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성경을 읽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방문을 열고 나왔는데 뭔가 휙 하고 눈앞으로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순간적으로 '성경을 읽다 보니 마귀 새끼들의 움직임까지 보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예수 이름으로 마귀 새끼들을 박멸해야겠다는 생각에 휙 하고 지나간 것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다가갔는데 그것이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었다! 한껏 장전하고 있던 예수 이름을 발사하려는 순간, 다시 보니 이건 마귀 새끼가 아니라 새 새끼였다. 새.끼.새!

기분이 말할 수 없이 더러웠다. 녀석들이 평소 우리 집 마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거나 찬송을 하거나 소그룹 모임을 할 때는 예뻐 보였는데, 원래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우리 집 안으로 들어오니 집 안의 나와 새 새끼 모두에게 최악의 상황이 되었다. 당장에 폭력으로 제압하고 싶었지만 놈은 메이웨더보다 빠르고 날쌘 움직임을 보여 대화로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여기는 네가 있어야 될 자리가 아니니 원래 자리로 돌아가라. 저기로 나가면 되니까 가만히 있어. 내가 문을 열어 줄 테니." 그렇게 대화를 시도했지만 이 새 새끼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이리저리 푸드득거리면서 날아다니는 게 아닌가. 정말 공포감이 느껴졌다. 저렇게 날아다니다 내 눈이나 코에 잽을 날리면 가뜩이나 살기 어려운 내 얼굴은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이 드니 영혼 깊은 곳에서 쌍시옷 계열 중 가장 최근에 나온 욕이 튀어나왔다.

―그만해, 이 씨방새야!!!

녀석은 도저히 못 참겠는지 숨었던 곳에서 나와 마침내 집에 처음 들어온 통로인 화장실 창문으로 출애굽 하듯 탈출했다.

끔찍한 해프닝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화장실 창문을 절대 열어 놓지 않는다. (냄새쯤이야!!) 참새가 원래 있어야 할 자리인 마당이나 전깃줄이나 숲에 있으면, 그 푸드득하는 날갯짓도 지저귀는 소리도 아름답지만, 원래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나 있지 말아야 할 자리에 있을 때 보시기에 심히 얼마나 안 좋은지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 밖에 있을 때는 보기 좋았는데

원래 있어야 할 자리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 만물을 만들고 인간을 만드셨을 때, 하나님은 그것들을 보시며 "좋다"고 하셨다. 이 본문을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나는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고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식물은 식물의 자리에, 동물은 동물의 자리에, 인간은 인간의 자리에 있을 때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 안에서 이것들이 각각 존재하고 유기체로서 조화를 이루며 보시기에 심히 좋은 것이다.

그리고 피조물 중 하나님의 화룡점정이었던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달리 이성을 선물로 받은 존재다. 그래서 동물들은 본능으로 존재하지만 인간은 본능과 함께 이성을 사용할 수 있기에, 창조 면에서 모든 피조물과 인간은 동창생이지만 동급은 아니다. 인간은 이 이성으로 다른 피조물보다 하나님을 더욱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이 이성 때문에 자신이 원래 있어야 할 위치를 망각하고 에덴동산의 일진이 되어 다른 피조물들을 꼬붕 삼고 결국에는 하나님까지 야릴 수 있는 가능성 역시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드신 것은 큰 배려였다고 생각한다. 에덴동산에 있는 피조물들을 꼬붕 삼아 이름도 지어 주고, '과일셔틀' 시키며 하루 종일 휘젓고 있을 때, 이 일진 아담은 핑핑 돌아가는 이성으로 '내가 맘만 먹으면 다 할 수 있구나. 다 먹어도 되고, 다 부려도 되고, 이거 완전 내가 짱이네!'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근데 그 생각은 해질 무렵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를 볼 때 놀랍게 사그라졌을 것이다. 아담은 다 할 수 있었지만 한 가지 하지 말라고 하신 그 동산 중앙의 나무를 바라볼 때에, 다른 피조물들과 동창생인 자신이 원래 있어야 할 포지션이 어디인지 깨닫게 된다. 그 앞에서 아담은 '나 역시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중 하나고, 그분을 기뻐하고 그분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구나'라고 고백하며, 흐트러진 자기 포지션을 정렬하곤 했던 것 아닐까.

