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아브라함 카이퍼> / 리처드 마우 지음 / 강성호 옮김 / SFC 펴냄 / 216쪽 / 1만 원

쉽게 읽힌다. 하지만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짧은 호흡으로, 에세이 형식으로 개인이 경험한 선배 신앙인의 사상을 그려 내고 있고, 또한 갱신하고 있기에 그렇다. 하지만 분명히 읽어볼 만하다. 어떤 책의 이야기냐고? 바로 리차드 마우의 <아브라함 카이퍼>의 이야기이다. 아직까지도 사회·정치적 현실에서의 발언은 신앙과는 무관한 어떤 것이라는 인식과 성속이원론이 만연한 현실 가운데 '아브라함 카이퍼'는 필경 중요한 학자다. 그런 중에 리차드 마우는 '아브라함 카이퍼'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고 세밀하게 다루려는 노력은 접어 둔다. 오히려 선배를 따라 걷는 '카이퍼주의자' 입장에서 짧은 호흡으로 여러 번 카이퍼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다.

2.

"만물을 통치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인류가 존재하는 모든 삶의 영역들 중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영역은 단 한 평도 없다"(21쪽)는 것이야말로 카이퍼를 가장 잘 드러내 주는 말일 테다. 그는 목회자였고, 정치가였다. 직업을 뛰어넘어서 말하자면 신학적 사상가요, 한 명의 그리스도인이었다. 리차드 마우는 본 책을 통해서 아브라함 카이퍼의 신학적 사상과 그가 토해 냈던 그리스도인으로써의 삶의 면모를 간략히 전달하려고 애쓴다. 특별히 '1장 카이퍼 개관'에서 아브라함 카이퍼의 사상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간략하고 명확하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돋보인다.

이를테면 성속이원론에 가깝게 해석할 수 있는 칼뱅을 계승한, 칼뱅주의자 '아브라함 카이퍼'는 어떻게 일반은총론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의 여부와 상관없이 "창조하신 문화의 설계를 완성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찾아냈는지 해설한다. 또한 칼뱅주의와 상충되어 보이는 일반은총론을 '전적 타락'과 어떻게 연결해서 실천했는지도 다루고 있다. 물론 리차드 마우가 보기에 카이퍼가 깔끔하게 정리된 사상적 논지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카이퍼가 현실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충분한 모델이 되어 주고 있다는 점이다. 리차드 마우는 간략한 호흡으로 카이퍼가 위치한 삶의 자리와 분투를 잘 해설하고 있다.

3.

'2장 21세기를 위한 카이퍼'는 오늘날 카이퍼를 어떻게 계승할 수 있는지 다루고 있다. 사실상 오늘날 카이퍼를 비판 없이 계승하기에는 문제가 산적해 있다. 아니, 어쩌면 칼뱅을 비판적으로 계승했던 카이퍼처럼, 우리도 카이퍼를 비판적으로 계승할 것이다. 먼저 카이퍼를 비판 없이 계승한다면, 걸리는 문제는 '백인우월주의'이다. 당대의 '인종차별주의'에 비해서는 전향적인 입장이긴 했지만 카이퍼는 분명 흑인에 비해 백인이 우월하다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카이퍼의 이러한 입장만큼은 계승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종차별 정책 속에서 정의를 구현하려는 흑인 신학자들조차 "우리는 삶에는 단 한 평도 그리스도의 주권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아브라함 카이퍼와 마찬가지로 뜨겁게 믿는다"(131쪽)고 고백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 지점에서 카이퍼를 비판하고, 계승할 수 있다.

또한 카이퍼의 사상을 계승하기로 결심한 그리스도인들은 일상으로 보냄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만이' 하나님나라의 공간이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카이퍼의 사상을 이어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건물 바깥에 있는 더 큰 나라 속으로 보냄받는다. "주님과 홀로 사무실에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넘어 "신혼부부를 만나 보험 설계를 구상하고 있는 것"에 관심이 있으신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하게 된다. 이러한 신앙을 위해 교회도 새롭게 재편되어야 한다. 단순히 건물 교회나 제도권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이 아닌, 건물 교회 바깥의 신앙생활을 지원하고 지지하며 파송하는 기관으로 교회를 구성해야 한다. 실제 리차드 마우는 벨에어장로교회, 리디머장로교회를 예시로 들면서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카이퍼의 사상을 계승하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제시한다.

4.

본 책은 본인이 다룬 내용 이외에도 수없이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헤르만 바빙크, 레슬리 뉴비긴의 예시를 들면서 오늘날 카이퍼주의를 어떻게 계승할지, 이슬람의 응전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그리고 무례해 보이기만 하는 칼뱅주의를 어떻게 수정하고 보완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카이퍼를 해설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문화, 영역 주권, 정치 참여의 길 등의 문제를 조금씩 다루고 있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아브라함 카이퍼를 꼼꼼히 연구한 책이 아니다. 오히려 아브라함 카이퍼와 리차드 마우의 실존적 대화를 (리차드 마우 입장에서) 담아낸 책이다. 오늘날의 복잡다단한 현실 속에서 리차드 마우가 어떻게 아브라함 카이퍼를 읽어 냈는지, 어떻게 계승해야겠다고 생각하는지를 보여 주는 책이다. 어쩌면 리차드 마우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이름을 빌려 자신이 생각하는 '현실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제시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국정화 역사 교과서'와 같은 복잡다단한 사회적 이슈가 발생했을 때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단순히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것에 넘어, 어떤 방식으로 성경을 읽고 살아 내야 할까? 이에 대해 <아브라함 카이퍼>는 흐릿하지만 큰 그림 하나를 제시해 준다. 리차드 마우가 들려주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이야기에 한번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바로 오늘, 지금 이곳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을 위해서 말이다.

홍동우 / 부산장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일단은 경계해야 할 위험한 사람인지, 세상에 대하여 경계를 하고 있는 불안정한 사람인지, 혹은 온갖 경계선 위를 돌아다니는 사람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경계인'이라는 사실. 부산의 한 교회에서 청소년들과 어울리며 삶의 행복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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