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모르고 받았더니 주홍글씨처럼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학자금 대출. 그래도 결혼 전에는 잘 외면해 왔지만 결혼 후에는 점점 괴물처럼 목을 조여 오는데…. 그 와중에 큰맘 먹고 선교 여행까지 갔다 왔건만 하나님의 채워 주심은 과연 언제? 한없는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떨어진 파전, 과연 그의 운명은? - 편집자 주

사우나 일을 그만두니 기다렸다는 듯이 재정 훈련이 시작되었다. 일을 안 해서 몸은 편하지만 수입이 급속도로 감소하기 시작하면서 마음은 일할 때보다 훨씬 불편해졌다. 뭐 하나 살 때도 먹을 때도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아서 함부로 질렀다가는 차디찬 바다 속으로 빠져서 익사하거나 얼어 죽을 것 같은 나날이 계속되었다. 결혼 전에 어머니는 "땅을 파 봐라. 돈 십 원이 나오나"라는 말을 종종 하셨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정말 뼈가 찌릿찌릿하게 알게 되었다.

공부를 하려고 모처럼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들 속에서도 돈 계산이 빙글빙글 돌았다. 여기도 돈 내야 하고 저기도 돈 내야 하고, 여기 써야 하고 저기 써야 하고. 그렇게 내야 할 곳 써야 할 곳에 돈을 지불하고 나면 정작 아내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돈은 전혀 없었다. 답답했다. 밖에서 뭐 하나 사먹으면 100퍼센트 적자가 나기 때문에 맛있게 즐기면서 먹을 수 없었다. 사막에 있는 것처럼 마음이 바싹바싹 말랐다.

마침내 마지막 받은 월급도 다 떨어지고 온전히 사례비만으로 생활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깊은 절망을 느꼈다.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모시고 거기서 뛰어내리게 하셔서 뛰어내렸더니 그제야 나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간증을 듣고, '그래, 날개가 있는 걸 깨닫게 하시려고 이러는 거야! 한번 믿음으로 뛰어 보자!' 하고 뛰어내렸지만 날개는 개뿔, 자이로드롭처럼 얼마나 빨리 떨어지던지 정신 차리고 나뭇가지 안 잡았으면 대가리가 깨져서 죽을 뻔했다.

나의 날개는 과연 어디에?

멍하니 누워서 떨어진 절벽 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음을 가다듬고 이를 악물고 절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무엇이 두려웠던 것일까? 가난해지고 불편해지는 것이 두려웠다. 내가 누리던 것들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두려웠고, 남들 하는 것을 못 하는 것이 두려웠고, 그것이 곧 불행의 시작인 듯하여 두려웠다. 그런데 어느 날 ‘가난은 불행한 것이 아니고 불편한 것이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하나님께서 ‘그래서 너 불행하니’ 하고 물으시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불편과 불행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불행하다고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냥 조금, 아니 어쩌면 많이 불편할 뿐이었다.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다시금 발을 옮겨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요, 하나님. 저 불편해도 불행하지는 않아요…’ 하는 마음으로.

올라가는 중에 참 많은 생각들이 스쳤다. 나의 날개는 과연 어디 간 것인지? 어떤 주는 5만 원으로 살았다. 그리고 다음 주는 1만 원으로 살았다. 그리고 그 다음 주는 1,000원으로 살아야 했다. 아내에게 많이 미안했다. 하지만 '하나님이 내게 불행하냐고 묻는 것 같아서 불편해도 불행하지는 않다'고 했다는 나의 고백을 듣고는 나와 같은 마음을 품어 주어 하루하루 살아 낼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그 시간들 속에서 굶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비록 외식을 하거나 사고 싶은 것들을 못 사고, 문화생활도 거의 못 하고, 많은 관계도 포기했지만, 그래도 소박하나마 있는 것으로 집 밥은 차려 먹을 수 있었다.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도 있고, 그분들은 밥을 굶을 때도 있으리라는 생각에 불평할 수 없었다. 그런 마음이 들자 굶지 않고 나와 아내 둘 다 건강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진심 어린 감사가 나왔다.

경제적 궁핍과 불편함 속에서 나는 배운 것이 많다. 돈이 있을 때는 없으면 못 살 것 같고 죽을 것 같았는데, 막상 정말 돈 한 푼 없는 상황이 되어 보니 죽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경험이 쌓였다. 한 주를 천 원으로 살아 내니 오히려 배짱 같은 게 생겼다. ‘다음 주는 500원으로도 살 수 있겠는걸. 아니, 한 푼도 안 쓰고도 가능하겠어.’ 주머니에 돈이 있을 때 고백했던 “하나님께서 입히시고 먹이신다”는 말과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께서 입히시고 먹이신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를 실제로 경험할 수 있었다.

