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9일 퀴어 축제가 개막하면서 행사를 전후하여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인의 관심이 고조되었습니다. 이때 '예수가 동성 커플에게 던진 한마디'라는 글이 11일 <뉴스M>에 실렸고 SNS에 활발히 공유되었습니다. 지난해 7월 ㅍㅍㅅㅅ에도 게재되었던 홍신해만 씨의 블로그 글로, 마태복음 8:5-13과 누가복음 7:1-10에 나오는 백부장의 이야기를 '퀴어 비평' 입장에서 각색한 것입니다. '종', '하인'으로 번역된 '파이스'를 '동성 연인'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게 핵심입니다. 이를 본 총신대 신학대학원 신약학 신현우 교수가 해석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홍신해만 씨의 글 전문을 허락받아 싣고, 신현우 교수의 글(바로 보기)도 기고받아 소개합니다. - 편집자 주

팔레스타인 어딘가에서 있었던 일

백부장의 연인이 극심한 병에 걸려 생명이 위독했다. 백부장은 사랑하는 연인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었다. 한 친구로부터 예수가 사람을 고치는 능력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소문에 의하면, 예수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이방인들에게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원수, 심지어 로마의 군인들마저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백부장은 기회를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다. 예수는 그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예수와의 만남이 걱정된 것도 사실이다. 대개 유대 랍비들은 동성 연인들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해 볼까도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 그러나 그의 연인을 고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거짓말도 분명 알아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백부장은 예수에게 다가가 그 앞에 엎드렸다. "랍비님, 제…" 그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래 진실을 말해야 할 때다. 백부장은 결국 말했다. 예수에게 거부감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백부장은 또박또박 다시 말하였다. "랍비님, 저의 사랑하는 연인(παῖς 동성 연인)이, 저의 사랑하는 연인이 집에서 병으로 죽어 가고 있습니다." 예수의 답변을 기다리는 그 순간은 마치 영원과도 같았다. 그를 둘러싼 청중들로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었다. 마치 부흥 집회에서 부흥 강사에게 자신의 사랑하는 남성을 고쳐 달라고 애원하는 동성애자의 모습과도 같다.

'예수는 어떻게 하였는가?' – 원문 출처 Mark Tyler Connoley, Jeff Miner, <The Children Are Free: Reexamining the Biblical Evidence on Same-Sex Relationships>

παῖς(파이스)에 대한 다양한 해석

이 글은 마태복음 8:5-13과 누가복음 7:1-10에 나오는 백부장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메트로폴리탄커뮤니티교회(교단)의 목회자인 Mark Tyler Connoley와 Jeff Miner는 백부장의 이야기가 실린 이 성서 본문을 '퀴어 비평'의 틀로 해석해 냈다. 백부장이 예수에게 찾아와 간곡하게 병을 고쳐 달라며 부탁하는 이 연인은 한국어 성서엔 '하인', '종'이란 어휘로 기술되어 있다. 영어 성서도 마찬가지다.

Mark Tyler Connoley 목사와 Jeff Miner 목사는 Kenneth J. Dover의 원어 해석을 토대로 하여, 일반적으로는 '아픈 하인'으로 해석된 단어, παῖς(파이스)를 퀴어 비평의 입장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분석, 적용한다.

παῖς(파이스)라고 하는 단어는 세 가지 정도의 의미로 사용된다. '소년 혹은 아들', '종', '하인', 그리고 '남자 주인이 사랑하는 남성 소년, 청년, 하인'으로 사용된다. παῖς(파이스)는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후자의 의미 즉 '사랑하는 동성 연인'을 뜻하는 말로 사용된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유폴리스의 극작과 아테네 시인이었던 아이스키네스의 <Against Timarchos>와 플라톤의 향연, 플루타르크의 <Life of Pelopidas>를 예로 들 수 있겠다.

Kenneth J. Dover는 그의 저술인 <Greek Homosexuality>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동성 간 사랑의 관계 속에서 παῖς(파이스)는 종종 다 자란 청년이었다."(16)

"에로스적 동성 간의 관계에 있는 나이 어린 파트너 παῖς(파이스)는 어른만큼 성장하고 자라난 이를 부르는 말이기도 했다."(85쪽)

피츠버그신학교의 복음주의 신학자 Robert Gagnon은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신학자임에도 παῖς(파이스)란 단어가 갖는 언어학적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The Bible and Homosexual Practice>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παῖς(파이스)는 동성애 관계 속에서 나이 어린 소년 파트너를 뜻하는 단어로도 사용되었고, 다 자란 성년을 지칭하는 것으로도 사용되었다."(163쪽)

신약성서가 기술되던 당시엔 하인, 노예, 종을 지칭하는 그리스어 단어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δοῦλος(둘로스)다. 이는 일반적으로 노예, 종을 지칭하는 어휘로 사용되었다. 다른 하나는 παῖς(파이스)인데, 마태복음에서 백부장의 아픈 하인을 가리키는 단어는 παῖς(파이스)다.

