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영화 '암살'을 보았다. 이미 천만 관객이 보았다고 하는데, 영화 한 편 볼 시간을 내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가. 영화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미국에 있는 작은 딸아이가 미국의 영화관에서 한국 영화 Assassination('암살'의 미국 개봉 이름)을 보았는데 정말 재미있었다고 꼭 보라고 했는데, 이제야 본 것이다.

짧게 말해, '암살'은 정말 잘 만든 영화다. 영화 평론가의 입장에서 분석한다면 어떤 평가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한국 영화를 볼 때마다 어딘가 모르게 뻔한 설정과 억지로 눈물샘을 자극하거나 교훈적인 내용 또는 과한 이야기 전개로 아쉬움이 많았었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던 영화들이 대부분 그랬다. '광해', '변호인', '국제시장', '7번방의 선물'. '명량', '괴물', '해운대',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영화 말이다. 이런 영화는 그런대로 괜찮고 재미도 있었지만, 늘 마음 한쪽 구석에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암살'은 지금까지 보아 온 한국 영화 중 제법 잘 만들어진 수작임에 틀림없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스토리도 탄탄하고 연기도 뛰어났다.

'암살'은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던 우리 민족의 독립 투쟁을 다룬 영화다. 상해 임시정부는 세 명의 암살단에게 조선 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박병은 분)와 친일파 사업가인 강인국(이경영 분)을 처단하라는 지령을 내린다. 일본의 밀정 역할을 하며 독립운동에도 가담했던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 염석진(이정재 분)은 이들을 찾아내어 죽이는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염석진의 청탁을 받아 세 명의 암살단원을 죽이는 일에 끼어들었던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분)과 영감(오달수 분)은 자신들이 죽여야 했던 안옥윤(전지현 분)이 이끄는 암살단을 돕는다. 이 설정은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과 스릴을 느끼게 한다. 계획했던 일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좌절되면서 영화의 흥미는 최고조로 달하다가 결국 암살이 성공하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해방 후, 반민특위 법정에 섰던 염석진은 유일한 증인이 살해되면서 무죄판결을 받고 나오지만, 결국 안옥윤에 의해 사살당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관을 나가는 사람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조용히 빠져나갔다.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인데 끝나고 나갈 때는 침묵이 흘렀다.

강인국은 악마의 화신이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조국도 필요 없었고, 심지어 아내와 딸도 거추장스러우면 죽여 버렸다. 염석진도 마찬가지다. 한때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이었지만 결국 일제에 손을 들고 독립 운동가들을 죽이는 일에 앞장서는 악랄한 사람이다. 이들은 친일을 통해서 권력과 부를 얻었다. 강인국이 죽음에 이르는 장면과 반민특위 재판을 교묘히 빠져나온 뻔뻔한 염석진이 사살되는 장면에서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들이 죽는 것을 전혀 동정하지 않고 오히려 희열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정의에 그토록 목말라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현실을 정반대로 그려 냈다.

해방된 한국 사회에서 반민족 행위를 했던 사람들을 처단하기 위해 만든 반민특위가 해체되고, 친일파들이 해방된 조국에서도 여전히 권력과 부를 누리게 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때 친일을 하면서 동족에게 칼을 겨누고 악랄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해방 후에도 여전히 경찰·군인·재판관으로 그리고 경제인과 정치가로 성공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냥 영화 속에서나 정의를 실현하고 싶은 게다. 그래서 슬프다. 이 영화는 너무 재미있고 통쾌해서 더욱 슬픈 영화다.

정말 그들이 현명했던 것일까. 힘 있는 사람에게 붙어 탐욕을 성취하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는 게 결국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길일까. 정말 독립운동을 하던 이들은 어리석었던 것일까. 조국을 위해서 온갖 고난과 핍박을 당했는데, 결국 해방된 뒤에도 가난과 냉대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야만 했던 그들의 선택은 정말 어리석었던 것일까.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습은 친일파는 현명했고 독립운동가는 어리석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정의를 보지 못한 자들의 절규이며 기도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이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가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염석진의 말에서 우리는 그 이유를 발견한다. 염석진은 사살을 당하는 자리에서 왜 그랬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왜 그랬냐고? 해방이 될 줄 몰랐지."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인생에 마지막이 있고 그 뒤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늘 망각하며 산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니라 이 세상의 방법대로 산다. 그래서 얻는 돈의 맛이 있고 권력의 힘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아쉽게도 우리는 현대판 강인국이나 염석진이 판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악을 행하고 편법을 사용하는 자들은 크나큰 가시적 업적을 이루었고, 규모로 판단받는 이 세상에서 지도자로 추앙받는다. 뭔가 있으니까 그렇게 어마어마한 업적을 이룬 것이라고 인정받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신실하게 주님의 뜻에 따라 사는 자들은 독립군처럼 힘들게 어렵게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고, 그래서 무시당하면서 산다. 뭔가 부족한 게 있으니까 그렇게 어렵게 사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해방은 오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심령이 가난한 자가, 애통하는 자가, 온유한 자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긍휼히 여기는 자가, 마음이 청결한 자가, 화평하게 하는 자가, 그리고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마 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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