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퀴어 축제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이 모였다. 6월 9일, 덕수궁 대한문광장 등 시청 앞 곳곳에서 바른 성 문화를 위한 한국교회 대연합 기도회 및 국민대회가 열렸다. 저마다 준비해 온 피켓과 태극기를 흔들며 동성애자들을 규탄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얼마나 축복하셔서 이렇게 성장했습니까. 그런데 짐승도 안 하는 더럽고 음란한 짓을 하는 동성애자들 때문에 이 나라가 저주받고 망할 판입니다."

6월 9일 열리는 '2015 퀴어 문화 축제'를 저지하기 위해 보수 기독교인들이 시청 앞 서울광장에 모였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여파로 퀴어문화축제준비위원회는 퀴어 문화 축제 개막식을 온라인으로 진행한다고 공지했다. 하지만 보수 기독교인들은 "동성애자들의 말을 못 믿겠다"며 저지 집회에 나섰다.

덕수궁 앞 대한문광장에서는 나라사랑&자녀사랑운동연대가 주최한 '바른 성 문화를 위한 한국교회 대연합 기도회 및 국민대회'가 열렸다. 오전 11시에 시작한 행사는 오후 11시까지 1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어졌다.

▲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기원하며 부채춤을 췄던 예장합동한성 총회 올월드경배와찬양단이 공연을 했다. 찬양단은 오전 11시부터 난타와 워십 등을 선보이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리퍼트 대사 쾌유 기원 부채춤·난타 퍼포먼스로 세간에 알려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한성 총회 '올월드경배와찬양단'의 공연으로 이날 행사가 시작됐다. 형형색색의 한복을 입은 올월드경배찬양단은 대규모 난타 공연과 워십 댄스를 선보였다. 연합 기도회에 참석한 교인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화답했다.

"동성애자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대한민국에 임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설교와 각종 발언 시간을 통해 전해졌다. 타락한 세대와 선지자들을 통해 경고하신 성경을 상고해야 한다는 말씀에 교인들은 크게 아멘을 외쳤다.

애국가를 부르거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도 있었다. 동성애 반대 피켓과 현수막, 태극기가 대한문광장을 현란하게 메웠다.

▲ 퀴어 축제가 열리기로 예정된 장소에도 기독교인들이 자리했다. 예수재단의 임요한 목사는 동성애자들의 집회를 저지하기 위해 150일이 넘도록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이날 서울시청 일대는 부흥회를 방불케 했다. 여기저기서 통성기도하는 소리, 찬송 소리가 울려 퍼졌고, '예수 천국 불신 지옥' 문구가 적힌 옷을 입은 이들이 거리를 활보했다. 잔디 광장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교인들 발언은 조금씩 표현만 바꿔서 끊임없이 반복됐다. 발언대에 나선 이가 동성애 반대의 당위성을 외칠 때마다 참석자들은 '아멘'으로 대답했다. 발언자가 "음란한 것들을 제거해야 합니다"라고 외치면 "아멘" 하고 대답하는 식이었다.

참석자들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한민국의 심장과도 같은 서울시청을 동성애자에게 내줬다며 박 시장을 강하게 규탄했다. 행사 도중 박 시장을 비판하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이들은 '박원순은 퇴진하라'는 구호도 수차례 외쳤다.

1인 시위를 하는 이들도 많았다. 1인 시위를 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30~40대 여성들이었다. 자녀를 데려온 젊은 부모들도 많았다. 어린 아들과 함께 1인 피켓 시위를 하는 한 여성은 "나중에 우리 아이가 커서 남자 며느리를 데려온다고 생각하니 남 일 같지 않다"면서 "동성애 집회는 열려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오후 5시쯤 성 소수자 인권 단체 소속 10여 명이 서울광장 한쪽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성 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군형법의 폐지를 주장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섰다. 그러자 주위에서 동성애 반대 피켓 시위를 하던 수십 명의 기독교인들이 몰려들어 이들을 에워쌌다. 앞쪽에서 자체 행사를 진행하던 예수재단 등 다른 기독교 단체들도 별안간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 그들을 향해 돌아섰다.

▲ 성 소수자 인권 단체가 서울광장에 등장하자 집회를 하던 기독인들이 즉각 반응했다. 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권 단체를 향해 통성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1인 시위를 하던 기독인들도 이들 근처로 접근해 "음란죄를 회개하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이들은 방언 기도를 하며 "회개하라"는 말을 연신 외쳤다. 스피커에서는 어느새 찬송가 '마귀들과 싸울지라'가 나오기 시작했다. 충돌이 우려되자, 인근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 수백 명이 이들을 분리했다. 교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인권 단체를 향해 두 손을 들고 방언 기도를 했다.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메르스도 이날 행사에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대규모 모임과 행사가 축소·연기되는 추세이지만, 이날 연합 기도회에는 수많은 인파가 대한문광장을 가득 메워 메르스 공포를 무색하게 했다.

연세중앙교회(윤석전 목사)에서 왔다는 한 교인은 "동성애자들이 (집회) 안 한다고 해 놓고 기습적으로 올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나와서 막고 있다"면서 "동성애자들이 죄를 깨닫고 어서 회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람이 많이 모였는데 마스크도 안 쓰고 메르스가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신체 접촉만 안 하면 괜찮다"면서 문제없다고 말했다.

집회 방식에 아쉬움을 표한 이도 있었다. 성남에서 왔다는 예장합동 교단의 한 노목사는 "한국교회가 동성애에 대해 할 말은 해야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하면 오히려 시민의 반감만 살 뿐이다"고 했다. 그도 매주 월요일 야탑역 일대에서 기도회를 한다고 했지만, 좀 더 차분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야 기도하고 찬송 부른다고 생각하지만 지나가는 시민들이 좋게 생각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쉴 틈 없이 진행된 이날 행사는 이제 막 첫 테이프를 끊었다. 일요일인 6월 28일에 퀴어 문화 축제 퍼레이드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나라사랑&자녀사랑운동연대는 대한문에서 이날 오후 예배를 연합으로 드리겠다고 밝혀 양측의 충돌이 예상된다. 이들은 "서울시청 앞 대한문 차도까지 하나님의 사람들로 차고 넘쳐서, 한국교회로 인하여 동성애가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만방에 각인시켜야 한다"며 교회의 참여를 요구했다.

▲ 서울시청 근처에는 집회에 참가하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 동성애 반대를 위해 무릎 꿇고 기도하는 기독교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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