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한 달간 한국교회의 최대 이슈는 '동성애'인 듯하다. 집회 신고 때부터 어수선하더니, 6월 초 퀴어 문화 축제가 시작되자 보수 기독교 단체의 궐기(?)가 시작됐다. 사이가 좋지 않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한국교회연합(한교연)도 손을 잡고 퀴어 축제를 규탄했다. 보수적인 교계 신문도 충실하게 지원사격했다. 

퀴어 축제의 정점은 오는 6월 28일 열리는 '퀴어 퍼레이드'다. 성 소수자들이 1년에 한 번 자유롭게 자신을 드러내 자긍심을 높이는 행사다. 그러나 몇몇 노출 수위가 높은 의상을 입는 사람이 있어,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의 눈살까지 찌푸리게 할 때도 있다. 보수 기독교인들은 치를 떤다. 나라가 문란해지고 타락한다며 퀴어 퍼레이드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아니나 다를까. 퀴어 퍼레이드를 닷새 앞둔 6월 23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통합,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등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이 이를 저지하겠다고 나서 전운이 감돌고 있다. 

합신, 기성, 예성, 기하성, 침례교 등 개신교 주요 교단 22개 총회장은 23일 성명을 냈다. 이들은 6월 28일 대한문 앞을 '미스바'로 만들어 그곳에서 기도하겠다고 했다. 동성애자들이 국가 존립에 위해가 될 수 있으니, 함께 모여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간구하겠다는 것이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28일 대한문 앞은 '미스바'" 서울·경기 지역 교회 총집결 주문…모범 설교는 소강석 목사의 '네오막시즘 = 동성애'

정영택 총회장(예장통합), 백남선 총회장(예장합동), 이영훈 총회장(기하성) 등 22개 교단 대표들은 23일 <국민일보>에 전면 광고를 냈다. 이들은 28일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동성애 조장 중단 촉구 한국교회 교단 연합 국민대회(국민대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총회장들은 국가 존립에 위해가 되는 동성애 이슈의 심각성을 공감하고 함께 기도하겠다고 했다. 또 덕수궁 대한문 앞을 미스바로 선포하고 나라와 민족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교단장들은 △전국적으로 6월 28일을 동성애 반대 설교하는 주일로 지킬 것 △서울·경기 지역의 모든 교회 및 성도는 28일 오후 3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연합 예배 및 국민대회로 모일 것 △모든 교단은 이 사실을 각 교회에 알릴 것을 결의하고, 한국교회 차원의 대대적인 동참을 당부했다.

교단 대표들은 28일 국민대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교회들을 위해 '동성애 반대 설교와 기도를 돕기 위한 자료'를 에스더기도운동본부(이용희 대표)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기도 제목과 설교 자료, 설교 예문을 올려놓고 28일 예배 때 참고하라고 했다. 설교 예문은 5월 31일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의 '동성애, 당신도 동의하십니까'였다. 소 목사는 당시 설교에서 "동성애는 네오막시즘이 젊은이들을 미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어요. 동성애 문제는 네오막시즘 사상 때문이라는 것 말입니다. 네오막시즘이 교묘하게 인권이라는 탈을 쓰고 사람들에게 나타난 거예요. 사실 프랑스대혁명이나 영국의 윌버포스, 미국의 링컨, 마틴 루터 킹의 인권 운동은 정말 짐승처럼 고통받는 흑인 노예들의 인권을 존중해 주고 사랑해 주자는 좋은 인권 운동이었어요.

그러나 그런 좋은 인권 운동의 옷과 포장 속에 네오막시즘이 추악한 정체를 숨기고 젊은이들에게 다가가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이들은 환호를 하는 거예요. 이 세상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달라지는지 몰라요. 여기에 대응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마음으로 억압당하고 있고 비교 의식,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어요."

6월 9일 퀴어 문화 축제 개막식 당일에도 일부 보수 단체가 동성애 반대 집회를 벌였지만, 당시 큰 교단 중에서는 예장통합만 참여했다. 그런데 이제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까지 연합으로 나서 28일 전면적인 충돌을 예고한 것이다. 이미 한기총 이영훈 대표회장은 지난 18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기총을 방문했을 때, "28일에 퀴어 퍼레이드를 진행하면 그냥 지켜볼 수 없고,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자제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말해 물리적 충돌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 등 각 종교 시민단체들이 퀴어 퍼레이드를 지키기 위해 모였다. 이들은 23일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퀴어 퍼레이드가 무사히 진행되도록 '인간 띠'를 만들어 일부 보수 기독교계 등 과격한 동성애 혐오 세력을 막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동성애 옹호하는 기독교·불교·천주교 등 범종교 시민단체, "인간 띠 만들어 퍼레이드 보호한다"

한편, 물리적 충돌 위협이 고조되자 시민단체들도 퀴어 퍼레이드 참가자들의 행진을 보장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 등 115개 범종교계 시민·사회 단체(범종교시민단체)는 23일,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범종교시민단체는 "종교·사회·문화적 편견과 신념을 앞세워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는 이들 때문에 축제 참여자들을 향한 공격적인 혐오와 차별의 언행, 선동이 예상된다"고 했다.

범종교시민단체는 이런 물리적 충돌을 막는 '평화의 인간 띠 잇기'에 참여해 달라고 했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들로부터 퀴어 퍼레이드가 방해받지 않도록 인간 저지선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범종교시민단체는 23일 현재 이 취지에 공감하고 연대하기로 한 단체와 개인이 총 1,315명이라고 밝혔다. 개신교에서는 섬돌향린교회, 성문밖교회 등 25개 단체가 참여한다.

▲ 퀴어 퍼레이드를 지지하는 기독인들은 '차별 없는 사랑을 보여 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섰다.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거리면서 다른 이들을 차별하지 말자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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