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병 때 내가 제일 많이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은,

ㅡ 제가 하겠습니다!

이등병은 식스센스를 능가하는 세븐센스가 있어야 한다. 바로 고참들이 무심코 내뱉은 말이나 꼼장어 같은 꼬장이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할 수 있는 센스 말이다.

고참이 늦게 일어나서 기지개를 펴고 이불을 만지작거리면,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하고 달려가야 한다. 고참이 "아, 오늘은 밥 먹기 귀찮은데 라면이나 끓여 먹을까?" 하면 "제가 끓이겠습니다" 하고 끓여 와야 한다. 근무 교대할 때 무거운 책이나 짐을 고참이 들고 내무반에 들어오면 "제가 들겠습니다" 하고 대신 들어야 한다. "오늘 노래 좀 불러 볼까? 아니면 위닝 좀 해볼까?" 하면 "제가 세팅하겠습니다!" 하고 세팅해 놔야 한다.

그래서 이등병 때는 모든 일이 내 일이었다. 일을 골라서 하기보다는 일을 찾아서 해야지 욕을 먹지 않고 에이스로 등극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흘러 나도 병장이 되었다. 그때, 태어나서 누렸던 호사 중에 가장 뛰어난 호사를 누렸다. 여기저기 이등병들이 보혜사처럼 나를 떠나지 않고 항상 따라다녔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갔다 왔는데 침구가 정리되어 있었다. "어, 뭐야? 나 화장실 갔다 와서 더 자려고 했는데…" 하고 말했더니 "다시 깔겠습니다!" 하고 삽시간에 잠자리를 세팅했다.

나는 당시 경찰서에 소속되어 있는 전경이어서 정문 근무를 섰고 그때마다 늘 책을 많이 갖고 나갔다. 다 읽지도 않으면서 사회에 있을 때 공부 잘했던 스타일의 이미지를 메이킹하기 위해 그렇게 했는데, 근무 교대를 할 때면 50미터 앞에서부터 후임이 달려 나와 "제가 들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아니야, 내가 들게"라고 하면 세븐센스가 없는 후임들은 "네, 알겠습니다!" 하고 물러섰고, 그 후 그 센스 없는 후임은 군 생활 좀 해 본 상병에게 "야, 한 번만 물어보지 말고 적어도 두 번은 물어보라고!!!"라는 세븐센스 교육을 받았다.

군 생활 마치기 전 마지막 근무가 끝났을 때, 내무반에 들어와 양팔을 모세처럼 들면 아론과 홀 이등병이 달려와서 내 근무복을 벗겨 주었고 나를 그대로 들어서 내 자리로 옮겨 주었다. 만수르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언젠가 다른 글에서 언급한 그 쉑처럼 쉬레기 고참이 아니었고 군대에서도 내 별명은 김 목사님이었다. 믿어 주세요~~.)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편한 때가 그때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늘 "제가 하겠습니다!"의 마음을 가지고 내 짐을 대신 지어 주려는 이등병들이 주변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만 그리울 뿐 절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 교회 공동체에 '병장'들만 많아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림 제공 이현숙)

'제가 하겠습니다'의 심령에서 '쟤가 하겠습니다'의 심령으로

갈라디아서 6장 2절에서 사도는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모두 이등병의 마음을 소유하게 된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가 놀라워서 내가 이전에 무슨 일을 했고 얼마나 가졌고 누구였고 사회적으로 어떤 지위에 있고 등을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나라의 이등병이 되어 주님을 섬기는 마음이 된다. 주님을 섬기려고 하다 보니 보이지 않는 주님을 섬기는 것이 곧 내 옆에 있는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임을 깨닫고,

ㅡ 제가 하겠습니다.

의 심령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짐을 덜어 주려고 하는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 옆에 있는 지체가 힘들어하면 위로해 줌으로 짐을 덜어 주고 싶고, 내 옆에 있는 지체가 물질이 없으면 물질을 흘려보내 줌으로 짐을 덜어 주고 싶고, 내 옆에 있는 지체가 시험에 들었으면 그를 위해서 기도해 줌으로 짐을 덜어 주고 싶고, 내 옆에 있는 지체가 너무 버거운 일을 맡아서 헉헉대고 있으면 함께 그 일을 도와줌으로 짐을 덜어 주고 싶고….

그런 이등병의 마음을 가진 신자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일에 사용하신다. 내가 무거운 짐을 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내 주변에 그 짐을 어떻게든

ㅡ 제가 들어 드리겠습니다.

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넘쳐 나면 얼마나 따뜻하겠는가? 이등병 신자들이 많아질수록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아름답게 세워져 나간다.

