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네이선(Rich Nathan) 빈야드콜럼버스교회 담임목사가 교회 소식지에 쓴 칼럼들을 번역해 연재한다. 그는 종교학, 역사학, 법학을 전공한 후 변호사이자 오하이오주립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던 중, 부르심을 받아 1987년부터 빈야드콜럼버스교회 담임목사로 있다. 현재 빈야드콜럼버스교회는 네 개의 위성 교회를 가진 교회로 성장했다. 리치 네이선 목사는 복음 전도와 사회정의라는 복음주의 교회의 사명을 완수하여 복음의 온전성이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 애써 왔다. 해외 선교와 아울러 노숙자와 이민자들을 섬기는 사역에 주력해 왔다. 그는 미국에서 대내외적으로 유명한 강연자이며 많은 사람들이 지역 방송을 통해 그의 설교를 듣고 있다. - 역자 주

2015년 6월 26일, 미국 대법원은 헌법상 동성 커플의 결혼을 미국의 모든 주에서 헌법상의 권리로 인정할 것을 다수결로 결정했습니다. 동성 결혼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 5명의 대법원 판사 중 한 명인 앤소니 케네디는 "대법원은 동성 커플들이 모든 주에서 결혼할 수 있는 근본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결정하였습니다"라고 발표했습니다.

▲ 빈야드콜럼버스교회 리치 네이선 목사.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공용)

그러면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결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해야 할까요?

어떤 사람들은 앤소니 케네디 판사와 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에 대해 심리학적인 분석을 하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앤소니 케네디 판사가 판결문에서 기록한 대로, 미국 대법원 역사상 동성애자의 권리에 관한 견해는 오직 네 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앤소니 케네디 판사에게 상당히 영향을 끼친 법조계 내의 멘토가 동성애자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따라서 앤소니 케네디가 쓴 동성 결혼에 관한 법적 견해는, 그가 자신의 멘토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쓴 행정적 진술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미국 대법원이 내린 결정을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동성 결혼 허용을 반대해 온 존 로버츠 대법관은 반대 의견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다섯 명의 대법원 판사들이 사람들과 토의를 단절하고 자신들의 결혼관을 헌법에 반영시켰습니다. 결혼관에 관한 문제를 사람들로부터, 그것도 아주 많은 사람들로부터 대법원이 훔쳐 온 것입니다. 이것은 이후 동성 결혼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결과를 예측하게 합니다. 이 결정은 우리가 받아들이기 아주 어려운 엄청난 사회 변화를 초래할 것입니다."

왜 그는 이처럼 강한 언어를 쓰며 반대했을까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종신 판사들로 이루어진 대법원에서, 단 한 번의 다수결로 미국 사회가 결혼에 관해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결정하는 힘을 행사하여 결정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결혼의 문제는 개인들과 주 의회 의원들이 씨름해 왔습니다. 미국 내 11개 주만이 민주적인 행동으로 동성 커플들에게 결혼의 권리를 부여하였습니다. 그중 8개 주는 주 의회에서 결정했으며, 3개 주는 대중들의 투표로 결정하였습니다.

나머지 39개 주는, 이번 대법원의 결정을 포함하여 연방법원의 결정에 따라 자신들의 법을 뒤집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미국인들이 포기와 냉소의 감정으로 대응할 것입니다. 대법원이 단 한 번의 다수결을 통해 그동안 이루어진 민주적인 행위들을 모두 무효화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투표해서 뭐해? 수고롭게 논쟁하고 로비하고 글을 쓰고 캠페인 벌이고 시민운동가들을 괴롭혀서 뭐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법원의 판결을 시민권의 승리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대통령은 백악관을 무지개 색으로 불을 밝혀 대법원의 결정을 축하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의 담화문에 동의했습니다. "이 결정은 미국을 위한 승리입니다. 이 결정으로 수많은 미국인들이 믿고 있는 바를 확정하였습니다. 모든 미국인들이 진정으로 평등하게 대접받을 때 우리는 더욱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대법원의 판결은 서구 문명 또는 미국 문화가 붕괴되어 가는 증거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블로그상에서는 대법원의 결정을 비판하는 기독교인들로 가득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의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은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미국을 심판하실 것을 믿는다. 대통령의 언급에서 보이는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매일 주변에서 목도하고 있는 도덕적 붕괴와 다르지 않다."