백부장의 파이스(παῖς)가 동성 커플로 해석 가능한 이유

마태복음에선 하인을 지칭하는 단어 두 개가 동시에 사용된다. παῖς(파이스)는 백부장의 아픈, 예수에게 치유해 달라고 간청하는 그 하인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반면 δοῦλος(둘로스)는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고 하면 합니다(마 8:9)"라는 백부장의 말처럼, 다른 일반적인 하인, 종들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즉 여기서 성서 기자는 의도적으로 παῖς(파이스)와 δοῦλος(둘로스)를 구분한 것으로 보인다.

마태복음과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누가복음에선, 백부장의 하인이 παῖς(파이스)가 아니라 δοῦλος(둘로스)로 지칭된다.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의미의 노예를 지칭하는 단어가 사용된 것이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 이 δοῦλος(둘로스, 노예)는 단순한 δοῦλος(둘로스)가 아니다. δοῦλος(둘로스)를 수식하고 있는 ἔντιμος(엔티모스)란 형용사가 있기 때문이다. ἔντιμος(엔티모스)는 '영광스런', '영예를 입은'이란 뜻이다.

Mark 목사와 Jeff 목사는 이 형용사에 주목한다. 누가복음 역시 마태복음과 유사하게 병에 걸린, 예수에게 고쳐 달라고 간청하는 그 하인에게는 다른 종들과는 달리 ἔντιμος(엔티모스)라고 하는 수식어가 붙는다.

즉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백부장이 치유해 달라고, 예수에게 간청하는 이 하인은 일반적인 노예와는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복음서에는 자기 자신이나 가족들의 병을 고쳐 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주인이 자신의 한 하인을 고쳐 달라고 하는 이야기는 마태복음 8장과 누가복음 7장뿐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엔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로마의 백부장은 당시 정복자였고 억압자였다. 예수에 비해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이었다. 반면 예수는 유대 랍비로 피지배계급이었고, 억압받는 사회적 위치에 있었다. 그런 백부장이 예수에게 자신을 낮추고 간청하는 모습은 비범한 일이 었다. 이 부분에 대해 Mark 목사와 Jeff 목사는 백부장이 병을 고쳐 달라고 간청한 그 하인이 사랑하는 연인이었다면, 이는 심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일이라 주장한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기자가 각각 백부장의 아픈 하인을 의도적으로 παῖς(파이스)와 ἔντιμος δοῦλος(엔티모스 둘로스)란 표현을 사용한 점, 이 구별된 어휘들이 당시에 가지고 있던 문화적 맥락, 그리고 백부장과 예수의 계급과 관련한 사회학적 분석은 백부장이 그의 아픈 하인과 연인 관계라고 하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전거들이다.

예수의 한마디 "내가 가서 고쳐 주겠다"

그렇다면, 자신의 동성 연인을 고쳐 달라고 간청한 백부장의 부탁에 예수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제 정신이야? 난 네 남자 친구(παῖς)를 고쳐 주지 않을 거야, 네가 죄로 가득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지!"

"음, 너의 연인이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너무 당황하지 않아도 돼, 이건 하나님께서 너희의 관계를 보고 판단하실 일이야."

예수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예수의 답변은 매우 간결하고 분명했으며 하나님이 동성 커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모든 걱정들로부터 해방을 시켰다.

"내가 가서 고쳐 주겠다."

바로 이쯤에서, 백부장은 예수가 자기 집으로 올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백부장은 예수께서 단지 말씀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신앙이 있었다. 예수는 동성 연인의 병을 치유하겠다는 말에 말문이 막혀 버린 사람들을 쭉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그들을 향해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난 이스라엘에서 이보다 믿음이 큰 사람을 본 적이 없다."(마 8:10). 예수는 이 백부장을 다른 이들이 모범으로 삼을 신앙의 본으로 추켜올렸다.

예수는 단순히 이 동성 연인이 있는 백부장에게 관대한 자세를 취한 것이 아니다. 예수는 이 백부장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되도록 힘써야 할 훌륭한 신앙적 모범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예수에게 몰려들었던 신앙인들은 이 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예수는 또다시 11절에서 이와 같이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함께 천국의 자리에 앉을 것이다.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벗어나 있을 거라 여겨지는 이 백부장이 오히려 하나님나라에서 인정받게 될 거라는 예수의 확언이다. 그리고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나라에서 인정받게 될 거라 생각하는 많은 이들에게 경고한다. 오히려 너희가 하나님나라에서 배제될 거라고.

– 원문 출처. Mark Tyler Connoley, Jeff Miner.<The Children Are Free: Reexamining the Biblical Evidence on Same-Sex Relationships>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전하고 있는 백부장과 하인의 이야기는 당시 유대 문화 속에서는 지배적이지 않은, 비주류로 배척받던 젠더의 사람들, 동성 커플에 대한 예수의 태도를 보여 준다. 예수의 한마디는 매우 단순하고 명료했다.

"내가 가서 고쳐 주겠다."

그리고 동성 연인을 사랑한 이 백부장이 하나님나라에서 인정받게 될 거라 칭찬한다.

오늘날 예수를 따른다는 크리스천들은 동성애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홍신해만 / 미국에서 유학 중인 신학생. 현재 연합그리스도교회(UCC·United Church of Christ)에서 인턴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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