그런데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가 안 놀라워지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이등병의 마음이 아닌 병장의 마음이 된다. 너 같은 죄인을 살리신 주님의 은혜가 놀라워지기 시작하고 내가 이전에 무슨 일을 했고 얼마나 가졌고 누구였고 사회적으로 어떤 지위에 있고 등이 다시 생각나게 된다. 하나님나라의 병장이 되어서 영적 갑질을 하고 싶은 마음이 된다.

그럴 때

ㅡ 제가 하겠습니다.

의 심령은 사라지고

ㅡ 쟤가 하겠습니다.

의 심령이 된다

내 옆에 있는 지체가 무슨 짐을 지고 있는지 관심이 없어진다. 내가 지고 있는 땅콩 같은 짐만 중요한 거고 그걸 누가 들어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가 와서 들어 주지 않으면 속한 공동체에 염병 250미리에다가 지랄을 세 스푼 정도 넣고 잘 갈아서 쏟아 놓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리턴을 하게 만든다. 그러니 그런 공동체가 편할 날이 없다. 병장 신자들이 많아질수록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골병이 든다. 지금 우리는 처음에 우리를 만나 주셨던 그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이등병의 마음으로 낮아지는 것이 필요하다.

갑질할 때가 아니라 갑절의 사랑을 구할 때

▲ 하나님을 많이 안다고 하면서, 사랑을 모른다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사진 제공 김정주)

사회적으로
갑질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보는데
교회 안에서는
영적 갑질이 심각하고
함께 신학을 하는 지체들 안에서는
신학 갑질이 심각하다

영적 갑질은 무엇인가?

내가 너보다 기도 많이 하니까
내가 너보다 하나님이랑 많이 친하니까
내가 너보다 성경 많이 아니까
내가 너보다 섬김의 연수가 오래되었으니까

고로
너는 닥치고 있어
어디서 병장 신자가 말하는데
이등병 신자가 나대

이게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갑질 아닌가?

교회는 군대가 아니다
교회에서의
최고 자랑은 연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이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리는 을이 될 때에
그 사람이 바로 영갑이다

신학 갑질은 무엇인가?

내가 너보다 풍성한 신학적인 시각으로 성경을 볼 수 있어
복음주의의 목에 개혁주의 칼을 겨누고
입만 뻥긋해 봐 입 다물고 있어
이건 이래서 잘못되고 저건 저래서 잘못되고
결국에는 내가 신학짱이야 야리지 마

이게 신학을 하는 형제자매들 안에서 일어나는 신학 갑질 아닌가?

신학을 공부하는
우리 모두는
신학 미야모토 무사시가 아니다

자신의 신학 검술을
잘 연마해서
남의 신학 도장 깨기 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주 안에서 한 가족으로 부름받은
형제자매들 다 죽여 버리고
내가 신학모토 무사시가 되면
그건 기분 째지는 걸까
하나님도 그런 사람을 보면서
기분이 째지실까?

오히려
신학을 공부하는
우리 모두는
<바람의 검심>에 나오는
히무라 켄신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가진 신학으로
다른 사람을 베어 버리겠다는
오만하고 교만함의 칼을 버리고
내가 가진 신학으로
다른 사람들과
교회와
함께 공부하는 신학도들을
살리는 검인
신학 역날검을 소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하여서
많이 아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그 사랑의 하나님을 많이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사랑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자가 아니라
신학을 섬기는 신학 숭배자인 것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였다. 아직 숙이지 못함은 익지 못함이다
지금은 서로 갑질할 때가 아닌 갑절의 사랑을 구해야 할 때다

사랑합니다
당신을

▲ 김파전의 2030 미생 이야기는 매주 화요일 업데이트됩니다. (그림 제공 이현숙)

글쓴이는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송파구의 한 교회에서 '파전'(파트타임 전도사)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동년배 직장인으로 치면 비정규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84년생 서른두 살의 김파전. 비록 전도사님이라 불리지만 세상살이는 '미생'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김파전이, 위로받아야 할 교회에서조차 미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2030들을 이야기합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신학과 이론으로 내린 정답과 같은 '제자도'가 아니라, 2015년 대한민국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젊은 크리스천이 몸부림치며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삶의 제자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삶의 제자도'라는 말은 멋지지만, 사실 실제 삶은 김파전의 '파전행전'일 수밖에 없지만요. 

김파전의 이야기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2030세대들이 겪고 있는 리얼한 삶입니다. 어렵고 힘든 미생의 삶이지만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행복을 발견해 가는 이야기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제목은 파트타임 전도사(파전)의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행전)라는 뜻으로, '파전행전'이라 지었습니다. 매주 화요일 한 편씩 업데이트됩니다. - 편집자 주  

*김파전의 페이스북 www.facebook.com/mukhyan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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