이런 생활이 지속되면서 마침내 돈이 아닌 하나님께로 시선이 향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새기게 되었다.

▲ 내 날개, 바로 아내였다. 혼자였다면 하나님을 욕하고 나뭇가지를 놓아 버리고 뛰어내렸겠지만 아내는 나에게 날개가 되어 주어 벼랑 끝을 다시 기어올라 갈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사진 제공 김정주)

나에게도 날개가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마침내 뛰어내린 그 벼랑 끝까지 다시 올라왔다. 깊은 밤이었는데 밝을 때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반짝이는 별의 빛을 보게 되었다. 그 별을 보며, 벼랑 끝에서 뛰어내렸을 때 어떤 사람들에게는 단번에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를 허락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추락을 허락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추락한 끝자락에서 다시 올라오는 과정을 통해서 다른 의미의 날개를 주시기도 한다는 것을.

다시 올라온 벼랑 끝에서 하나님은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날개를 보여 주셨다. 이미 하나님께서 오래전에 주신 날개였다. 그런데 나는 그 날개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내 날개, 바로 아내였다. 혼자였다면 하나님을 욕하고 나뭇가지를 놓아 버리고 뛰어내렸겠지만 아내는 나에게 날개가 되어 주어 벼랑 끝을 다시 기어 올라갈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돈이 없어도 너무 없으니 더럽게 힘들고 불편했다. 불행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아내가 이해해 줬고, 불평하지 않으며 오히려 용기를 주었기에, 더럽게 불편했을 뿐이지 결코 불행까지 가지는 않았다. 만약에 아내가

"당신은 왜 이렇게 거지 같아?
결혼해 가지고
남들처럼
먹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못 살고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해?"

라고 말했다면 불편은 불행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오히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부름을 입은 사람이잖아.
진정한 목회자라면 이 땅에서 어떻게 부자로 살아?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 재정적인 훈련을 받게 하시는 거야.
지금 가난해도 우리가 밥 한 번 굶은 적 없고
우리가 거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교회도 이렇게 가깝고
무엇보다 둘 다 건강하잖아.
낙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자.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만 구하자!"

라고 말해 주었기에 거지 같은 가난도 불행이 아닌 불편으로 적용할 수 있었다.

춥지만 따뜻했던 그해 겨울

미친 각도를 자랑하던 절벽을 마침내 다시 올라와서 아내와 함께 보았던 그 깊은 밤의 그 별빛이 말하고자 하는 오묘함을 아직 다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 부부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환경은 달라진 것이 없지만 나와 아내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분명한 것은 쥐뿔도 없는데 극복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고, 더 이상 돈 앞에서 벌벌 떨지도 않는다. 아주 단순한 믿음 하나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뭐.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살아 내 보자.

그런데 바로 그때쯤 아주 조금씩 희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평소 진솔하게 삶과 신앙을 나누던 성도님 몇 분이 우리 가정을 조금이나마 후원하고 싶다고 하셔서 이 태양계와 은하계의 시세로 볼 때 큰돈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한증막보다 더 뜨겁게 느껴지는 큰돈을 꾸준히 공급해 주셨다. 꾹 참고 있던 숨이 아주 조금 트이는 것 같았고, 오랜만에 맛보는 듯한 상쾌한 공기는 아주 시원하고 맑았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챙기신다는 생각이 드니 그것은 돈이 줄 수 없는 시원하고 맑은 은혜의 공기와도 같은 기쁨이었다.

그해 쌀쌀한 겨울바람이 불 때쯤, 성경 공부를 하며 꾸준히 알바를 찾던 중에 동네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서 할 수 있는 택배 알바를 찾게 되었다. 힘든 일이긴 하지만 일주일에 5일 하루 4시간만 하면 되는 일이고 시급도 괜찮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기쁜 마음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사우나에서 일했던 시간들에 대한 트라우마가 아직 가시지는 않아서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곳에서 일하던 형님들은 나에게 과거도 미래도 묻지 않았다. 그게 참 감사했다. 그냥 나를 나로 대해 주는 존재들이었다. 일은 아무리 힘들어도 하다 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익숙해지면 편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람 관계는 시작할 때마다 익숙해지지도 않고 편해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일이 아닌 사람이 늘 힘든 법이다. 택배 일터에서 만난 분들은 참 편하게 나를 대해 주셨다. 그래서 사실 일이 힘든 것을 잘 몰랐던 시간들이었다.

