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향 시설이 갖춰진 넓은 무대. 무대 위 노래하는 가수에게 청년들이 환호한다. 아직 유명해지기 전의 윤도현이 이곳에 섰고, 이소라·김광석·노래를찾는사람들 등 쟁쟁한 가수들이 이 공연장을 찾았다. 홍대나 대학로 소극장이 아니다. 서울 신촌 창천교회 본당이다.

교회 본당에서 대중가수의 공연이라니….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지만, 창천교회가 일반 공연자들에게 본당을 개방한 것은 20년 전이다. 1995년 지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던 교회는 예배당을 개방해 정기적으로 공연을 열었다. 기독교인만 모이는 자리가 아니었다. 매주 목요일 본당을 메운 젊은이들이 콘서트와 영화 시사회 등을 즐겼다. 창천교회는 '문화쉼터'라는 이름으로 이 사역을 시작했다. 

▲ 김재욱 목사는 공연 연출가로 기독교 문화사역계에 발을 들였다. 소외 계층이 모여서 집회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이제 그는 또 다른 일을 준비 중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김재욱 목사는 1995년부터 10년 동안 '문화쉼터'를 이끌었다. 창천교회를 다니던 사람도 아니었고, 당시에는 목사도 아니었다. 김 목사는 '노래를찾는사람들'의 공연 디렉터로 활동하다 '문화쉼터'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는 교회 예배당을 기꺼이 지역사회에 내주는 창천교회를 보면서, 사회에서의 교회 역할을 고민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시대에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도대체 뭘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창천교회가 소속한 교단 신학교인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과정을 수학했다. '문화쉼터'를 이끌면서 공부에 매진한 그는 2007년 목사가 되었다. 

목사 안수를 받은 후 김재욱 목사는 '문화쉼터'를 떠나 '문화행동바람'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교회에서 사역하며 느낀 한계를 넘어서고 싶어 문화쉼터부터 함께했던 벗들과 문화행동바람을 시작했다. 창천교회 한 곳에서만 공연하기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세상과 더 가깝게 소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초창기 문화행동바람은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 집회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사회적 약자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공연을 주로 했다. 장애인, 미혼모, 성 소수자가 싸우는 현장에서 노래했고, '인권재단사람'을 도와 '인권 숲 콘서트'도 연출했다. 집회 현장에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노력했다.

김재욱 목사는 교회 안에만 있는 사람들이 아닌, 교회 밖 투쟁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 줄 공연을 기획하는 것이 '문화 사역'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 기쁨과 환희를 이해하고 그것을 문화로 표현하는 일이 기독 문화인으로서의 소명이라고 했다.

▲ '문화행동바람'은 사회적 약자와 함께해 왔다. '인권재단사람'과 같이 인권을 이야기하는 콘서트를 남산에서 열기도 했다. 김재욱 목사가 사회를 봤다(맨 오른쪽). (사진 제공 인권재단사람)

그는 문화 사역이 곧 동시대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때문에 많은 기독교인이 사랑하는 한국 CCM이, 내면의 신앙만 주로 노래하고 시대의 아픔에 무관심한 것을 아쉬워했다. 

"물론 개인 신앙의 성숙을 고민해야 할 때가 있어요. 그 부분을 표현한 음악도 분명히 필요하죠. 그렇지만 교회를 다니는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만든 노래는 결국 교회에서만 불려요. 교회 안에만 머무르게 되는 거죠.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CCM이 전혀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교회 안에만 갇혀 있는 상황이 됩니다.

CCM에서 'C'가 'Contemporary', 즉 동시대를 나타내잖아요. 현재를 살아가는 기독교인으로서, 예수님께서 만났던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노래하는 것이 CCM이 아닐까 생각해요. 음악을 만드는 기독교인이라면 시대의 흐름에 주목하고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며 사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고민해서 깨달은 내용을 담는 것이 CCM이죠."

CCM의 참된 의미를 오해하는 것은 한국교회가 문화 사역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김재욱 목사는 한국교회가 문화를 단순한 도구로만 취급한다고 했다. 아무리 좋은 공연을 했다고 해도, 설교자의 메시지를 더 부각하기 위한 사전 장치로 취급받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노래가 전하는 메시지의 힘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 교회 풍토는 바뀌어야 합니다. 설교자가 하는 설교만 중요하다는 생각을 아직도 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는 노래하는 사람이 선교사·설교자가 되는 날이 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부르는 노래, 가사로 고백하는 내용이 설교가 되어야 합니다."

한낱 예배의 도구가 아닌 '설교로서의 노래'를 만나는 공연. 문화행동바람이 올해부터 새롭게 진행하는 일이다. 그동안 집회 현장을 찾아다니며 세상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면, 이제는 사람을 세우는 공연을 하려고 한다. 환호와 갈채가 없어도 묵묵하게 한길만 걸어 온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교회와 대중에게 소개하는 일이다. 그 첫걸음이 CCM 가수 이무하의 '茂夏之景(무하지경)' 콘서트다. (관련 기사: "노래는 맘몬 무너뜨리는 무기")

"이무하의 노래는 기독교 세계관이 바탕을 이루고 있어요. 가사 안에 신앙인의 깊은 성찰을 담는 것은 물론, 동시대를 바라보며 느끼는 탄식도 포함하고 있죠. 교회와 세상의 간극을 메워 줄 수 있는 사람이에요. 30년 동안 가수 생활했는데 단독 콘서트를 연 적이 없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고요."

▲ '크라우드 펀딩'으로 이무하의 공연 제작비를 모금하고 있다. 6월 23일까지 모금 중인데, 19일(오후 12시 현재) 절반가량을 달성했다. 이무하의 '무하지경'은 7월 2~3일 저녁 8시에 열린다. (tumblbug 페이지 갈무리)

김 목사는 요즘 이무하 콘서트와 관련해 신경 쓸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다. 콘서트 총감독을 맡고 있어, 공연 연습뿐 아니라 제작비 모금도 해야 한다. 제작비는 요즘 유행하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금하고 있다. 6월 23일까지 200만 원을 목표로 모금하고 있는데, 19일까지 절반을 달성했다. (이무하 공연 후원 바로 가기)

문화행동바람은 예매 방법을 다양화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무하지경'을 즐길 수 있을까 고민하다 나온 생각이다. CCM 테이프나 LP판을 가지고 온 사람에게는 정가의 50%, CD 소지자는 30%를 할인해 준다. 오랫동안 CCM을 사랑해 준 사람들을 향한 나름의 감사 표시다.

<뉴스앤조이> 길동무들을 위한 자리도 마련했다. <뉴스앤조이>와의 만남을 원하는 길동무는 7월 2일~3일 양일 중 3일 공연을 택하면 된다. 인터파크 예매 창에서 '후원자 <뉴스앤조이> 할인'을 선택하면 2만 5,000원에 예매가 가능하다.(예매 바로 가기) 공연은 서울 대학로 엘림홀(동숭교회)에서 저녁 8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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