로버츠 대법관은 기독교인들을 위해, 그가 기존에 쓴 다른 의견들보다 훨씬 더 강한 어조로 반대 주장을 썼습니다. 이 결정으로 미국에서 종교 자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분명한 경고로 들립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신앙인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행사할 때,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동성 결혼에 관한 새로운 권리를 인정할 수 없는 종교 기관들에서 빚어질 갈등입니다. 예를 들어, 신앙에 기반하여 설립된 대학교에서 결혼한 학생들에게 숙박 시설을 제공할 때 이성 커플들에게만 제공한다거나, 종교 입양 시설에서 동성 결혼 커플들에게 어린이들을 보내는 것을 거절한다거나 할 때 생기는 문제들입니다. 사실, 법무차관은 종교 기관들이 동성 결혼을 반대하면 세금 면제 혜택을 철회할 수 있음을 시인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신앙인들은 오늘날 다수로부터 이러한 일들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독교 학교에 대한 엄청난 압박이 올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종교 학교 시설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 학교들은 이러한 공격으로부터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종교 기관들이 받고 있는 세금 면제 헤택에 대해 도전을 받을 것입니다. 대법원은 "인종적으로 차별적인 사립 교육기관들에 세금 면제를 허락하는 것은 전적으로 양립하기 어렵다"는 판결을 밥 존스와 미국 정부 간 분쟁에서 내린 바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동성 결혼을 부인하는 것은 공공 정책에 대한 위반으로서 세금을 면제받지 못하게 되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빈야드콜럼버스교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지도자들은 만장일치로 동성 커플들에게 결혼을 주례하지 않을 것이며, 동성애자를 목회자로서 세우지 않을 것을 결정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을 대법원이 뒤집을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이러한 입장을 지지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대법원의 결정이 반민주적으로 이루어지고, 법원에 의해 결혼에 관한 정의가 혁명적으로 바뀌어 수천 년 동안 이루어진 결혼관을 내팽겨쳐 버렸고, 종교의 자유가 위협을 받게 되는데도, 대법원의 견해가 왜 미국에서 이처럼 환영을 받을까요? 왜 대다수 사람은 그 견해가 문제가 있음에도 받아들일까요? 왜 수많은 사람이 그것을 지지할까요?

제 의견으로는, 동성 결혼에 관한 대법원의 결정이 오늘날 미국에 가장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철학을 명백히 선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철학은 버클리대학교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가 1990년 정의한 바 있는 '표현주의적 개인주의'(expressive individualism)입니다. '표현주의적 개인주의'는 기본적으로 여타의 의무 사항에 우선하여, 최고의 가치를 '진정한 자아'에 둡니다. 우리는 '표현주의적 개인주의'를 이런 식으로 나타냅니다. "그것이 내게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져" 혹은 "나는 내 자신에게 정직해야 할 필요가 있어" 혹은 "거짓으로 살지 않을 거야".

동성 결혼을 금지하는 법률을 폐지하는 선택을 한 대법원은 (14번째 수정헌법의 평등한 보호라는 구절 아래) 동성 커플들이 이성 커플들과 똑같이 대접받아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하였습니다. 케네디 대법원 판사는 "결혼에 관한 선택의 권리는 개인의 자율성이라는 개념과 부합합니다.... 이러한 자유는 개인의 존엄성과 자율성의 중심에 있는 개인의 선택에까지 확대됩니다. 거기에는 동성 결혼 및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내밀한 선택을 포함합니다"라는 주장을 자신의 판결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케네디 판사의 의견은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헌법의 원칙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표현주의적 개인주의' 철학에 근거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철학은 미국인들의 마케팅과 미디어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런던의 패트릭 매디건 교수는 "'표현주의적 개인주의'는 자아를 제한하는 모든 것을 부모의 학대, 심리적 압박, 혹은 문화제국주의와 마찬가지로 거부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점은 '표현주의적 개인주의' 철학과 어떻게 다를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저는 오늘날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과제가 예수님의 제자로 고백하는 사람들을 '표현주의적 개인주의'로부터 벗어나도록 훈련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진정한 목표를 발전시키는 한 방법으로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즉 자아를 향상하거나 자신들의 진정한 꿈을 성취하기 위해 결혼하고 자녀를 가지며 진정한 사랑이나 그 무엇을 찾고자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제자도라는 것이 삶의 이러한 목표들로부터 돌아서서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임을 이해하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동성 결혼을 허용할 것인가에 관한 정치적 투쟁은 이미 끝났습니다. 동성 결혼 옹호자들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제 교회가 기독교인들을 '표현주의적 개인주의'로부터 돌이켜서 예수님을 혁명적으로 따르도록 가르쳐야 할 때입니다.

교회의 공적 증거에 대하여,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데이비드 브룩스는 현명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모습은 이와 같아야 합니다: 그들은 혜택받지 못한 지역으로 들어가서 가정이 안정적으로 세워지도록 돕는 사람들입니다. 공동체가 없는 곳에 들어가서 공동체를 세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경제적 비자립과 영적 빈곤이 어떻게 서로 연관되는지를 생각하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입니다. 일상의 삶에서 변화하고 초월하도록 돕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벌어지는 문화 전쟁은 알버트 슈바이처, 도로시 데이와 가깝습니다. 제리 팔웰과 프랭클린 그레이엄이나 구세군 또는 도덕적 다수 그룹 등이 벌이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이미 사적으로 하고 있는 일을 의도적으로 대중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로 (동성 결혼 결정으로 인한) 성의 혁명을 쉽게 되돌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보다 더 실질적으로 해야 할 싸움은, 깨어지고 용서함이 없고 우호적이지 않은 사회를 교회가 보살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혁명적인 부르심을 따르는 사람들을 훈련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증거하는 일에 우리의 노력을 배가하는 것이 최근 이루어진 대법원의 결정에 대해 미국 교회가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식입니다.

강희정 / 번역

*이 글의 저작권은 리치 네이선(Rich Nathan) 목사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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