▲ 높은 곳을 닦기 위해서는 스카이차를 타고 8~10미터 정도를 올라가야 했는데, 정말 다리가 후덜덜 떨리는 일이었다. (사진 제공 김정주)

그리고 그때 택배 알바를 하면서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글로 써서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쓸 필요가 있을까 하고 지웠다가 썼다가, 지웠다가 썼다가를 수차례하면서 결국 '에라, 모르겠다~' 하고 올렸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늘 고요한 바다와 같은 내 페이스북에 태풍이 불었다. 내가 페이스북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많은 '좋아요'가 찍히기 시작했고 공유하기가 되고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친구 신청이 들어왔고 그 글이 공유가 되어 멀리 캐나다에 살고 있는 5년 전쯤 유학 간 친구에게서까지 연락이 왔다. 꿈 같은 시간들이었다.

참으로 놀라운 위로였다. 결혼을 하고 재정적으로 지독하게 고통을 겪으면서 '하나님께서 드디어 나를 버리셨구나' 하는 순간, 이것이 아주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겨울날 아침부터 나와서 택배를 나르면서 '나는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 모든 고통을 삼켜 버릴 정도로 기쁨을 가져다주셨다. 하나님은 언제나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라는 것을 제대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택배 알바가 끝나고 틈틈이 단기 알바들을 하던 중에 교회 집사님과 함께 충북 진천에 있는 캔 공장 벽을 닦으러 가게 되었다. 3박 4일 출장을 가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닌 교회 청년 두 명과 함께 가는 길이어서 그렇게 외롭거나 하지는 않았다. 공장은 생각보다 거대했고 닦아야 될 벽은 만리장성같이 끝없어 보였다. 높은 곳을 닦기 위해서는 스카이차를 타고 8~10미터 정도를 올라가야 했는데, 정말 다리가 후들들 떨리는 일이었다. 그렇게 오전부터 오후까지 일하다 보니 공장 소음에 고막이 터질 것 같았다. 그나마 중간중간 먹는 밥은 정말 꿀맛이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정리하면서 그곳에서 느낀 것을 글로 써서 페이스북에 올렸다. 많은 분들의 댓글이 큰 힘이 되었다. 그런데 한 언론사에서 연락을 해서 내가 쓴 글을 신문기사로 올려도 되겠냐고 물었다. 얼떨떨하고 신기했다. 그래서 그렇게 하셔도 된다고 했고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정말 기사화가 되었다. 초등학교 때 학교신문 빼고는 처음 신문에 내가 쓴 글이 올라가게 되니 마냥 신기했다.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고 기뻐해 주셨다. 이 역시 큰 위로였다. 공장에서 벽을 닦는 시간들이 그렇게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희망은 그렇게 서서히 들어왔다. 재정적으로 나아진 것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시지 않았다는 그 사실이 기쁨과 평안을 가져다주었다. 불행하지 않다는 입술의 고백을 넘어 마음 깊은 곳에서 행복한 마음이 일기 시작했다.

희년함께, 하나님의 부채 탕감 프로젝트

그렇다고 학자금 대출이 1원 한 푼 해결된 것도 아니고, 집안 사정이 나아진 것도 아니지만 그 조그마한 희망들이 이어지며 나를 살리고 있었다. 아내에게도 그 희망들은 큰 기쁨이 되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 냈다. 우리를 목 조르려고 매일매일 다가오는 절망을 나름 따뜻하게 대접해 주면서…. 그리고 최근 '파전행전'을 연재하며 만난 벗님을 통해서 또 다른 기적을 맛보게 되었다. '희년함께'라는 기독교 단체에서 '청년 부채 탕감'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거기에 신청을 해 보라는 것이었다. 선정이 되면 약 200만 원 되는 돈을 지원해 주어서 학자금 대출 원금을 갚아 준다고 했다.

마침 거기서 요구하는 조건들(학자금 대출이자 6개월 연체, 학자금 대출 원금 1,000만 원 이상)을 나는 완벽하게 만족시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의심이 들었다. '희년 정신은 이해하지만 이 사람들 정말 뭐하는 사람들인데 나를 도와주려고 하는 거지?' 신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1차 후보자로 선정이 되었고, 재무 상담 후에 최종 합격자로 선정되어서 200만 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지원받게 되었다. 그 돈으로 무려 두 개의 학자금대출 원금을 깨끗하게 정리할 때의 그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정말 끝내줬다.

