 꺼내더니 사진을 하나 보여 줬다. 그냥 허름한 벌판이었다. M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그동안 태권도를 가르치면서 번 돈으로 이 땅을 샀어요. 제가 이곳에 체육관 지을 게요. 그래서 이제는 제가 태권도를 가르치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사람들이 배우러 오게 할 게요."

그날 밤, 한참을 울었다. "너희들이 필요하면 너희들이 지어"라고 말할 때마다 힘들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을 수 있지만. 돈 있는 사람이나 돈 있는 국가가 뚝딱 지을 수 있지만, 그런 상황에서 자금을 풀지 않고 이들이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고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것이 참 힘들다.

보이는 결과에 치중하고, 평가하는 것은 세상의 이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움직임(movement)을 볼 수 있는 시야(perspective)가 필요하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개발의 가장 첫 단계다.

누구를 위한 선교인가

탄자니아로 떠날 때, 한 원로목사님이 우리 가정에 조언했던 것이 생각난다.

"박 선교사, 잘 놀다 와. 선교는 그들과 함께 노는 거야."

아프리카로 가는데 잘 놀다가 오라는 조언이 와 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척박한 땅에서, 고생해야 하고, 희생해야 하고, 아파야 하고, 견뎌야 하고…. 이런 고정관념으로 가득 차 있을 개척자를 향한 조언치고는 너무 뜬금없는 소리 아닌가.

필드에서 3년째 사역을 하던 해에 나는 그 말뜻을 온전히 이해했다. 필드에서 그들과 함께 노는 것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선교지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노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진 제공 박상현)

그들을 가르치고, 지시하고, 늘 갑의 위치에서 팔짱 끼고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 가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뒹굴고, 땀 흘리며 즐겁게 노는 사람들은 찾기 힘들다. 선교사든지, 봉사자든지, 그 어떤 개발 NGO의 구성원이든지 말이다.

우리가 그들을 돕는다(?)는 이유로 쏟아붓는 자금들이 당장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보일지 모른다. 가시적인 성과들로 우리는 만족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그런 지원이 오히려 그들의 자립을 막고 있다는 생각도 같이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마냥 주는 것에 익숙해 있지는 않은가. 마찬가지로, 그들은 받는 것에 익숙해지다 못해 선수가 되고 있다. 그런 느낌도 지울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거대한 역설>에서 맥마이클은 개발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변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세상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개발 분야도 어떤 것이 좋은지 평가와 진단이 다 다르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는 개발, 선의를 품고 실천만 하면 달성되는 개발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누구를 위한 개발인지, 어떤 성격의 개발인지 반드시 짚어 봐야 한다.

선교도 마찬가지다. 누구를 위한 선교인지, 어떤 성격의 선교인지를 짚어야 한다. 다양한 방법으로 남은 인생 전부를 드리겠다고 선교 현장으로 떠나는 사람이 있다. 봉사단원이나 개발 NGO 직원으로, 국제 협력 단원으로 제3세계로 향하는 사람도 수없이 본다.

이들의 동기와 마음을 감히 평가할 자격은 없다. 다만 말하고 싶은 것은 '나를 위한 행위인가', '그들을 위한 봉사인가' 점검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선교사와 파송 기관, 교회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잘못하면 예수님으로 시작한 일로 예수님을 오해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원조는 미래를 파괴하고 자립을 막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필자가 아프리카에서 사역하다 보니 아프리카 생활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있다. 그렇지만,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는 대부분이 제3세계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가 되리라 생각하면서 결론을 낼까 한다.

부유한 국가들에서 아프리카 대륙 각 정부로, 대규모 자금이 체계적으로 이동하는데, 양허성 차관이나 증여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와는 또 다르게 수많은 NGO와 선교 자금 형태로도 돈이 흘러 들어간다.

문제되는 것은 그들에게 막대한 원조 자금을 풀고 있는 수원국이 차관과 증여의 차이점을 얼마나 제대로 인지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더불어 수많은 NGO와 '그들을 위한' 개발(선교)이란 목적으로 어마어마한 헌금을 쏟아붓고 있는 기독교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역을 진행하고 있는가. 단순히 일단 없으니 도와준다는 개념에 국한해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렇게 진행하기 바쁘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그것도 빨리빨리.

대규모 해외 차관이 매우 높은 양허율로 제공되고, 빚을 자주 탕감해 주면 빈곤국의 정책입안자들은 차관을 거의 증여와 동일한 것으로 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원조 차관과 증여를 구분하는 것도 실질적으로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최근 몇 십 년간 아프리카 원조 형태는 국제 사회의 이러한 시각, 즉 차관과 증여가 뚜렷하게 다르지 않다는 시각과 함께 굳혀지는 것처럼 보인다. 담비사 모요는 <죽은 원조>(알마)에서 원조의 형태가 차관과 증여를 합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아프리카 발전을 가로막고, 억제·지체하게 한 것이 수십억 달러의 원조라고 했다.

선교도 마찬가지다. '개발'을 두고 나뉘는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떠나, 현장에서 살아가는 선교사로서 이 같은 원조의 형태를 볼 때 모요의 생각에 동의한다. 선교사의 입장에서 선교 헌금도 다르지 않다.

보이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춘 개발과 보이는 것에 초점을 맞춘 개발은 시간이 지나면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무분별한 개발로 발생하는 후유증과 부작용은 우리와 그들의 후손을 더욱 힘들게 할 것이다.

그들을 위한다는 개발은 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이익을 위해 잘 포장된 껍데기일 수 있다. 개발은 그들의 미래를 파괴하고, 자립을 막는 괴물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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