선악과 앞에 설 때에 아담은 언제나 은혜로웠다. 선악과는 하나님이 저거 먹나 안 먹나 불꽃 같은 두 눈으로 지켜보시려고 만들어 놓은 바퀴벌레 약 같은 게 아니었다. 인간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를 알려 주는 아주 좋은 은혜의 방편이었다. 만약 우리 집에 교회학교 아이들 여덟 명이 놀러 왔는데 내가 잠깐 나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고 치자. "전도사님 집에서 너희가 마음껏 놀고 뭐든 해도 된다. 하지만 한 가지는 절대로 하면 안 된다. 냉장고는 건들지 마라. 너희가 이걸 여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그렇게 아이들에게 '냉장고를 안 부탁해' 하고 나갔다. 아이들은 내가 없으니 자유롭게 난리법석을 피우다가 여기가 자기네 집인 줄로 착각하게 될 것이다. 진짜 자기들 집인 것처럼 될 즈음, 집 중앙에 있는 냉장고를 보고 아이들은 내가 한 말을 떠올린다.

―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니라 전도사님 집이었지.

돌아온 씨방새

하지 말라는 그 한마디 때문에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를 알게 된 것이다. 냉장고는 은혜의 방편이 된 것이다. 근데 인간이 유혹에 넘어가서 이 선악과를 따먹게 된다. 이 유혹의 본질은 '원래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나게 하는 유혹'이었다. 유혹을 받으니 피조물의 자리에서 이탈해 하나님이 되고 싶어졌다. 이것이 '죄'가 되었고 이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떠나 하나님이 된 것이 아니라 비참한 악의 자리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원래 자리에 있었던 보시기에 좋고 아름다웠던 인간이 원래 자리를 떠나니 우리 집에 들어온 새처럼 꼴도 보기 싫은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을 때는 그냥 '새'였던 인간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는 떠나니 '씨방새'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처럼 씨방새가 되어 버린 존재는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만 행복해질 수 있는데 스스로 돌아갈 힘과 능력이 전혀 없다. 바로 이 비참과 악에 놓인 인간을 원래 자리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와 부활로 말미암아 믿는 자는 성령을 받고 거듭남과 회심을 경험하는데, 이것이 바로 다시금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씨방새 였던 내가 다시금 '참 새'(참된 새)로 돌아오는 것이 구원이다. 근데 이렇게 원래 자리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향해 살아가려고 해도 우리 안에는 죄의 뷔페를 맛봄으로 생긴 부패성이 남아 있어서 자꾸만 옛 새(?)인 씨방새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과 날마다 싸우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원래 있던 자리의 참 새로 살아가려고 하는 싸움이 성화의 과정이다.

우린 '이미'의 의미에서는 참 새가 되었지만, '아직'의 의미에서는 참 새와 씨방새 사이에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딱 '미생'이다.

그러나 미생이면 어떤가? 원래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난 완생들보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와서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 우리는, 그대는, 나는 완생보다 아름답지 않은가!!

내가 지금 있으면 안 되는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기보다
내가 지금 있어야 하는 자리에서
마음껏 흔들리자
원래 있어야 하는 자리에서
흔들리는 그대는
하나님 보시기에
흔들거리실 만큼
아름답다 

▲ 김파전의 2030 미생 이야기는 매주 화요일 업데이트됩니다. (그림 제공 이현숙)

글쓴이는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송파구의 한 교회에서 '파전'(파트타임 전도사)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동년배 직장인으로 치면 비정규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84년생 서른두 살의 김파전. 비록 전도사님이라 불리지만 세상살이는 '미생'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김파전이, 위로받아야 할 교회에서조차 미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2030들을 이야기합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신학과 이론으로 내린 정답과 같은 '제자도'가 아니라, 2015년 대한민국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젊은 크리스천이 몸부림치며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삶의 제자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삶의 제자도'라는 말은 멋지지만, 사실 실제 삶은 김파전의 '파전행전'일 수밖에 없지만요. 

김파전의 이야기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2030세대들이 겪고 있는 리얼한 삶입니다. 어렵고 힘든 미생의 삶이지만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행복을 발견해 가는 이야기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제목은 파트타임 전도사(파전)의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행전)라는 뜻으로, '파전행전'이라 지었습니다. 매주 화요일 한 편씩 업데이트됩니다. - 편집자 주  

*김파전의 페이스북 www.facebook.com/mukhyan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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