'희년함께'를 통해서 200만 원이라는 거금을 지원받고 학자금 대출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은 것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그것보다 더 감사한 것은 애써 외면하고 있던 내가 해결해야 하는 돈 문제에 대해 직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을 하나님께 미뤄 두고 쳐다도 안 보던 문제를 마주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재정 상담과 지갑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나야말로 정말 돈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전혀 모르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만 산다는 똘빡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고 도와주신다는 믿음은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 관리를 안 배우겠다는 건 좋은 믿음이 아니었다. 이 과정들을 잘 이수해서 청년지갑트레이너 자격증을 따고 교회 안에 있는 많은 청년들, 사역자들이 돈 관리를 하는 데 도움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제야 비로소 학자금 대출을 볼 때 눈을 깔지 않고 정면으로 꼬나볼 수 있다는 것이 제일 감사했다.

▲ '희년함께'를 통해서 200만 원이라는 거금을 지원받고 학자금 대출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아서 너무나 감사했다. 그것보다 더 감사한 것은 돈 문제에 직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진은 2015년 4월 11일 '청춘희년운동본부 홍대 거리 행진'. (사진 제공 희년함께)

김파전 라이즈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배트맨은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센 놈인 줄 알고 헤드폰을 입에다가 꼽은 베인을 하찮게 보고 싸우다가 쳐발렸다. 그리고 열려 있는 희망이 있는, 그렇기에 더 절망할 수밖에 없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 수도 없이 절망에서 희망을 향해 나아가기를 발버둥치다가 마침내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깨달음으로 그곳에서 나오게 된다. 절망의 그 구덩이가 마침내 배트맨을 배트맨 되게 만드는 ‘라이즈’의 자리가 된 것이다. 그리고 배트맨은 그 힘으로 베인의 입에 있는 헤드폰을 박살 내고 쳐 발라 버린다. 절망을 향한 희망의 화려한 반격이었다.

200만 원의 거금을 상환했지만 학자금 대출의 빚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내년에는 대학원도 가야 하고 이제 9월이면 사랑스러운 아기 세음이가 태어난다. 하지만 우리 집 가정형편은 여전하다. 어떻게 보면 베인이 배트맨을 가둬 놓은 열려 있는 희망이 있는 절망의 감옥과 같은 곳에 있는 셈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희망을 보이시기에 나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언젠가는 '라이즈'할 것이라는 것이다.

무엇이 나에게 '라이즈'가 될 것인가? 돈이 많이 생겨서 학자금 대출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거? 깨끗한 부자가 되는 거? 재정의 축복의 아이콘이 되는 거? 아니다. 절망하기에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하고 바라보는 존재가 되어서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향해 걸어 나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나의 ‘라이즈’일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이런 시간들이 없었더라면 이런 아픔들도 없었을 것이고, 이런 아픔들이 없었더라면 그런 눈물들도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의 수많은 눈물 잉크로 쓸 수 있었던 글들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시간들 또한 언젠가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 때가 올 것을 바라보며 포기하지 않고 걸어간다.

"절망을 이기는 방법은 없다. 단지 … 걸어 나갈 뿐이다."
- 만화 <20세기 소년 17권> 어디쯤에서 인용

이현숙) 

글쓴이는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송파구의 한 교회에서 '파전'(파트타임 전도사)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동년배 직장인으로 치면 비정규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84년생 서른두 살의 김파전. 비록 전도사님이라 불리지만 세상살이는 '미생'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김파전이 자신의 세대인 2030들이 위로받아야 할 교회에서조차 미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합니다. 조금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신학과 이론으로 내린 정답과 같은 '제자도'가 아니라, 2015년 대한민국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젊은 크리스천들이 몸부림치며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삶의 제자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삶의 제자도'란 말은 멋지지만 사실 실제 삶은 김파전의 '파전행전'일 수밖에 없지만요. 

김파전의 이야기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2030세대들이 겪고 있는 리얼한 삶입니다. 어렵고 힘든 미생의 삶이지만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행복을 발견해 가는 이야기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제목은 파트타임 전도사(파전)의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행전)라는 뜻으로, '파전행전'이라 지었습니다. 매주 화요일 한 편씩 업데이트됩니다. - 편집자 주  

*김파전의 페이스북 www.facebook.com/mukhyan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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